성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본 적 없는 공주님은 두 손을 모은 채 여전히 꿈속에 잠긴 듯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이제까지 제가 지낸 세계가 얼마나 상자 속이었는지를 가르쳐주셨죠.
지금 눈앞에 있는 건 공주님을 마법처럼, 기적처럼, 환상의 세계로 데려가준 도둑 친구가 아니라 갑자기 사라진 공주님을 찾느라 혼비백산해 화가 났던 궁전 사람들인데 말이죠.
뒤늦게 감았던 눈을 뜨고 화난 사람들을 본 공주님은 몇 번이고 빼꼼빼곰 고개를 숙여가며 다시는 말도 없이 나가지 않겠다고 사과를 해야 했어요.
그녀의 멋진 도둑 친구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세이라, 또 별 거 아닌 일로 사과하고 있지 않아?” 하고 고개를 들게 해주었겠죠.
방으로 돌아온 공주님은 부드러운 양탄자 위를 맨발로 한들한들 걸었어요. 한 발짝, 한 발짝, 양탄자의 감촉은 몹시도 부드럽고 깨끗하여 이대로 누워 한 바퀴 구르고 싶을 정도였지만 바로 직전에 노란 모래알들이 바닷물에 젖어 달라붙던 그 생애 첫 감촉을 맛본 공주님에게는 뭔가 아쉽고 부족한 감촉이었어요.
처음 보는 새들의 울음소리, 소라게가 기어가던 해변, 파도가 지나가고 나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던 모래알들과 그 사이사이로 고운 빛깔을 뽐내던 조개껍데기, 바닷물이 꺼지고 소금알갱이만 남아 간질거리던 발가락 사이사이의 감촉까지도 무엇 하나 잊을 수가 없어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던 공주님은 깜짝 놀라 제 입을 가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다행히 아무도 없지 뭐예요. 혼자인 것에 안심하고 공주님은 조금 더 양탄자 위를 그 해변가처럼 빙글빙글 돌았답니다.
「공주님처럼 굉장한 사람이 가보고 싶은 곳에 가보지 못하다니, 그런 건 이상하지 않아?」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당신 덕분에 처음으로 이상하단 걸 알게 됐어요. 요아케 씨.
늘 동화책으로, 사진으로, 이야기로만 듣던 바다. 짭짜름한 바람이 불어오고 발아래가 축축하고 멋대로 물결이 밀려들다 떠나가는 아주 신비로운 곳, 어떤 염료로도 따라할 수 없는 깊고 깊은 푸른색을 간직한 아름다운 곳.
무언가를 욕심내는 법이 없는 공주님이 유일하게 동경하고 그리워하던 곳이었어요. 하지만 성 밖은 위험하다고 가본 적 없던 곳이기도 했죠.
그런데 어떻게 가게 되었냐고요? 그 이야기를 하려면 어떻게 공주님이 혼자 성 밖으로 몰래 나갔으며, 그곳에서 재기발랄하고 씩씩하게 약한 사람들의 히어로와 골목대장을 겸하던 친구와 만나게 되었는지부터 들려줘야 할 거예요. 부자들의 주머니를 슬쩍하여 달콤한 대추야자를 배고픈 아이들에게 맘껏 뿌리던 통 큰 친구가 성 밖 세계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공주님을 어떻게 꼬득였는지도요.
「내가 보여줄게. 내가 데려가줄게. 위로 넘고, 옆으로 돌며 아래를 지나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날아서. 새로운 세상이야.」
「새로운 세상이에요. 제가 모르던 눈부신 곳이에요. 이렇게 높이 올라와보니 선명히 알 수 있어요.」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화음을 맞추던 순간은 얼마나 동화 같고 아름답던지.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파란 눈의 친구는 그 눈색처럼 하늘로, 바다로, 아무것도 모르는 공주님을 데려가주었답니다. 언제나 어른이고 공주여야 하던 소녀를 자유롭게 해주었어요.
하룻밤만으로는 다 풀기 힘든 이야기네요. 그렇다고 천일이나 걸리진 않겠지만요!
궁금하면 나중에 공주님과 도둑 친구가 함께 있을 때 살짝 물어봐주세요. 공주님은 그 친구를 도둑이 아니라 해뜨는 방향의 히어로 님이라 부르니 그 부분은 꼭 조심해주고요.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장면을 보기란 아주아주 힘들겠지만요. 왜냐하면 세상에, 그 도둑, 아니 히어로 친구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갖고 있지 않겠어요.
두 사람의 만남은 어둠이 내려앉고 별이 반짝이는 그 새벽부터 동이 터 올 때까지 아무도 쫓아올 수 없는 양탄자 세계에서 펼쳐진답니다. 그러니 두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그렇지, 지니에게 소원이라도 빌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