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성
까득, 하고 선명히 들려오는 소리에 무심결에 손을 내밀려 했다. 이조차도 몸에 밴 오랜 습관이다. 위선일까. 기만일까. 친절이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다정이란 무엇으로부터 나올까. 나의 상냥함이란 네 말처럼 소모되는 것일까. 글쎄, 그렇지 않다.
하얗고 푸른 구역을 코앞에 두고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네가 따라 멈추길 기다리다 가만히 시선을 맞춘다. 표정이 궁금했다. 눈을 보고 싶다고 하면 요청을 들어줄까? 7년이라는 까마득한 시간을 뛰어넘어 내내 고개 들지 못하던 어린 아이는 어느새 상대를 바로 응시하게 되었는데, 어떤 얼굴로 자랐는지 여태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더라. 네 눈이 하는 말이 듣고 싶었다.
그 밤이 참 깜깜하더랬다. 빛 없는 밤 아래서는 옷 색 따위 구분가지 않았다. 매도받길 바란다는 듯, 혹은 매도받기 두렵다는 듯 떨리는 네 목소리만이 너의 기분을 읽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단서였다. 좀 더 매정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보기 좋은 미소를 그렸다. 나는 너를 보지 못하나 네겐 내가 보일 것이다. 언제나와 같은 한 점 흔들림 없는 온화한 것. 네게 보내는 괜찮다는 신호.
“상냥함은 소모되지 않고, 제 친절은 별로 마음을 닫고 억지로 쥐어짜 나오는 것이 아니랍니다. 어느 쪽이냐 하면 도리어…… 인간의 선한 본질을, 이해를 믿기에 할 수 있는 일이죠.”
다시금 상냥함의 근본을 찾는다. 선함의 기원을 떠올린다. 내가 유독 특별히 상냥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군가 상냥해질 수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여전히 내게 이웃해 있는 너에게 사랑을 베푼다. 그렇게 배운 삶이었다.
그렇게 알려주고 싶은 삶이었다.
겪어본 일이기에 더 잘 안다. 어떤 선택은 선택을 가장하여 강요된다. 그것을 강요인 줄도 모르고 스스로 골랐다 믿는다. 아니다. 누군가는 네게 말해주어야 하는데. 그 자격이 저에게 있는가.
“반대로 경은 어떨 때 사람이 상냥해진다고 생각하나요. 다정함이란 한정된 것인가요.”
나를 비치는 것이 힘들다는 네 말에 공감한다. 주어진 길을 따라 걷기만 하는 것은 얼마나 손쉽던가. 태어나면서부터 무수히 많은 것으로 덧칠되어 가던 삶이었다. 진정한 나라고 하면 이제와 어디부터 헤쳐 찾아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허나 그렇게 쌓아 이루어진 지금을 과연 부정해야 하는가? 오랫동안 고착되어 굳은 습관과 사고는 그 아래 진정이란 무엇이고 거짓은 무엇인지 분별이 가지 않을 뿐이다. 모두 합쳐 저임에 틀림없다.
“제 상냥함이 경에게 기쁘게 들었다면 서글프다 하지 말아주세요.”
기쁨을 알지 못해도 슬픔을 안다. 미움을 보이지 못하나 상냥함을 가졌다. 매도하는 대신 걱정하고 속상한 마음에 친절을 베푼다. 그렇게 완성되었다. 비에모드 데지에 라반둘라란 인물은. 이 만들어진 인물은 제 학습과 이해 안에서 인간을 믿는다. 인간을 사랑한다. 인간을 희망한다. 그러니 선의 기원도 상냥함의 총량도 따질 줄 모른다. 마땅히 행할 뿐이다.
다만 누군가 이런 그를 애석히 여긴다면 그 기원도 베풂도 늘 바깥으로만 향하는 것을 말하리라 . 타인을 위하는 반대편에 저는 없었다. 그 정도 열망이 없다.
소원한다면, 무엇을 바라야 할까?
목숨을 구하는 기도는 들어주지 않는다고. 이제까지의 네 말 중 가장 가슴이 아픈 것도 같았다. 신이시여, 제 욕심이 과하더이까? 제가 바라는 것은 저의 목숨도 아니건만, 두 손에 채 다 들지 못할 만큼의 목숨을 안은 채 그래, 과한 욕심이다. 어쩌면 첫 욕심이었고 큰 욕심이다. 이런 것으로 될까?
“이번엔 제가 당신에게 배워볼까요. 당신은 어떤 욕심을 내고 있나요? 주어진 삶에서.”
무욕無慾은 되지 못한 미욕微慾을 들고 네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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