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딘테그로 : 혁명의 도화선

13. 동행의 끝에서

천가유 2021. 10. 24. 21:28

 

: 에덴 카데르

더보기

 

운명이라고 했다. 스스로 붙인 성이다. 결국 네가 운명을 따르기로 한다. 처음 네게서 그 성을 들었을 때 눈앞을 스치던 풍경이 있었다. 있을 리 없는 하얀 실이 네 목과 손을 감아 꼭두각시처럼 당기면, 새하얀 동공이 새하얀 하늘을 응시하였더라. 그곳에 낙원이 있는가 하였다.

너와 낙원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는데.

결국 모든 것은 당신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졌으니.

결과를 앞에 두고 웃지 못한다. 늘 그랬다. 너를 앞에 둘 때면 매번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함에 휘감겼다. 이를 테면 내가 너를, 구원한 듯한. 타락시킨 듯한. 기묘하게도 너를 대할 때의 나는 그래, 이상했다. 주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삿되고 불결한 것만 같았다. 만족하느냐 묻는다면 그렇다 답하면서 이것이 옳으냐 묻는다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 문제였다.

내가 너의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제대로 관리된 머릿결, 여유로운 태도, 흠 없이 반듯하고 깨끗한 의복, 곧은 자세, 더는 비굴하게 자세를 낮추고 눈을 살피지 않고 상대와 저를 당당히 같은 위치에 둔다. 당연하다. 전부 너의 것이다. 네가 누려 마땅한 것. 내가 네게 주고 싶던 것. 어째서인지 흰 장갑을 벗지 못하는 것을 못 본 척 하며 너를 환영했다. 네게로 향하는 비난을 막고 어깨를 나란히 해 걸으며 울타리 안으로 맞아주었다. 너와 보낸 7년이 순수하게 기뻤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의문과 위화감을 앙금처럼 안고 있었다.

이 풍경이 네가 찾던 낙원이 맞을까.

부와 명예, 남이 쥐어주는 것. 진작 그럴 수 있었음에도 넘어가지 않으려 애쓰던 너. 시험하였던가. 스스로 혐오하는 인간이 될지 혹은 네 날 선 자존심이 너를 너 믿던 그 길로 끌었을지. 네가 나의 손을 뿌리치고 스스로의 힘으로 낙원을 일구기를 바라기도 하였더라. 만일 그런 미래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의 우리는.

낙원이란 무엇일까. 처음으로 돌아간다.

지금 우리는 동행하고 있었다. 담으로 둘러싸인 뜰, 선택된 자에게만 허락된 땅,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 그 장소를 지키기 위해. 당면한 상황을 두고 다른 생각을 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이 순간을 넘겨 내일을 꾀하도록 기도할 뿐이다. 이제까지가 우습도록 가장 절박하고 꾸밈없는 바람이었다.

그 절박함 앞에서도 그러나 문득, 또 문득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가시밭길의 저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을. 몰락과 영광, 생과 사. 위태로운 외줄 끝에 마침내 돌아간다면 그 때야말로 네게 묻기를.

행복한가요, 에덴?

어쩌면 나는 그저 네 행복이 보고 싶었다. 제 갈망을 숨기지 않던 그 시절의 너로부터 꾸준히.

 

 

 

'레딘테그로 : 혁명의 도화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 새어나온 말  (0) 2021.10.24
14. 영웅들에게 축복과 안식을  (0) 2021.10.24
12. 상냥함의 기원  (0) 2021.10.24
11. 돌아올 티타임까지  (0) 2021.10.24
10. 약속  (0) 202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