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 리포트 처음 만나는 이야기
“고스트 타입의 야생 포켓몬이 사람을 지켜주는 사례는 굉장히 드물기도 하고…… 가능하면 데이터로 얻어가고 싶습니다.”
드문가요? 도감에는 그렇다고 하지만, 제가 아는 고스트 타입은 이 아이가 유일해서요. 불켜미를 무릎에 앉히고 에셸은 조금 긴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야기에는 차가 빠질 수 없지. 오늘은 달콤한 밀크를 듬뿍 넣은 아쌈. 위키링이 좋아하는 것이다.
“어느 유년 시절의 기억이에요.”
몇 살이더라. 7살보단 많고 10살보단 어린 언젠가. 비가 아주아주 많이 내리고 천둥번개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던 궂은 밤, 공교롭게도 저택에는 에셸 혼자였다.
나중에서야 들은 바로는 그 날은 태풍이 몰아쳐 마을 전체가 난리였다고 한다. 가족은 태풍으로 항구에 묶인 배들이 날아가지 않도록,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마을까지 덮치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알 턱이 없는 사정이어서 에셸은 그저 무섭고 원망스럽기만 했다.
아이는 천둥번개가 싫었다. 번쩍이는 빛, 귀를 울리는 굉음, 지금보다 어릴 적에 폭발 사고가 있었다고 하던 게 그 기억 때문일까? 그래서 평소에는 이렇게 천둥번개가 심한 날에는 할머니 품을 찾아 잠들었지만 오늘은 그도 할 수 없었다.
[에셸, 착한 아이야. 오늘은 일찍 자렴. 자고 일어나면 햇님이 얼굴을 내밀고 있을 거야.]
우비를 쓰고 나가기 전, 할머니는 에셸에게 꿀을 넣은 따뜻한 우유와 귀마개를 주었다. 이걸 다 마시면 귀마개를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거야. 방의 커튼은 꼭꼭 닫아두었다. 바깥의 번쩍이는 섬광은 한 점도 새어들지 않았다.
에셸은 그 말을 듣고 자려고 했지만, 긴장과 걱정이 아이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렇게 침대를 몇 번이나 뒤척였을까. 아이가 보지 못하는 사이 또 다시 벼락이 떨어지고 기어코 전기가 끊겼다.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제 비명 소리에 제가 더 깜짝 놀랐다. 귀마개를 던지고 방을 뛰쳐나왔다. 익숙해야 할 집의 복도가 너무나 낯설었다. 창문을 때리는 세찬 비, 강풍이 불 때마다 들썩거리는 창 소리, 귀가 먹먹해지는 천둥, 그 5초 뒤에 터지는 번개의 빛. 에셸은 제 집에서 길을 잃었다. 비명. 비명. 비명. 집이 아니라 무슨 마귀 소굴로 온 것만 같았다.
그 작은 불켜미는 바로 이럴 때에 나타났다. 커튼을 뒤집어쓰고 복도 한가운데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던 에셸의 무릎에 톡하니 손을 얹고.
정말 아이의 영혼을 노린 걸까? 이대로 미아를 데리고 사라져버릴 속셈이었을까? 이제 와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나, 아이와 불켜미가 눈이 마주친 순간 또 한 번 샛노란 섬광이 번쩍했다.
아이는 반사적으로 불켜미를 껴안았다. 있는 힘껏. 그 바람에 머리카락이나 잠옷이 조금 타버리기도 했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야를 까마득하게 채우는 섬광이 싫었다. 그것과 비교하자면 불켜미의 이 작게 흔들리는 보라색 촛불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무, 무서워. 무서워어.”
훌쩍훌쩍 우는 아이를 두고 불켜미가 생각한 바는 지금에 와서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야생포켓몬은 아이에게 길을 안내해주었다.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정전된 방을 밝히는 유일한 빛이 되어 아이가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주었다.
다음날, 기진맥진하게 돌아온 가족이 본 것은 햇빛 대신 불켜미의 빛과 함께 새근새근 자는 딸아이였다. 후에 말하기를 당장에 포켓몬 센터에 신고해 내쫓으려는 어머니를 할머니가 말려주었다지.
지금도 불켜미는 에셸 다음으로 할머니를 가장 좋아한다. 할머니가 타주는 우유를 넣은 홍차를 에셸과 함께 마신다. 천둥번개를 무서워하던 아이가 다 큰 뒤에도, 여전히 작은 이 불켜미는 에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어주었다.
조금은 부끄러운 과거의 이야기를 마치고 에셸은 빙그레 웃었다. 이곳에 동행하는 파트너 포켓몬은 특별한 기준이 없었지. 오래 알든 짧게 알든 친하든 친하지 않든, 그 가운데 리체와 그의 펭도리는 유난히 사이가 안 좋아 보였다.
“모처럼이니 이번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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