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주노
S#1.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이 표현에는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있다가 세상이 어두워진 것이 아니다. 그보다 우리가 어두운 곳에 갇히게 되었다는 말이 맞을까. 포인트는 ‘갑자기’보다도 ‘우리’에 있었다.
-에, 에셸 씨. 괜찮…으세요?
-ㄴ, 네. 저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그, 글쎄요. 저도 잘…….
좁은 공간에 연인이 함께 갇혔다. 옷감이 스치는 바스락거림, 지척에서 느껴지는 숨결,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 모든 소리가 생경하면서 생생했다. 뜨겁게 닿는 체온, ──그보다 체온이라면 지금 어디가 닿은 거지? 의식과 동시에 손바닥에 힘이 들어갔다.
-자, 자자, 잠깐, 우,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우뚝.
다급한 목소리를 따라 스위치가 눌린 로봇마냥 행동을 멈춘다. 잠깐의 정적. 이마께로 힘겨운 심호흡이 닿았다. 힐끔 고개를 들어도 그가 보이지 않는다. 시야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게 이토록 곤란한 일일 줄 몰랐다.
S#2. 밀착이라는 말의 진짜 뜻
F.I
어둠속에서 한참 있었더니 차츰 사물의 윤곽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조금 더 냉정하게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굉장히 좁은 어딘가에 갇혀 있었다. 납치? 감금? 작금을 이해하고 타개하기 위해 팽팽 머리를 굴렸다. 워치를 차고 있던가. 바깥에 연락은 통할까? 마음이 조급했다. 아마 그 또한 저와 같지 않을까. 생각하며 재차 들여다본 그의 안색이, 겨우 흐릿하게 보이는 코앞의 낯이 굉장히 나빠 보였다.
-……괜찮아요, 주노 씨? 어디 안 좋기라도?
화들짝 놀라 손을 뻗는다. 동시에 아아아니, 괜찮…! ──쿵!
-어떡해!
소리가 상당히 컸는데, 정작 우리가 갇힌 이것은 무엇으로 된 재질인지 흠도 없어 보인다. 뻗어진 손은 그대로 뒤통수를 감쌌다. 혹이 나진 않았을까? 아플 것만 같은데. 뒷머리를 살살 만져주자 그에게서 기묘한 소리가 흘렀다. 이때까지도 제가 이 고통에 원인제공을 한 줄은 꿈에도 모르는 에셸 달링(22). 그와 밀착할 일이라면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그때는 몰랐던 것, 그때와 다른 것이 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S#3. 제가 가만히 있는 편이 좋아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그에게서 한참 답이 돌아오지 않자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이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간 도움을 요청할 수조차 없어. 바닥-으로 추정되는-을 더듬어 두 팔에 힘을 넣는다. 이곳이 만약 상자의 형태라면 최소한 우리를 넣었을 당시의 뚜껑이든 뭐든 있을 게 분명했다. 의욕이 충만했다. 그래서 더 문제인 줄 모르고.
-앗, 미안해요.
-우….
손 아래로 애인이 꿈틀, 그 위에서 꿈지락. 조금만 참아요. 저희 탈출해야 하잖아요. 과연 손만 문제일까? 제딴에는 나름 필사적이었다. 신데렐라마냥 신발 한짝이 스르륵 벗겨지는 동안 치맛자락이 어떻게 구겨지는지도 모르고 숨소리와 섞이는 옷감의 마찰음,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는 인내의 줄을 갉아먹는 소리인 줄도 모르는 채 천장-으로 역시나 추정되는-을 짚었다. 그러나 기어코 기우뚱,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풀석, 코를 박은 곳이 어디였더라. 미끄러진 팔이 몇 번을 더듬거린 곳은. 가슴이 그의 배 부근을 압박하는 건 그 다음에야 눈치 챈 지점이다. 그와 함께 애인의 혼이 반쯤 탈출하는 것도 이번에야말로 알아차렸다. 어쩔 줄 모르는 사과의 말에 괜찮다고 답할 힘도 슬슬 부쳤는지 주노에게서 필사의 진심이 나왔다.
-그, 일단……. 더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가만히 있어줘요.
제발.
S#4. 숨을 쉴 수가 없어.
째깍째깍. 이건 정말 존재하는 시계가 아니다. 이를테면 상상의 시계라는 거다. 머릿속에서 멋대로 움직이는. 차라리 어딘가에서 시계초침 움직이는 소리라도 들리면 좋았을 텐데. 적막이 깊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오직 힘겨운 숨소리와 심장소리뿐. 이렇게 뜨겁고 빠를 일인가. 밀폐된 공간의 산소포화량이 문제인 걸까, 아니면 신체 건강한 연인이 지나치게 밀착해버린 게 문제인 걸까.
여기까지 와서 그의 체온이 자꾸만 상승하는 것을-기분 탓인지 사실인지-다른 문제로 오인하진 않는다. 저도 그 정도는 안다고요. 알아서 더 문제라면 모를까. 그러니까, 산 넘어 산이라는 뜻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현명한지에 대한 답은 누가 내주는 걸까.
-딸꾹.
누구에게서 나온 지 모를 딸꾹질 소리. 캄캄한 어둠속에서 시선이 맞닿았다. 딸꾹질이 나올 땐 숨을 멈추어야 한다던데.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아주──
아주?
숨을 막아버린다면.
F.O
S#5. 그건 정말 상식적이지 못했어.
이 뒤에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런 짓을 한 거냐고요? 알아요, 상식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죠. 하지만 우린 패닉이었고, 달리 마땅한 수가 보이지 않았는걸요. 사람은 때론,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이상의 것을 받아들이면 고장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이 다음에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우릴 가둔 사람이 풀어줄 때까지 18524시간이든 1683682시간이든 갇혀 있는 수밖에 없었지요. 뒷이야기는 이걸 보고 있는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지 않겠어요.
우리만 모를 뿐, 사실은 환한 곳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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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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