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주노

07) 레몬, 후르츠 롤케이크, 팝핑캔디

천가유 2022. 5. 11. 19:49

For.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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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키스는 어떤 느낌일까요?

 

소설에서는 레몬 맛이 난다고 표현하더라고요. 어째서 레몬 맛일까요. 딸기 맛이나 복숭아 맛은, 사람의 입술은 과일 맛이 나는 걸까요? 언젠가 친구는 첫 키스에서 레몬 맛 같은 건 나지 않는다고 투덜댔어요. 환상이 깨졌다고. 그러더니 다음날에는 레몬사탕을 입에 물고 키스했다고…… 어머나.

드라마나 영화 속의 키스장면은 어땠더라. 그다지 유심히 본 적이 없어서 막상 떠올리려니 뭉뚱그린 화질의 풍경만 스쳐갔어요. 대개 영화 속 장면들은 아름답게 연출되곤 하잖아요. 얼굴이 포개지면서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고 두근두근한 음악이 흘러가고 그 한폭의 컷이 예뻐서, 막연하게 첫키스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인식했어요. 언젠가 저도 영화 속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날이 올 거라고 아주 막연하게 말이죠.

 

리체 씨는 어떤 기분이었어요?

 

캠프를 마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죠. 고대하던 토중몬을 잡아서, 언제쯤 진화할지 눈을 떼지 못하는 말라카이 씨를 두고 두 사람이서 후르츠 롤케이크를 먹었어요. 포크가 부드러운 스펀지와 달게 절여진 과일을 자르는 동안 지금쯤 갓 입사한 수습 브리더 씨는 뭘 하고 있을까 떠올렸죠. 그랬더니 잠깐 창밖을 바라본 것만으로 그 사람 생각을 하냐는 물음을 들어버렸지 뭐예요. 이제는 부정도 못하고……. 귀끝이 물들어 리체 씨를 흘겨보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봤어요. 이런 거 물어봐도 될까요? 덧붙이며. 첫 키스는 어떤 기분이었어요?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졌습니다. 듣던 것과 다르게 레몬 맛은 아니었지만 말캉하고부드럽고. ……어쩐지 욕심이 생겨버립니다.”

머뭇거리면서도 또박또박, 느낀 점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리체 씨는 수줍은 소녀였답니다. 누가 봐도 완연히 사랑에 빠진 얼굴을 하고, 보기만 하는데도 좋은 향이 날 것만 같았어요.

비유하자면 카라. 아름답고 우아한 한겹 꽃잎 아래서 과일을 녹진하게 덮은 생크림의 맛이 묻어날 듯 달콤한 표정이었어요. 사랑을 하는 사람은 이런 표정이구나. 이렇게 예쁘구나. 그렇다면 저는 어떤 표정일까요. 지금은, 또 만약…… 입맞춤이란 걸 하게 된다면 어떤 표정으로 피어나게 될까요.

주노 씨를 만나고부터 이제껏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고 싶어져요. 이런 것까지도 같이 배워 가면 되는 걸까요? 그렇게 생각하자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고 안심이 되는지.

그래서, 하셨습니까?”

.”

난데없이 찔러드는 17세의 필터링 없는 질문이란! 저는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말았어요. 아직이에요, 아직! 그건, 그으, ……키스는, 아닌 거겠죠?

기억은 다시 조금 앞으로 되감겼어요. 그러니까, 솔라리스 씨와 주노 씨가 배틀을 벌인 날이에요. 두 사람의 배틀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즐거웠고 저까지 많이 떨렸어요. 배틀에 집중하던 주노 씨의 표정이 굉장히 보기 좋아서 더 눈을 뗄 수 없기도 했고요. 결과는 솔라리스 씨의 승리였지만 이기고 지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지 않았겠어요? 이런 것까지 얻으리라곤 몰랐지만.

어떻게 말해주는 게 좋아요?질문에 곧장 떠오른 건 꽉 안아주던 순간의 풍경이었어요. 소설에서, 영화에서 보기만 하던 풍경이 그 날은 저와 당신을 주인공삼아 파노라마처럼 흘러갔죠.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하나도 모르는 채 오직 한 사람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는 벅차오르던 감각을 잊지 못하고 조금 더 가까이서.’ 그렇게 답했어요.

막상 좁혀든 거리는 숨이 막힐 듯 가까워서…… 분명 좋은데, 아주 좋으면서도 자극이 과하다고 해야 할까요. , 이마가 맞붙고부터는 심장이 콩닥거릴 때마다 머릿속의 이성이라고 하는 것이 풍선처럼 몸을 불려갔어요.

에셸 씨 좋……. ……, 사랑해요…….

그리고는 돌아온 목소리가, 어깨에 닿은 체온이 뜨거워서 심지가 타들어 가는 초처럼, 핫초코에 빠진 마시멜로처럼 녹아버리는 상상을 했어요. 웃음기 섞인 바람이 후 닿을 땐 솜사탕처럼 날아가 버릴 것도 같았어요. 어깨의 리본은 힐끔 보는 것만으로도 매듭이 단단한데 주노 씨의 목소리가 흘러들 때마다 지푸라기로 만든 집이 바람에 다 날아가듯, 심장을 칭칭 감싼 리본이 사르르 풀려가버리는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요. 좋아하는 기분으로 가득 차버리는 이것을요.

당신이 제 바람이고 제 열쇠고 저를 녹이기도 하고 날리기도 하면서 퐁당 빠트리기도 한다는 걸요. 전하고 싶은 마음을 이로 다 담을 수 없어서.

사랑, 해요. 제 머릿속의 수치가 이상해질 것처럼 잔뜩. ……주노 씨 앞에선 어떤 셸링 지수도 매기지 못할 것 같아요.

더듬더듬, 간신히 고르고 고른 말을 전했어요.

지금 느끼는 기분을 눈에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면 허리에 팔에 수많은 곳에 풍선의 줄이 감겨 두둥실 떠오르기 직전의 순간일 거예요. 저를 붙잡은 팔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어딘지 모를 곳까지 이성이 슝 날아가서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진 않았을까요. 사랑을 전하는 일은 무척이나 기뻤지만 동시에 해본 적 없는 말이, 느껴본 적 없는 이 벅찬 두근거림이 저를 조금 무섭게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눈을 뜨지 못했죠.

그랬는데…….

!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찰나였죠. 잠깐의 접촉이 꿈만 같았어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알 수 없어서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펑, 퍼벙,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 들어찬 풍선들이 일제히 터지고 어질어질한데 입술에 닿았던 부드러운 무게감만이 남아 있었어요.

감촉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고 리체 씨가 말하던 욕심이 나더라는 의미가 이해됐어요. 맞잡은 손이 따뜻하고 단단할수록 입술의 감촉은 눈처럼 녹아 사라져서 아쉬웠어요. 조금 더 알고 싶다고. 느끼고 싶다고 생각해버려서. 한 번 더 해보면 알 것 같아서.

를 보면, ……어떤 기분이에요? 뭘 하고 싶어지나요?

그 질문에 떠오른 생각은 역시──,

…… 닿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손이만져주면……」

여과 없이 흘러나온 말이었어요. 주노 씨의 손이 닿는 게 좋아요. 손가락 끝만 간신히 붙잡아올 때면 그러지 말고 맞잡으면 좋을 텐데 생각을 했어요. 그 손바닥 안쪽을 간질이듯 살살 긁으면 움츠러들어서 쥐락펴락하는 느낌이라거나 어딘지 곤란해 보이는 표정이 귀여워요. 그러다 그만하라는 듯 제 손을 한 번에 다 움켜잡으면 장난이 들킨 아이처럼 조금 더 콩닥콩닥거리는 거 있죠.

당신의 손틈을 파고들어 깍지 끼고 잡는 걸 좋아해요. 겨우 그것만으로 어리광부리는 기분을 느껴버려요. 서로 맞물려 빈틈없이 차오를 때의 충족감은 주노 씨와 헤어질 때마다 도통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좋아하는 이유는 그뿐만 아니라 아주 많지만, 100개도 더 말할 수 있지만──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떠오른 건, 당신이 말하는 허락과 제가 생각하는 허락의 범주가 같은 궤적을 그리도록 떠올린 것은요, 위의 기억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에요. 손이 허리를 받쳐주던 순간의 기억이라거나 뺨을 덮어올 때나 손가락 끝에 조금 힘이 들어가 귓바퀴 아래로 이어지는 움푹 들어간 곳을 눌러올 때마다 정전기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찌르르한 느낌이 들던 기억이나 열감이 꽃처럼 피어오르던 기억. 손닿는 곳마다 따뜻한 열이 깃들어서 심장이 빠르게 뛰다가도 또 어떨 땐 숨죽인 듯 아주 느려지기도 하던 기억과 경험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끌어냈어요.

당신이 바라고 제가 줄 수 있는 허락의 범주란 어떤 것인지를요.

반대로 제가 바라면 당신이 줄까요?

지금이면…… 안 돼요?

안 되는 건 아니라고, 안 될 건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서도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할 곤경에 처한 그를 보고 있으면 아직 제가 모르는 게 많구나. 실감만 했어요. 실망은 안 했어요. 우리 함께 손발을 맞춰 배워가기로, 걸어가기로 한걸요.

──그렇지만……, ……이미 닿고 있으면서 더 닿고 싶다고 생각해버리는 건 역시 이상한 기분이라서 손바닥 안에 남은 그의 감촉을 조심스럽게 쥐며 몰래 한숨을 쉬기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파렴치해진 걸까요?

사랑이 한뼘 더 자라 있을 내일을 기대해요. 우리는 계속해 더 나아질 거예요. 그때의 기억을 돌이키고는 남은 롤케이크를 마저 입에 넣었어요. 새하얗고 부드러운 스펀지케이크가 혀끝에서 녹아내렸어요.

그래서 과연 첫키스는 어떤 맛이 날까요?

 

 

머뭇거리며 멀어져가는 열기를 따라 천천히 감긴 눈을 뜬다. 달콤한 찰나였다. 기울어지는 고개가 그새 자연스러워진 것도 같았다. 잠깐 눈을 감은 사이 가벼운 접촉음이 스치고 훅하고 지푸라기와 풀잎 냄새도 코끝을 지났다. 무게감 없이 떨어지는 그것은 순식간에 온기마저 날아가 이번에도 역시 아쉽다, 고 생각해버리다 그런 스스로에게 내심으로 놀라기도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제 마음에. 또 해달라고 하면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맞추는 순간 재차 심장으로 주입되는 빠른 맥박을 느꼈다. 가슴께에 모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아직 지척의 거리에서 에셸을 보고 있었다. 시선이 뜨거웠다. 뻗어오는 손도. 계절은 아직 봄인데 우리는 빠르게 여름이 되었다.

뺨을 문지르는 손가락, 이어서 귓바퀴를, 목을 스치고 지나 묶은 머리카락과 목덜미의 경계 위로 덮이는 손. 천천히 옭아매오는 다정하면서도 뜨거운 감촉. 깍지를 끼워 비스듬히 받쳐오는 손길은 제가 쓰러지지 않도록 함일 테지만, 엉뚱하게도 에셸은 그의 손아귀 안에서 꼭 수확기의 과실이 된 기분을 느꼈다. 잘 무르익어 톡 따낼 때에 그가 다가왔다.

한 번으로 아쉬운 게 서로 마찬가지였을까? 입술보다 먼저 숨결이 느껴졌다. 눈을 감자 쿵쾅거리는 고동소리가 유난히 더 크게 들렸다. 따뜻한 감촉이 볼에 닿았다.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이어서 이마에 붙었다 떨어지면 다음은 어디지? 아직도? 빠르게 뛰는 고동이 이제는 귀까지 닿아 시끄러울 정도다. 입술이 눈가 위로 사뿐히 내려앉을 때엔 비명을 삼켰다. 유독 얇은 겹으로 이루어진 그 위에 눌리는 감촉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눈을 뜰 수 없었다. 콧잔등까지 지나고 나면 완전히 K.O였다. 아직? ? 끝났나? 시선이 여전히 꽂혀 있음은 눈을 감고도 알았다. 화상을 입은 듯 낯이 달았다. 어떻게 쓰러지지 않고 아직 서 있는 걸까. 가만 있지 못하고 기어코 입을 연다.

끝났어요?”

잘 익어 단내를 폴폴 내는 열매에게서 손이 멀어진다. 대신에 잘 모은 제 손 위를 덮으면 어떤 신호처럼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가 웃음을 터트린다. 산란하는 한낮의 열기를 몰아내듯 그에게서 여름 바람이 불었다. 이미 반해버린지 오래인데, 또 다시 처음처럼 사랑에 빠져버린다. 우스울 만큼 쉽다.

마지막은 아직 오지 않았던 거다. 제가 성급했다. 멍청하게 반쯤 벌어진 입술 위로 꾹 눌렀다 떨어지는 입술, 만일 손이 저를 누르고 있지 않았더라면 떨어지는 그것을 쫓았을까.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우물쭈물한 답이 돌아왔다. 끝났던 것 같기도 한데……한데?

모르겠어요…….”

자신 없는 목소리에 감추어진 말을 읽어낸다. 듣고 싶은 말을 멋대로 꾸며낸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다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이번엔 안 될 것 없으리라.

마음의 무게를 따라 몸의 무게도 그를 향해 기운다.

저는…… 조금 더, 하고 싶어요.”

열기에 눌려 가느다란 눈초리, 달아오른 뺨, 여름 공기를 삼키는 숨,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몽롱한 의식 너머로 찌르르하게 드는 신호였다.

 

 

소설 속 묘사처럼 레몬맛은 아니었다. 그보다 달콤했고 그래서 혼몽했다. 입을 맞추고야 알았다. 기대했었구나, 세상에. 소설을 재현하길 기대한 게 아니다. 온전히 연인과의 순간을 기다렸다. 스스로도 몰랐던 기대는 차고 넘치는 만족으로 돌아왔다. 팝핑캔디가 터지듯 짜릿한 기분이었다. 입술을 맞대는 행위가 이렇게나 기쁠 일이었을까?

무엇으로도 빗댈 수 없는 따스한 감촉, 입이 겹쳐지던 찰나 긴장으로 멈춘 호흡과 꽉 잡은 손, 솜털이 난 뺨이 부드럽게 닿았다 떨어지고 비좁은 틈으로 피부열이 간질간질 전해지던 순간, 느껴지는 상대의 맥박, 두근거림, 잊을 수 없는 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던 날. 첫키스의 추억이었다.


이전 거랑 진도가 바뀐 것 같지만 쓰기 시작한 건 이쪽이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