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서막
소중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
: 아라슈
그 아이에게선 언제나 햇빛을 머금은 잎사귀나, 부드러운 바람, 젖은 흙과 같은 냄새가 났다. 곁에 있으면 호흡이 편안해지는 맑은 공기가 풍겼다. 5년 전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조금 여린 듯 보이는 날개에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어느새 쑥쑥 성장하여 제 위로 파랗고 넓은 날개를 드리우게 되고 말이지. 조금 감탄해서 보고 만다.
하늘 조각을 떼어온 듯 태양을 가리는 새파란 날개 아래로 녹색의 장난스러운 눈동자와 눈이 부딪쳤다. 맞닿은 이마에서 퍼지는 옅은 온기, 머리칼을 살랑거리는 바람, 이렇게 가까우면 좀 부끄러운데…… 그러면서도 물러서지 못하고 그의 앞에 잠자코 있는 건 단순히 익숙해졌다기엔 조금 다른, 그가 말한 것처럼 유대감의 힘일까.
“역시 궁금해졌어. 에슬리의 옛날 얘기. 해줄래? 에슬리에게 소중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
예쁜 그 미소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다 눈꼬리를 내리며 응, 좋아. 하고 작게 답한다. 어려울 것 없는 요구였다. 여전히 코끝이 닿을 거리에 있는 그의 두 뺨을 손바닥으로 감싸고 조금 장난스럽게 이마와 이마를 문지르다 떨어진다. 여기서 이야기하기엔 장소가 조금, 서로 룸메이트가 있는 처지다 보니 가볍게 방으로 향할 수도 없어 잠시 고민하다 접객실과 비슷한 빈 방을 찾았다.
그렇지. 이번엔 내가 랏슈에게 차를 대접할게. 방까지 달려가 그가 보내주었던 찻잎과 푸른 장미 무늬에 금색의 테두리가 있는 다구를 가져와서는 제법 익숙한 손길로 찻잎을 우렸다. 여기 막 왔을 때는 매일 쓰던 베일이랑 물이 달라진 탓에 실패하기도 몇 번 했는데 이제는 레기르의 물도 적응했어. 살짝 긴장한 것을 숨기려고 일부러 더 재잘거리며 그의 잔에 바닐라와 캐러멜 향이 나는 다홍색의 차를 따라준다. 우선 향은 괜찮은데…… 살짝 걱정하며 그를 보자 한 모금 마시고 그는 활짝 웃어주었다.
“맛있어, 에슬리!”
“다행이다!”
그제야 안심하고는 건너편에 앉아, 제 잔에는 설탕을 세 개 넣고 티스푼을 빙글빙글 돌렸다. 으음, 그러니까 옛날 얘기네. 옛날 얘기.
“들어도 재미있을진 모르겠지만 랏슈가 궁금하다고 해주었으니까.”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는 찻잔 안으로 시선을 내린다. 다홍색의 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녀가 태어나 자랐던 고향, 이트바테르의 붉은 등이 떠올랐다.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 그러니까, 나는 이트바테르의 붉은 등 거리 근처 빈민가에서 발견됐어.”
생일을 모른다는 이야기는 예전에 했었지? 어디서, 언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그 빈민가에 주워져서 그곳에서 자랐어. 이트바테르는 말이지. 아무튼 매일같이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가 나와. 한쪽에는 사라지지 않는 쓰레기의 산이 있고, 허술한 하수구에는 새까만 물들이 흐르고. 날씨랑 상관없이 우중충한 곳이지. 그런 곳에서 나는 꼭 시궁창 쥐처럼 살아남았어.
그 당시에 내게 소중했던 것은 무엇이 있을까. 꾀죄죄한 아이들을 붙잡아 씻겨주던 할머니의 손길이나, 먹을 걸 나눠주던 아줌마들, 허름하고 너덜너덜한 신발도 상관하지 않고 같이 뛰어놀던 친구들, 그곳은 모두 똑같이 못 사는 동네라서 고아라는 건 모두 똑같이 –100인 와중에 –1이 추가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음~… 그러니까, 정서적으로는 부족하지 않게 자랐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그 때 소중했던 걸 말하라고 하면 나를 둘러싼 그 환경이 되겠네.
하지만 곧 보금자리가 박살났어. 내가 사일란이라는 게 밝혀졌거든.
“여전히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왜 굳이 사일란에게 표식 같은 걸 박아 넣는지. 우리가 국가의 관리를 받아야 할 만큼 ‘이질적인’ 존재라는 건가.”
불쾌하다는 듯 표정을 찡그리다 아, 하고 고개를 들어 건너편의 표정을 살핀다. 이야기가 샜네. 목가를 긁적이고는 말을 계속했다.
보통 사일란의 2세 같은 경우엔 태어나자마자 국가에 신고 되어 표식을 받는다고 하는데, 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고아이고 사일란의 특성이라는 건 겉으로 바로 드러나는 게 아니다 보니까 그동안은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브람처럼 자랐어. 그러다 재수 없게 눈치 빠른 국군에게 덜미가 잡힌 거지. 그렇게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보금자리가, 일상이 무너졌어.
이상하지. 아주 이상해. 목에 표식이 생기기 전이나 후나, 나라는 존재는 달라지지 않는데 말야. 갑자기 마을의 불행이 전부 내 탓이라는 양……──으음, 아냐. 이미 지나간 얘기니까.
더 말했다간 평온한 어조를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아 적당히 말을 끊어낸다. 지금은 많이 극복했다지만 여전히 떠올리면 숨이 막혀올 것만 같은 기억이다. 적의와 혐오, 악의와 배척, 견고하다 믿었던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얄팍하고 위태로운 것이었는지 깨닫던 붕괴의 기억. 자연스럽게 터지려는 한숨 대신 홍차를 한 모금 삼키고는 품을 뒤적여 십자 모양의 펜던트를 꺼냈다. 다음은 이것일까.
언제부턴가 품에 늘 지니고 다니는 대신 두고 다닐 수 있게 되었지. 잃어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대신 갖고 있어도 괜찮다고, 그렇게 생각이 바뀌었다. 꺼내보는 건 조금 오랜만인 것도 같아 표면을 문지르며 가볍게 웃고는 그의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이거, 아카데미에 다닐 적에 랏슈도 한 번 찾아준 적 있지? 나를 주워준 용병의 유품이야.”
이름은 후만이라고 해. 내가 5살 때 이트바테르를 지나가다 만나서, 같이 가겠냐고 손을 내밀어줬어. 에슬리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그 사람이야. 죽은 딸의 이름이라던가. 그를 따라 제 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
가만히 턱을 괴고는 그리운 얼굴을 떠올려본다. 거칠고 투박하고, 언제나 너저분한 사람이었지. 삶의 의욕 같은 건 느낄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이기도 했다. 죽지 못해서 산다는 마냥 하루하루를 그저 넘기던 사람. 멋대로 죽은 딸의 이름을 붙여 불렀지만 그 사람은 그녀를 딸로 여겨준 적이 없었다. 죽은 딸을 대신할 수 없다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또 다시 소중한 것을 만들 수 없다는 주저함에서 나온 애매한 태도.
“덕분에 그렇게 애틋한 사이는 아니었어. 어느 쪽이냐 하면 비즈니스적인, 파트너라거나? 그 사람에게 검을 쓰는 법, 돈을 쓰는 법, 아 글씨 쓰는 법도 그 사람에게 배웠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어설프지만 열심히 가르쳐주었어. 내가 어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도록. 죽지 못해서 사는 사람이었지만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던 거지.”
그 때는 무엇이 소중했던 건지 잘 모르겠네. 소중한 것을 만들 수 없었거든. 후만은 내게 늘 말했어. 미련을 갖지 마라. 돌아보지 마라. 날 위해 살아줄 수는 없던 사람의 필사적이고 우스운 이야기였지. 그게 결국은 남겨질 나를 위해 한 말인지, 제 죄책감을 덜기 위한 말이었는지는 아직도 판단이 서질 않아.
물론 그 사람과 보냈던 시간은 즐거웠어. 내 힘으로 살아가는 충만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하지만 역시 그 시절의 나는…… 바위사막, 그 터전과 다를 게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할지, 소중히 여긴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는 채, 사실은 어째서 그렇게 살고자 하는지조차 모른 채 다만 치열하게 보냈어.
찻잔의 손잡이 부분을 검지로 툭툭 두드린다. 후만과 함께 했던 날들을 돌이켜보는 건 언제나 기분이 이상해졌다. 황폐화 된 땅을 거점으로 삼아 지내던 후유증이라도 되는 걸까. 그 시절의 감정은 뒤죽박죽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런 색도 입혀지지 않은 것 같다가도 때때로 가슴을 옥좼다. 나를 버려둔 채 혼자 죽어버려선, 당신은 그곳에서 만족하고 있을까.
“……아, 미안. 잠깐 멍해버렸네.”
식은 찻물을 한 입에 털어 넣고 잔을 새로 채운다. 랏슈도? 눈짓으로 물어보고 그의 잔에도 차를 보충해준 뒤 다시 손잡이 부분을 톡톡 건드렸다. 그러니까 그 다음은……,
“후만이 죽고 나서는 뭘 하면 좋을지 몰라서 조금 방황했을까. 그 사람은 내게 아카데미에 가보라고 했지만 솔직히 내키지 않았어. 으음, 가야 하는 의미를 알 수 없었거든. 필요성도. 그렇다고 멍하니 넋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어서 일단은 움직이기로 했지. 아카데미에 잠깐 가보고 맞지 않으면 펭귄이나 보러 가려고 했어.”
아카데미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우연히 서쪽으로 가면 펭귄이란 동물이 있단 걸 알게 되었거든. 엄청 귀엽지 뭐야. 한 눈에 반했어. 목소리에 즐거운 빛이 담겨서는 들떠서 펭귄예찬만 재잘재잘 늘어놓았을까. 히히, 이를 드러내며 웃다가 다시 이야기를 되돌렸다.
“하지만 펭귄을 보러 갈 일은 없었어. 아카데미에서, 소중한 것들이 아주아주 많이 생겼으니까. ……응, 정말로. 이렇게 분에 겨워도 되는 걸까 싶을 만큼.”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곤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다. 지금은 완전히 전선기지화 되었지만 여전히 아카데미 시절의 풍경이 남아 있어,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의 모습이 떠올라 그리워지곤 한다.
“바위사막에서 용병 일을 하는 동안에는 또래와 만날 일도 없었고, 사일란의 동족을 만날 일은 더더욱 없었거든. 아카데미에 다니는 동안에는 뭐랄까, 정말 놀라운 일투성이였어. 하루하루가 즐겁고, 평화롭고, 충실하고, 그리고, 그러니까──”
제 입으로 말하는 건 어쩐지 낯간지러워져 열이 오른 두 뺨을 손등으로 꾹꾹 누른다. 이쪽을 물끄러미 향해오는 그의 시선에서 눈동자를 피하며 조그맣게 읊조렸다.
“애, 애정이란 거 있잖아. 그게, 쏟아져서. ……말도 안 되게.”
그런 거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마르고 갈라진 바위 위로 쏟아져 내리던 물이, 바위를 잘게 부수고 부드러운 흙으로 만들어주기까지는 대단히 순식간이었다. 1년도 채우지 못한 아카데미 생활이었지만 그 시절은 순간순간이 모두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스스로 말해놓고도 좀 부끄러워져 우물거리다 시선을 조금 들고 한 마디 더 덧붙였다.
“그곳에서 랏슈와 만나고 친구가 된 것도 정말로 소중한 일이야.”
아침마다 그가 주는 따뜻한 차를 마시고 산에 다녀오고, 내려와서는 같이 웃고 떠들고, 때때로 닿아오는 온기에 수줍어하면서도 맞잡고.
하지만 너무 짧았다. 덧없을 만치. 아카데미를 다니던 시절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카데미의 화석이 되진 않겠다고 하였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화석이 되어도 좋으니 거기에 남아 있고 싶었는데. 눈보라가 몰아치듯 아카데미에 남긴 그녀의 소중한 발자취들은 모두 희게 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지.
굉장히 속상했어. 많이 섭섭하고 아쉽고. 어째서 또? 라는 생각도 들었어. 내가 소중하게 여긴 곳은 왜, 라거나 말이지. 그래도 아카데미에 들어올 당시보다 망연하진 않았던 것 같아. 비록 한곳에 같이 있을 수는 없게 되었지만 모두와 재회하기로 약속했으니까. 또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이게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으니까.
“으음, 이 이후로는 랏슈도 거의 아는 이야기인데 말이지.”
편지에도 자주 썼고. 그렇게 말하며 눈짓을 하였지만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이쪽을 향해 반짝거리는 빛을 보이고 있었다. 끄응, 조금 곤란한 표정이 되어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마저 느릿하게 이야기를 더한다.
───이제까지 나는 한 번도 집이란 개념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 내가 지내던 빈민가에서도 온전히 내 공간, 돌아올 집이라기보다는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후만을 따라간 뒤에는 의뢰를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생활이었으니까. 당연히 내 물건이라 할 것도 갖지 않았고 돌아갈 집이란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어. 딱히 집만이 아니었지. 그간 내 머릿속에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의 아주 단순한 이분법이 전부였으니까.
그러다 에르덴이 거두어주고 베일의 그의 집에서 지내면서, ……조금씩 집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어. 랏슈에게 백작님은 가족이 되어주지 않았다고 했지? 하지만 디셈버는 달랐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의미. 내게도 에르덴은 그와 비슷한 존재였을까. 가족이라거나, 하는. 정작 그 사람 앞에선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윈터가든 령이라든지 지그라크, 화위, 열심히 돌아다니기도 했고 기사단에 들어간 뒤로는 아델하이에 머물렀지만 그곳은 변함없이 내가 돌아갈 집이었어. 우리 집이라고 부르거나 할 수 있는. 내 방을 갖고 방 안을 굳이 필요는 없지만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 필요는 없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장식하고 취향과 기호라는 게 자랐어. 신기하고 낯선 일이었지. 처음엔 뭣도 모르고 들떠서 잡동사니 같은 걸로 방을 채우기도 했는데 의외로 그 사람, 쓰레기라고 버리라거나 하지 않고 내버려두더라고. 그렇게 티를 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제 입으로 말한 것처럼 내 어리광이라거나, 그런 걸 받아주었던 거야.
“그렇지만, …… …….”
내게 그 사람은 소중한 사람이었고, 그 사람에게도 제법, 스스로 이렇게 인식하는 게 놀랍게도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어. 그랬는데──, 잠시 손목을 만지작거리다 한숨 섞인 목소리를 흘렸다. 덤덤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옅은 슬픔이 섞여 있었을까.
“그 사람 또한 나를 위해 살아줄 수는 없는 모양이야.”
딱히 세 번째라고 해도 상관없었는데. 이상하지. 언제나 소중한 것들은 손에서 빠져나가고 말아. 곁에 있어 달라고 아무리 붙잡아도 떠나가 버려. 몇 번을 거듭해서 이런 상실을 겪을 때마다 꼭 마음이 깨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끄응, 또 어두운 이야기로 빠지고 말았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게 아닌데.”
미안, 우중충했지? 멋쩍은 표정이 되어 뺨을 긁적이다 조금 답답한 기분이 되어 이제까지의 자세를 무너트리고 의자 위로 두 다리를 모아 올렸다. 쪼그리듯 조금 불량한 자세가 되어서 푸흐흐 웃는다.
소중한 것에 대해서 떠올릴 때면 자연스럽게 상실이 뒤따랐다. 언제나 제게 소중한 것은 동시에 지키지 못한 것이었다. 그 때마다 마음이 깨져버릴 것 같아서, 좌절하고 꺾이고 무릎 꿇고, 포기하고 싶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소중히 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던 건, 여전히 곁에 있어주는 이들이 있어서.
“괜찮아. 나는 지금의 내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여전히 강한 나로서 존재할 거야.”
랏슈는 내 말을 믿어줄까? 두 다리를 모은 채 갸우뚱하고 장난스레 몸을 기울인다.
“랏슈가 내게 유대를 느끼고 있다고 해준 말,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있었지만 역시 직접 들어서 기뻤어. 그만큼 나 또한 랏슈에게는 아주 소중하고 따스한 유대를 느끼고 있어. 지금의 내 소중한 한 사람이니까.”
랏슈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해. 그 말을 입에 담으면 자연스럽게 상냥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가 같이 나아가는 길이 외롭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어. 그리고 이런 신뢰를 안겨주는 랏슈를, 굉장히 좋아해.”
내게 소중함을 안겨주어서 고마워. 소곤소곤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쑥스러운 듯 입가를 가렸다. 그가 저에게 들려주는 만큼 그녀도 표현해주고 싶지만 언제나 제 표현은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들고 만다. 여전히 서툴러서, 그게 때때로 아쉽기도 하지만 부디 그에게 잘 닿았길 바라며 홧홧 오른 열을 내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뭔가 엄청 내 얘기만 늘어놓은 기분인걸. 이걸로 궁금증은 좀 풀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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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슈가 물어봐준 덕분에 얘의 서사를 a부터 z까지 정리해서 써볼 기회가 있었네요. 중간에 생략한 건 많지만 새삼스럽게 에슬리에게 있어 소중했던 것들은, 그 뒤에 이어진 상실은,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아마 2부에서의 관계들이 아니었더라면 벌써 무너져서 전부 손에서 놓아버리고 펭귄을 만나러 서쪽으로 떠났을 거예요.
랏슈랑은 정말 필링으로 소통했던 느낌이라 정작 서로 이런 얘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지만 그냥 믿고 좋아하고 랏슈는 내 행복의 파랑새고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