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부화로그 2
숲의 밤은 마을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해가 짧아지는 계절이니 더욱 그럴 만도 했다. 몸이 더 식기 전에 야영지의 모닥불 앞에 가 포켓몬들과 알과 불을 쬐었다. 이럴 땐 역시 불 포켓몬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불같은 건 능란 스스로도 3초만에 피울 수 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물어와 줄 친구들까지 생겼으니 더욱이 편하겠지.
그런 이유로 포켓몬을 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네가 누구든 사랑해주고 말 것인걸. 이유 있는 맹목盲目이다.
“여기선 어떤 아이가 태어나려나.”
누구는 힌트라도 받은 것 같은데 당당하게 전부 좋다고 해버렸으니 정말 짐작도 가지 않는 것이다. 서프라이즈일수록 궁금증은 부풀어만 간다.
불길이 일렁일 때마다 우르의 털색이 오렌지빛으로 물들다 돌아오길 반복한다. 신묘한 털을 복복 주물러주는 사이 나몰빼미는 알 위에 선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여전히 알을 경계하는 건 빠모뿐이었다. 이 겁쟁이가, 아니… 이건 트레이너까지 욕하는 게 되나? 대체 포켓몬은 트레이너를 닮는다고 한 사람 누구냐니까. 렌카가 들었으면 손가락질당했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맞다, 판짱이 태어났다고 했어. 마침 특성도 모모랑 같았네. 철주먹이었더라고.”
그래서 펀치 실력 하나는 기가 막혔다니까. 두런두런한 목소리에 맞춰 빠모의 귀가 쫑긋쫑긋 선다. 모닥불 열기에 몸을 녹이며 여자는 누가 듣든 말든 옛날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판짱은 워낙 개구쟁이라 초보 트레이너에겐 적합하지 않다고 하지만 능란에겐 와 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치치라고 이름 붙인 포켓몬은 뭐든 능란이 하는 걸 따라 하고 싶어 하는 녀석이었고 그러면 트레이너는 포켓몬이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는지 시험이라도 하듯 차롱숲의 곳곳을 누비며 말괄량이 짓을 했다.
부란다의 몫까지 대신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기도 했다. 혈육의 알에서 화살꼬빈이 태어난 뒤에는 서로 제 포켓몬이 제일 예쁘다고 유치하게 굴다가 싸우기도 여러 번, 파트너와 함께하는 순간이라면 그저 좋았다. 그때만 해도 능란은 판짱과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다. 평생이란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는 채.
“늘봄에서 형편없이 지기만 한 이야기야 뭐어, 다 들었지?”
그거야 누구의 탓도 아니었을 거야. 아니, 물론 내가 약한 탓이겠지만 르나르 씨가 말하던 것처럼 나 때문에 포켓몬이 쓰러지는 광경을 보는 건 자꾸만 나를 위축시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게 만드는데도, 몇 번을 쓰러지는 동안 치치는 한 번도 내 탓을 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더 치치에게 배지를 달아주고 싶었어. 힘내주는 그 아이에게 상이 되었으면 했어. 그랬는데──
「왜 진화하지 않아?」
오해를 방지해 빠르게 설명하자면 이걸로 판짱은 화내지 않았다. 싸운 것도 아니다. 문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두 가지가 발생하였는데 하나는 바보 같은 트레이너의 말에 자극받아 판짱이 더 힘내게 되었다는 것이었고, 하나는 바보 같은 말을 한 트레이너가 스스로에게 깊이 실망한 것이다.
고작해야 그뿐이었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결론은 결국 이 둘에게 ‘평생’이란 단어가 성립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꾸벅 졸던 빠모가 기어코 능란의 어깨에서 떨어질 뻔했다. 얼른 빠모를 받아든 여자는 쭈욱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그만 자러 가야겠다. 내가 판짱에게 차인 이야기가 궁금하거든 나중에 또 들으러 와.”
우르 위에 나몰빼미, 나몰빼미 뒤에 빠모, 알은 직접 안아 들고 양치기 소녀처럼 텐트로 간다. 품에 안은 무게가 전보다 묵직해진 것도 같았다.
늘봄에서 기권한 이후부터 극복해낼 때까지의 자캐가 유난히 회피형이고, 자폭해서 사람들이 자길 그냥 매도나 하길 바라고, 구질구질하고, 아무튼 너무 못난 꼴 보여서 (오너가) (롤플이)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서 부화로그 쓰면서 자캐 비설을 독백체로 풀어놓고선 자캐도 저도 답을 찾으려고 애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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