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부화로그
바람 한 번 불 때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계절, 쌓인 낙엽 더미 아래로 새 생명이 움트기 위해 땅도 쉬어가는 이 시기를 능란은 제법 좋아했다. 뭐니 뭐니 해도 버섯이 맛있기도 하고, 이 뒤에 찾아올 침묵하는 겨울까지 식량을 잔뜩 비축해두는 일이 즐거웠다.
이런 시기에 맡게 되는 알이라니, 능란 자신이 생명을 덮는 낙엽 더미처럼 따뜻하게 품어줘야 하겠다는 책임감이 더 들 법도 하다.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한 것 같으니까 믿고 맡겨보도록 할게. 어떤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예뻐해 줄 수 있다고 했지?”
“어떤 아이든 듬뿍 사랑해주도록 할게.”
부화기에 소중히 넣어진 알을 품에 받아 들고 능란은 힐쭉 웃었다. 알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텐트로 돌아오자 어느새 셋으로 늘어버린 포켓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만난 기간을 다 합쳐도 1년이 되지 않는 녀석들은 그런 것치고는 서로에게도 능란에게도 잘 적응했는데 그거 참 다행인 일이었다. 모난 구석 없는 성격들이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니까.
부화기에서 꺼낸 알에게 제일 먼저 관심을 보인 건 나몰빼미였다. 꽃가람숲에서도 적잖은 시간을 보내온 듯한 의젓한 가장은 본능처럼 알 위에 올라앉아 온기를 나눴다. 이어서 복슬복슬한 털을 자랑하는 우르가 옆구리에 알을 꼈고 능란과는 가장 오래되었으나 나이는 가장 어린 빠모가 기웃기웃, 조심스럽게 알을 톡 건드려보았다.
─얘는 뭐야?
건드리는 순간 말랑하게 튕겨오는 힘에 놀란 빠모가 후다닥 능란의 어깨로 올라간다. 알은 처음인가~? 어린 포켓몬을 쓰다듬으며 능란은 아이가 다 알아들을지 어떨지 모르는 채 재잘거렸다.
“알이야, 모모. 동생이 태어날 거야.”
아직 깨어나려면 먼 알은 그 껍데기가 매우 얇아 말랑말랑한 물주머니가 연상된다. 하지만 아주 강하고 질기게 보호되어 있어 쉽게 깨지지 않았다. 반대로 충분히 성장해 깨질 날이 다가오는 알은 표면이 두꺼워진 착각이 드는데 정작 깨지기 쉬운 설탕코팅이나 유리처럼 변해 알 속의 포켓몬이 스스로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정도로 말랑하다는 건 아직 키울 날이 한참이란 말이네. 알의 크기를 손으로 측정한 능란은 어림잡아 알이 성장하기까지 걸릴 시기를 가늠해 보았다.
「알을 받아서 키우는 기쁨이야 이미 아니까.」
「이미 안다고? 지금 네 파트너…… 모모?」
「아니이, 어머니의 부란다가 가져온 알이 있었어.」
10살인가, 11살인가. 아무튼 어렸을 적의 이야기다. 포켓몬의 알이 어디서 생겨나는지는 여전히 연구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지만 콩 심은 데서 콩 나고 팥 심은 데서 팥이 나듯 부란다가 데려온 알이라면 대충 어느 알그룹에 속하겠구나 무엇이 태어나겠구나 하는 짐작이야 들었다.
당시에는 얼마나 마을 사람들의 구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인형을 데리고 소꿉장난이라도 치듯 능란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어깨끈과 포대기로 하루 종일 알을 업고 다녔고 안고 다녔다. 품에서 떼어놓을 줄을 몰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쌍둥이와 다른 것이 생겨 더 신이 났기도 했으리라.
부란다가 가져온 알은 하나뿐이었고 다다는 그 알의 양육자로 능란을 지목했다. 그 일이 충격이었는지 하루 동안 사라졌던 혈육이 머리가 온통 까치집이 되어 모르는 알을 가져온 건 10년이 다 되도록 밥상머리의 이야깃거리다. 덕분에 어미가 있는 알이면 어쩌느냐고 무지막지하게 깨져 대문에 거꾸로 매달렸던 건 아무튼 넘어가고…… 몇 날 며칠을 애지중지 알을 돌보았다. 알에서 심장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땐 밤에 잠도 못 자고 들떠서 부모님을 귀찮게 했다.
꼭 안은 알과 어느덧 심장 소리가 일치해 갈 즈음에는 예상을 깨지 않고 보란 듯이 판짱이 부화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축축한 판짱을 품에 안으며 아이는 외쳤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줄게!」
──모모는 여전히 알을 경계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리 냄새를 맡으려 해도 아무것도 풍겨오지 않으니 더 낯설고 무서운 모양이다. 겁먹지 마, 곧 우리 또 친구가 될 거야. 날 선 빠모의 등을 느긋하게 쓰다듬으며 능란은 알의 크기에 맞도록 어깨끈의 길이를 조정했다. 한 바퀴 잘 두르고 나니 아주 튼튼하고 안정감 있었다.
10살 어릴 때와는 높이도 몸의 형태도 많이 달라져 버렸단 실감이 들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그 시절과 다르지 않아 어딘지 모를 벅참을 느꼈다.
“네게 좋은 영향력이 되었으면 좋겠어.”
가볍지 않은 그 무게가 더할 나위 없이 기꺼웠다.
기존에는 메가진화 시스템을 이용했고, 알 껍데기로 힌트도 주셔서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했는데 이번엔 테라스탈 시스템이기도 했고 정말 누가 태어날까 두근두근했어요.
판짱을 알에서부터 부화시켜 키워냈던 만큼 자캐가 많이 고민했는데 제 생각보다도 더 자캐는 도전하길 좋아하고 새로운 것도 좋아하고 알을 키워낼 때의 기쁨을 다시 느껴보고 싶고, 자캐 스스로 "그럼에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서 서향 씨에게 자기가 한걸음 나설 핑계를 찾아 말을 붙였던 것 같아요.
꽤 약아빠진 녀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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