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는개마을 아르바이트
한주의 중간을 찍는 수요일 밤, 사위는 캄캄하게 어둡고 밤바다는 그 새까만 해저에서 무엇이라도 튀어나올 듯 불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닷속의 무언가가 마을을 덮치지 못하게 등대를 세운 걸까. 등대에서 쏘아져 나오는 빛이 어둠을 물리치도록 말이다.
제 몸조차도 분간이 가지 않아 무용한 시력을 버려둔 채 귀만 기울이면 그나마 파도가 철썩, 또 처얼썩하며 공포를 씻어내고 대신 설렘을 안겨주기도 했다. 대나무 숲에서만 지내던 여자는 파도 소리만한 음악이 또 없었다.
푸실에서 시작한 여정이 다님길을 전부 밟고 어느덧 모래톱길로 넘어갔다고 하는데, 능란은 여전히 는개마을 근처에 출석 도장을 찍고 있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땅거미 습지에서 만나고 싶은 포켓몬이 있던 탓이다.
“꼬시레라고 하는데, 내가 물 타입도 벌레 타입도 없거든. 그래서 이 녀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둥그레서 귀엽기도 하고.”
귀여운 만큼이나 진화한 모습이 멋지기도 하고. 최근 깨달은 취향이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절지동물 쪽에 취향이 있는 모양이다. 언젠가 다태우지네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근래엔 하고 있었다. 마침 불꽃 타입도 찾던 쪽이 아닌가. 벌레가 둘이 되어버리겠지만.
벌레를 둘이나 데려올 거였으면, 그럴 줄 알았으면──
“사실 정말 좋아하는 녀석들을 데리고 오려고 한다면 너부터 데려왔어야 했는데.”
전기 타입도 참는 게 아니었는데.
영문도 모르는 채 이야기를 듣던 찌리배리는 ‘에엥, 나아?’ 둥그런 배를 튕기며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배꼽을 건드리지 않고 말랑한 몸을 만지는 일이 능숙해진 능란은 찌리배리의 양손을 조물거리며 히죽 웃었다. 그래, 너 말이야. 너. 는개의 등대였다. 최근 등대지기 일에 어려운 일을 겪고 있다는 찌리배리를 북돋아줄 겸 능란은 이곳을 방문해 있었다.
“딱히 특정 타입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전기는 왠지 볼 때마다 마음이 끌리고 좋단 말이지이. 모모를 데리고 다니면서 생긴 영향인가? 전기 타입만 보면 다 우리집 애 같아서, 이게 바로 4살 애가 생기면 4살만 보이고 8살 애가 생기면 8살만 보인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그래서 예전에 빈나두를 만났을 때도 엄청 고민했는데…… 빈나두의 꼬리는 전기를 만들어내는 동력이라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게다가 그 부유능력은 전자부유잖아. 빈나두 시절부터 이미 전자부유가 가능하다고?? 찌리배리로 진화하면 또 얼마나 멋있어. 북동쪽 해안부에는 저리어가 있고…… 언덕길의 토게데마루라든지…… 모래톱길로 가자마자 목도리키텔이……”
한 번 불붙기 시작한 전기 타입 토크가 끝날 줄 모른다. 이러다 리서치에 가야 하는 것도 잊고 날이 밝을 지경이었다. 찌리배리를 옆에 끼운 채 전기의 아름다움을 토로하던 능란은 한참 뒤에야 핫, 하고 원래 목적으로 돌아왔다. 아니, 내가 준비한 필살! 찌리배리 상담기법은 아직 한 페이지도 넘기지 않았는데!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사이 찌리배리는 50년 들을 칭찬을 한 번에 다 들은 표정으로 승천해 있었다. 어이어이, 잠깐만, 이걸로 된 거냐고~!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500가지 멋진 말이 남았는데. 바닷바람이 불자 능란의 뒤로 책자가 팔랑팔랑 넘어갔다. ‘사실은 나도 말이지.’로 시작하는 이야기에는 나도 자꾸만 실패해서 자신감을 잃었던 시기가 있었어, 라는 자전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평소엔 잘하던 것도 어쩐지 할 수 없게 되지. 그래도 너도 이대로 그만두고 싶지 않으니까 도움을 청한 거지? 우리 같이 해보자. 이대로만 갔으면 꽤 감동적인 시나리오였을 테지만……, 전기 타입 오타쿠의 계산 없는 애정은 때론 과정은 다르나 뛰어난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법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기운을 차린 찌리배리를 보며 능란은 피식 웃었다.
“그래, 다행이란 거야. 무엇보다도…… 너는 스스로 찌리배리까지 도달할 만큼의 간절함이 있던 거잖아. 나는 언제나, 스스로가 어딘가 미적지근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너처럼 간절하게 무언가를 달성해낸 녀석을 보면 응원하고 싶어져. 등대의 빛이 저 멀리까지 닿도록 힘내보라구. 다음에 또 응원하러 와줄 테니까.”
미적지근한 부류에 속하는 인간은 땅거미 습지 방문을 오늘로 끝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이 될 방문에 찌리배리가 내비치는 빛이 은혜롭게 닿기를 바랐다.
이런 미적지근한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야. 너도, 나도 그저 선택했을 뿐이잖아.
찌리배리 키우고 싶다
'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카테고리의 다른 글
036) 10.28. 달걀로 바위 치기 : 모아체육관 도전 (0) | 2023.12.27 |
---|---|
035) 10.26. 민들레 홑씨와 모래바람 (0) | 2023.12.27 |
033) 10.23. 몽상가(夢想家) (0) | 2023.12.27 |
032) 10.20. 몰입(沒入) : 는개체육관 도전 (0) | 2023.12.27 |
031) 10.20. 꽃과 태산 (0) | 2023.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