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렌카 귀하
당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 입을 열자마자 꺼낸다는 말이 이것이었다. 저와 상관없는 분야까지 시시콜콜 비교하고 재고 따지며 질투하는 세상에 다시 없는 옹졸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잘하고 싶은 일이야 있기 마련이 아닌가. 그런데 그 잘하고 싶은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바로 옆 사람이 나보다 잘할 때, 그것이 운이든 실력이든 노력이든 그저 잘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는 어떻게서도 격차를 메울 수 없을 때, 좌절하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그러니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축일 것이다.
이럴 때 옛 명언이 하나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인간은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불행해졌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써볼까? “인간이 자연 상태를 벗어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서부터 저마다 남들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도 주목받고 싶어지게 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대중의 평가가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불평등을 향한, 그리고 동시에 악덕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세상은 불평등하고 또 부조리하다. 필연적으로 기울어진 세상에서 기울어진 채로 우뚝 선 우리는 선택해야만 했다. 불평등한 세상을 받아들여 데굴데굴 굴러가버리고 말지, 바로 서고야 말겠다고 아등바등 꼴사나운 노력을 할지.
그러나 아무리 노력한들 오르지 못할 산이라면 굴복해 저 구렁텅이까지 떨어지는 편이 차라리 편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다른 산이라도 찾지.
그럼에도 꿈꾸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을 우리는 '몽상가'라 불렀다. 구질구질한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멋들어진 이름이다.
여기 조금 다르면서 비슷하고, 비슷하지만 결국 다른 두 여자가 있다.
“그러니 다르지. 어느 한쪽도 확실히 하지 못하는 나와, 비록 환영받지는 못했지만 결단을 내렸던 자네와는.”
다시 한번 말하건대 인간은 남에게는 있고 자신에겐 없는 것을 비교하면서부터 불행해졌다. 선악과가 주던 효능도 그것이 아니었던가. 자색의 고급스런 비단으로 몸을 감은 여자는 저는 내리지 못한 결단을 내린 건너편의 여자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너편의 여자로 말하자면,
“그런데도 난 꿈이란 게 있는 누님이 부러운데.”
비식 웃고 만다. 서로 이렇게 갖지 못한 것만 보고 있었다.
“한쪽도 확실히 하지 못한 건 누님의 머리와 마음이 의견을 통일하지 못한 탓이잖아. 9년? 나였으면 그 반도 채우지 못하고 의지박약처럼 그만두고 말았을걸. 실제로도 그랬지. 한 번 완전히 그만두려고 했어. 그건 분명 어떤 결단이었지만 동시에……”
그만큼 좋아하진 않았던 거야.
배틀에 진심인 사람들을 볼 때마다 묘하게 스스로에게 걸던 제동과도 같았다. 난 저만큼 진심이 아니니까. 난 저만큼 노력하지도 않았으니까. 난 저만큼은…, 그렇게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안 좋은 버릇이란 건 알았지만 안다고 뚝딱 고쳐질 리 없었다. 그냥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아는 게 최선이었다.
당신도 그렇겠지. 사람들 앞에서 혼신으로 내보이는 허세, 어쭙잖은 컨셉,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거드름을 피우다가도 솥뚜껑이라도 떨어졌다 하면 꼬리를 말고 도망간다. 그런 별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그저 다년간에 걸쳐 스스로 ‘알게 되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데, 자 이제 누구와 싸우면 되지?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론 돌아가고 싶지 않지. 누님은 지금도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연기를 좋아하잖아. 무대를 좋아하고. 변신이 가능한 포켓몬을 찾아다니고 그 녀석들과 같이 무대를 꾸미는 생각을 하고,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그만두라는 말은 너무 잔인하지 않아.”
그렇다고 무한정 도전해보라는 말은 또 반대로 잔인하기도 했다. 꿈이 밥 먹여주진 않는다는 현실적인 이유다. 그만둬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기는 해. 능란은 누군가 말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포기해. 그만둬. 안 되는 일에 매달리지 마.”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내려왔다. 그래, 이것도 결단이라면 대단한 결단이다. 자랑스러운지는 차치하더라도.
“누님은? 그 반대에 있다니깐. 포기하고 돌아오란 말 지겹게 들어온 거 아니야? 그런데도 근성 있게 9년이나 버텼잖아.”
그만큼 좋아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기만 한 것 같은데, 나에겐. 저의 말을 듣는 상대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으핫, 웃는다. 아니, 서로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누가 더 부럽네를 따지려고 이런 말을 꺼낸 게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습성이라는 게 이렇게 만들어졌으니 질투하고 부러워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다음 말에 있었다.
“하나를 올곧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해. 부럽기도 하고. 나한테 그런 줏대 있는 재능은 없거든. 어느 순간에도 진심으로 몰입하기 전에 한 발 빠져 재고 있지. 그러니까…….”
──어차피 그만둘 걸 고민하고 있다면 딱 1년만 더해보자. 10년 채워보자고.
앞선 말이랑 전혀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결론에 다다라 여자가 개구지게 웃었다.
“아~ 잠깐, 잠깐. 폭력 반대. 또 때리려고 하지 말고 자, 자. 들어보라니까.”
또 특기의 궤변이다. 그래도 일단 들어나 보라고 돗자리를 깐다.
누님이 그만둘 용기가 필요하다면, 현실이라고 하는 지긋지긋한 것의 앞에 서야만 한다면, 그런데 도저히 자기 발로 안 될 것 같으면 내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뻥 차주겠다는 거야. 딱 10년째 채우고 나면.
그거야 뭐, 비슷한 사람끼리 해줄 수 있는 호의 아니겠어? 아니면 결국 누님을 소중히 해줄 자신이 아닌 ‘남’이라 해줄 수 있는 무도함일 수도 있고. 듣고 나면 확 열이 받아서 ‘까짓껏 10년이 대수냐, 11년도 해주지.’ 같은 엉뚱한 의욕까지도 불 지필 수 있게 확실하게 밀어주겠단 거야.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어차피 우리 지금은 캠프에 참여하고 있잖아. 여기선 중간에 그만 내리지도 못한다구? 여기 한 배에 올라 탄 동안에는, 조금 더 솔직하게 좋아하고 솔직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해보란 거야. 이 무대야말로 누님이 통과한 첫 오디션인 셈이니까.
“지금 여기가 누님의 무대잖아.”
타인의 반짝임을 우러러보지 않아도 당신은 당신의 무대에서 이미 빛나고 있다는 걸 알 때도 되었어.
서로 꽤 닮은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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