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모아체육관 챌린저 클래스
──자, 오늘도 브리핑이다. 능란은 손뼉을 치며 자신의 포켓몬들을 모았다. 극히 최근에 파티에 합류한 꼬시레, 샤샤는 수줍음 많게 다른 포켓몬들을 피해 반쯤 모래에 묻혀 있었다. 촉촉하게 자신을 감싸주는 습지의 진흙이 아니라 물기 한 모금 없이 퍽퍽한 모래땅이라니. 여전히 속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꼬시레였지만 낯선 포켓몬들로 둘러싸인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들 사이에서 몸을 숨기는 게 급했다.
그런 꼬시레의 등을 간간이 긁어주며 늘봄에서도 는개에서도, 그리고 모아까지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파티에게 능란은 면목 없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기기 힘들 것 같다는 거야.”
일주일 가까이 고민한 결론이었다. 꼬시레를 데려왔으니 된 거 아니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꼬시레는 물론 전력에 필요하지만 단순히 능란이 원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이 트레이너는 꼬시레 하나로 전세를 뒤집을 정도로 배틀에 기발하지 않았다. 데리고 나가기에는 훈련도 부족했다. 이모저모 다 따졌을 때 결국 힘이 부족했다.
바로 전주에 는개 체육관에서 당당히 이기는 시합을 하고 싶다고 한 주제에 모자라는 결론이었다. 마타리가 보았다면 헛웃음이라도 흘렸을까.
그러나 이런 점마저도 제 포켓몬들인지 모모도 배배도 나나도, 능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 다른 반응은 없었다. 싫다거나 분하다거나 한 반응도 없이 그렇구나, 하는 납득. 모모가 트레이너에게 꿍 부딪혔다. 그래도 괜찮아? 란은 괜찮아? 빠르모트로 진화하고부터 부쩍 의젓해진 모모를 품에 안았다. 그러게, 생각중이야. 난 란이랑 같이 하는 거면 다 좋은데….
배배는 이기고 지는 것에 깊은 호오가 없었다. 이번에도 트레이너가 내게 부탁하는 역할이 있다면 그것을 따를 뿐이었다. 무리 전체의 화합을 중요시하는 성격다웠다. 나나는 냉정한 표정이었다. 네 말이 진실이니까. 힘의 차이는 인정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고자 하는 능란의 판단까지도 따랐다. 도전하고 싶은 이유가 있지? 그 신뢰가 무겁기에 기뻤다.
속상한 건 오직 위위뿐이었다. 또 쓰러져? 싫어, 싫어. 이기고 싶어! 나도 쓰러트릴래! 시합에 나갈 때마다 번번이 와장창 깨져서 돌아온 위위로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아직 조그만 녀석을 불러 날갯죽지를 조물조물 안아준다. 저번까지는 팀이 이기는 길이 네가 이기는 길이라고 위로라도 했지만 이번엔 그마저도…….
“너희의 마음이 모두 내 마음이야.”
트레이너의 마음을 네 조각으로 나눈다면 포켓몬 하나하나의 반응이었다. 마지막으로 늘 숨고 싶은 꼬시레까지. 그들의 마음 하나하나를 모아서 조각을 맞추면 그 복합적인 감상이 다시 능란의 심정이 되었다. 한 마디로 할 수 없는 기분을 안고 체육관에 오른다. 그러나 결국은, 오르고 싶었다.
차례가 되자 단단한 바위 위에 세워진 필드로 올랐다. 사방이 바위산으로 가로막힌 덕분에 필드 위까지 모래바람이 덮치는 일은 없었다. 기다리고 있는 짐 리더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리모 관장님. 인사는 저번에도 했지만 오늘은 챌린저로서 인사할게. 푸실에서 온 능란, 배지 6개를 목표로 하는 풋내기 트레이너야. 오늘은 말이지…….”
어쩌면 리모 씨가 보기엔 준비가 미흡한 채로 오른 무모한 챌린저일지도 모르겠어. 말과 함께 네 개의 볼을 손가락에 끼웠다. 짐 리더가 선보일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바위에 비하면 무르고 연약하기만 한 녀석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내 마음이 또다시 패배가 두려워 주춤거리지 않기 위해서, 그런 스스로의 마음과 싸우기 위해서 왔어.”
나는 사실 지는 게 너무너무 싫거든. 그런데 지는 걸 싫어한다는 걸 들키는 게 더 싫어. 그런 나를 극복하기 위해서,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온 거야.”
시합을 하기도 전부터 질 생각인 트레이너라고 생각하진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말만은 청산유수인 트레이너는 힐쭉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1%의 기적을 바라며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열혈 캐릭터는 맞지 않았다. 그보다는 차라리 치밀한 준비와 계산 끝에 99%의 확신을 가지고 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99%의 확신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고 싶지도 않았다. 거기까지 준비해놓고도 1%의 만약을 겁내고 싶지 않았다.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줄타기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강함을 갖고 싶었다.
“리모 관장님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배틀에서 진 적 많았어? 짐 리더가 된 뒤로도 지는 경험은 계속 있었겠지.”
비록 관장으로서의 패배란 본연의 실력을 모두 내보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누적되는 패배의 경험 속에서도 흔딜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또한 관장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겨우 배지 1개를 얻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이 지는 경험을 했는데. 5년의 시간을 보내놓고 겨우 한 걸음 전진했더니 배지가 0개에서 2개가 되기까지는 또 쏜살같이 지나가더라고. 그런데 막상 순풍을 타기 시작하니까 다시 덜컥, 겁이 나는 거야.”
계속해서 이기고 싶다. 지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 지는 게 두렵다. 아니, 져버린 뒤의 초라한 내가 싫다. 참 오만하고 배부른 고민이 아니겠어? 그간 쌓아온 패배는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져본 적 없는 사람처럼.
패배 앞에서 의연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저는 절대 패배해선 안 된다는 절박한 이유조차 없으면서. 그렇기에 이 자리에 서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서서, 맞서고 싶었다.
“지금도 내 힘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단 걸 알면서도 운 좋게 이기면 나는 체면도 없이 넙죽 주는 배지를 받아버리고 말 거야. 하지만 그만큼, 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도망치고 싶지 않았어. 패배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경험이 무엇인지 제대로 손에 쥐고 싶었어.”
“오늘 나는, 리모 관장님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갈 거야. 그리고 리모 관장님과도, 또 내 스스로와도 싸워낼 거야.”
당랑거철을 겨우 넘어왔는데 이번엔 다시 달걀과 바위가 부딪치라니 가혹하기도 하지. 하지만 제 안의 두려움에게 과거처럼 먹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술렁이는 감정들을 모두 안은 채 능청스러운 미소를 입에 건다.
“당신이 가진 바위의 단단함이 아무리 무거워도 버거워도, 무너지지 않는 유연함을 보여줄게.”
진짜 메챠쿠챠하게 졌는데, 그 뒤로도 수가 안 보여서 클래식하게 다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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