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바쿠
001. 07.11. 절교 for.바쿠
이능력이 처음으로 발현하던 날엔 기쁨보다도 얼떨떨함이 컸다. 드라마틱한 깨달음은 없었고 천지가 개벽하지도 않아, 처음엔 그저 어디선가 나비가 날아왔다고만 생각했다. 그 나비가 자신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았을 땐 ‘나비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했고. 그건 비눗방울을 불거나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심심한 능력이구나 정도의 감상이었다. ─차라리 나비 대신 돈다발을 만들어내지.
보기에만 예쁜 줄 알았던 그것의 정확한 쓰임을 안 건 옆집 소년에게 찾아가 자랑하던 때였다. “맥, 내가 예쁜 거 보여줄게.”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잠긴 소년을 웃게 해주고 싶었다.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불러낸 나비 앞에서 어째서인지 소년이 울었다. 울면서 웃었다.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 아이가 최초로 발동한 이능력이다.
이능력자가 된 소녀에게 몇 가지 우여곡절이 지나간 건 불필요한 이야기니 생략하자. 중요한 건 이후 나비를 불러내는 소녀와 가족을 잃은 소년이 어떻게 서로에게 기대게 되었는지다. 소꿉친구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기운을 냈으면 했다. 정말 그뿐인 바람이었다. 그런데 제 이능력이 그를 기쁘게 하는 데 쓰일 수 있다니, 뿌듯했다. 자랑스러웠다. 대단한 성취감이었다. ──이 성취감은 이후로도 이능력으로 사람들의 도움이 될 때마다 이온의 자긍심 그릇을 채워준다.
이후 소년이 바랄 때면 그리운 환상을 보여주었다. 악몽 꾸지 않는 편안한 밤을 만들어주었다. 환상에 빠진 소년이 점점 의존해도 그것이 잘못된 줄 몰랐다. 도움이 되면 좋은 거잖아. 나는 언제나 맥의 곁에 있을 거니까. 순진했고 그만큼 순수했다, 그런데 때론 순수가 독이 되기도 해서 그것이 성장의 방해가 되는 줄 몰랐다.
돌이켜보면 그때 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한 이별이었고 이별을 딛고 일어날 마음의 강함이었다. 그러나 환상은 그 어느 것도 주지 못했다. 햇빛 닿아야 할 자리에 우산을 펼친 꼴이다. 그렇게 해서 마음 한구석이 곪아가던 줄도 모르고.
다행히도 겉으로 보기엔 표도 나지 않는 그 사소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두 사람 모두 건강하고 바르게 자랐다. 어느샌가 청년의 곁에는 환각 같은 것을 보여주지 않아도 마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연인도 생겨서, 그땐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더는 환각에 의존하지 않게 된 것을 축하해주었다.
본능은 이때부터 알고 있던 것일까. 제 능력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그럼에도 그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소중한 친구니까, 어쩌면 친구보다도 형제에 가깝게 느낄 만큼 소중하고 좋아하니까.
방법이야 무엇이라도 좋았다. 결국 이능력이란 것도 도구에 불과해 무엇이든 그의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면, 그를 “괜찮도록” 할 수 있다면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환각을 요구하고 온기를 갈구하고 애정을 더듬듯 강제로 안아올 때조차 그것이 그를 “괜찮도록” 할지도 모른다고 믿어 밀어내지 못했다. 그 스스로도 알던 것처럼 끊어내지 못했다.
“깨닫는 게 조금 늦었어.”
하지만 아니었다. 무엇이라도 좋은 방법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당신에게 환각을 보여주고, 당신과 몸을 섞고, 그렇게 하는 게 하나도 당신을 ‘괜찮도록’ 만들어주지 않는데 그것은 치료라기보다는 그래, 정말로 마약처럼 당신이 스스로 설 힘은 주지 않는데 어쩌면 내가 미련해서 인정할 수가 없어서, 결국에 나는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우습게도 그 사실을 그가 스스로 말할 힘을 얻고 나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 말이다. 그는 얼마든지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인간관계에 서툴더라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소중한 친구 몇 명이 있고 의지할 스승이 있고 소속이 있고 얼마든지 다정할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자신은,
“나를 곁에 두지 말자.”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소녀는 영원히 그 첫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후관 짠 소꿉친구의 분리불안을 고치기 위한 긴 여정의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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