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ED

002. 명명

천가유 2024. 9. 20. 00:00

for.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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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07.21. 명명命名 for. 노아

 

비스트Beast. 처음 데우스에서 그를 목격했을 적부터 그 코드네임은 차라리 이름인 것처럼 잘 어울렸다. 검은 짐승, 포식자, 유능한 사냥꾼, 제 몸만한 도끼를 들고 다니는 여자아이는 섣불리 다가가지 못할 만큼 위협적이었고 형형하게 빛나는 눈에서는 어떤 재갈이나 고삐도 들어먹지 않을 고집과 오만이 엿보였다. 저 짐승을 대체 누가 다루고 길들일 수 있을까. 잘못 걸리지 않기 위해 그저 피해 다니는 게 최선이었다.

퍼스트First. 그 호칭을 입에 담을 때는 나이보다도 어려 보이는 얼굴이 유독 천진하게 우쭐거렸다. 첫번째가 좋잖아. 하지만 그건 순서일 뿐인데도요. 심지어 그는 영원히 퍼스트도 아니었다. 당신의 라헬이 오면 세컨드로 물러날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퍼스트는 비스트보다도 더 이름 같지 않았다. 그것으로 당신을 증명하고 상징하기에는.

이름으로 불리기 싫다는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는 건 여자의 성격과 맞지 않는 일이었다. 비스트든 퍼스트든 불리고 싶은 대로 불러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하지만 거기서 네가 궁금한 것이 아니냐고 물어오거든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을 더 알고 싶어서요.”

그래서 이름이란 것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갖느냐 물어보거든 또 한 번 말할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당신에게 제일 처음 주어지는 기프트Gift가 아니냐고.

제 이름은 이오니아 해의 바다에서 따왔어요.”

잠시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떠들기로 한다. 장화를 닮은 반도, 그중에서도 앞굽 쪽에 위치한 칼라브리아주의 한 바닷가 마을은 기다랗게 뻗은 해변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는데 새하얀 백사장 위로 파도가 하얗게 밀려들 때면 왜 과거 이 땅의 사람들이 파도를 보고 하얀 소나 말이 달리는 풍경을 연상했는지 금세 이해가 됐다.

여자의 이름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Mare Ionio. 그중 앞의 세 자를 따서. 혹은 바다를 건너 역경을 이겨낸 요정의 이름에서.

네 태몽은 아주 예쁘게 생긴 흰 소가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었다고 어머니는 몇 번이나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소가 얼마나 예뻤고 눈망울이 선했는지, 바다를 달려가는 뒷모습이 위풍당당했는지 동화처럼 읊어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이었더라. 늘 들려주던 이야기와 조금 다른 걸 말해왔다.

태몽이면 소가 엄마 품에 들어와야 하는데, 이오는 멀리 가버렸잖아. 그래서 엄마는 네가 언젠가 엄마를 두고 가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아이가 다 크면 부모에게서 독립시키는 게 당연한데도.

스무 살의 여자가 정식으로 히어로 기관에 속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내가 엄마를 두고 가긴 어딜 가. 돈 많이 벌어올게.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꼭 다 키운 자식을 내놓는 것처럼 보내줘서, 그게 못내 서운하기도 했다. “부모는 다 이렇게 자식을 독립시키는 법인가 봐요.” 네게 공감을 바라듯 떠들던 눈이 슬쩍 휘었다.

지금의 너는 숲에서 시작해 그 이전의 흔적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비스트 이전의 과거에 어떤 무게 한 톨 부여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너는 여전히 비스트면서 퍼스트이자 노아 리였고 너의 라헬은 그 이름으로 널 부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명명이란 도저히 그만큼의 무게를,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굳이 불투명한 과거를 떠올릴 필요는 없겠죠. 싫으면 말아요. 제가 궁금했던 것도 맞지만 그보다도 음.”

늘 이런 식으로 이능력을 사용해 왔기에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잊어버린 과거를 찾아주고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자신의 이능력을 옳게 쓰고 있는지 고민하면서도 이미 능력은 제 일부였기에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였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찾아주고 싶어서. 상대의 경계를 누그러트리려는 듯 눈꼬리를 축 내렸다.

다만 과거가 어찌 됐든 간에 그 이름도 당신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요. 알고 있어요? ‘노아’.”

비스트, 퍼스트, 그리고 노아. 한 차례의 멸망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인간의 이름. 네 부모가 어떤 의도로 그 이름을 붙여주었는지 지금에 와서야 알 수 없다 해도.

「──세계의 위기인 게 무슨 상관이야?

세상이 온통 물에 잠길 때도 혼자 살아남았던 그 이름처럼 당신도 세상이 온통 숲에 잠기더라도 따라 숲이 되지 않고, 살아남도록요. 강하고 멋진 이름이에요.”

언젠가 홀로 승리한 네 머리 위에 월계수 잎의 희망이 올라가도록. 그렇게 생각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의 갈피를 잡지 못해 글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맘에 안 들었지만 이렇게 써놓고 안 줄 수도 없었어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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