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사막에서 들어온 여행자들은 머리끝까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노란 모래알들이 후두둑 쌓여 여행자들이 걸을 때마다 등으로 어깨로 사르륵 떨어져 내렸다. 흙먼지와 모래알, 무기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이들은 평범한 마음이라면 환영받지 못할 객이었지만 다행히 이곳은 그들과 같은 용병이 드물지 않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다들 무심한 눈으로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황폐화가 진행 중인 사막에서 몇 마을을 거치면 나오는 이곳은 의뢰를 받고 사막을 전전하는 용병들이 물자를 보충하러 종종 방문하는 곳이었다. 사막 근처의 마을도 생필품은 취급했지만 사막과 가까워 보급이 어렵단 이유로 값이 비싸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용병들이라면 조금 멀어도 이곳이나 이 너머까지 와 물자를 사가곤 했다.
지금 막 사막에서 돌아온 이 무리도 이곳에서만 파는 물건들을 사기 위해 걸음을 한 것이었다. 대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는 황폐화 지역에서 지내는 인간들이 으레 그러하듯 어두운 안색에 초췌한 얼굴이었다. 걸음걸이에서조차 지친 기색이 완연한 가운데 태연하게 대장의 옆을 걸어가고 있는 작은 인영만이 무리에서 조금 유별난 구석이었을까. 제 키보다 커다란 검을 등에 짊어진 이는 혼자 전혀 지치지 않았다는 듯 폴짝거리는 발걸음이었다.
“뭐 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그것도 지도 같은 걸 산다고. 갖고 있던 게 있잖아.”
“벌써 1년 전의 것이다. 이 바닥에선 정보가 생명이라고 했을 텐데.”
“쳇, 10년 지내는 동안 새 지도 사봤자 쓸모 있던 적도 별로 없더만. 비싸잖아 그거.”
“아무도 너보고 돈 내라고 하지 않는다.”
그야 그렇지만, 작은 인영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앳된 여자 아이의 것이었다. 옆에서 궁시렁대는 아이를 힐끔 본 무리의 대장은 다시 입을 닫은 채 가게의 문을 밀었다. 거 밖에서 모래 좀 털고 들어오소. 가게 주인의 핀잔에 남자가 머쓱하게 무거운 신발을 움직여 로브의 모래를 털어내고 머리 위로 덮어쓴 후드마저 훅 벗는다. 드러난 얼굴은 본래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주름이 깊은 얼굴로, 눈빛만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하듯 또렷했지만 그마저도 관성에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남자를 따라 다른 일행들도 로브의 먼지를 털고 얼굴을 하나, 둘 드러낸다. 태양을 피하느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꽤 답답했는지 여기저기서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가운데 작은 인영만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도리어 후드를 더 깊이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쪼르르 구석에 가는 것을 제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가게 주인 역시 이들과 거래를 이어나간 게 한두 해가 아니었기에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무리의 대장, 후만이 새로 갱신된 지도를 살피고 다른 물건들을 보는 동안 아이는 구석에서 나무판으로 만든 책들을 뒤적였다. 비싼 종이 대신 얇은 판자들을 엮은 책은 어린이용의 동화책이나 그림도감 따위로 한 페이지마다 아주 적은 글자와 알록달록하게 색칠된 그림들이 가득했다. 간신히 제 이름과 간단한 문장 정도나 읽을 줄 아는 아이에겐 딱 알맞은 것으로 두 손으로 책을 움켜쥔 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이의 눈도 따라 구르며 반짝였다.
“──그럼 이것으로 하지. ……챠콜.”
“! 아, 응. 갈게.”
거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늘상 하던 것이니 긴 말 하지 않아도 가게 주인이 어련히 챙겨주었기 때문에 흥정도 없이 대금을 지불한 후만은 물건을 챙기고 구석에 있던 아이를 불렀다. 그 부름에 책의 한 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이가 퍼뜩 고개를 든다. 아이가 오는 대신 긴 걸음으로 성큼 다가간 후만은 아이의 손바닥 너머 책을 힐끔거렸다.
“뭘 보고 있던 거냐? 음?”
“이것 봐, 후만. 하얗고 까만 동물이야!”
로브 아래로 아이의 새까만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그를 향해 두 손으로 보여준 책의 페이지에는 얼음과 눈을 배경으로 한 위로 서있는 낯선 동물이었다. 펭… 귄. 펭귄?
“그러니까, ……서쪽의, 베일 너머로 가면 볼 수 있는 동물이라는군.”
“얘 뭐야? 이런 거 처음 봤어. 뭔가, 뭔가 있잖아. 그으……”
마땅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지 까만 눈이 깜빡이며 찡그려진다. 궁한 기색에 후만 역시 턱가를 문지르며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떠오르지 않기는 그도 다르지 않아 결국 두 사람이서 나란히 입만 뻥끗거리는 걸 보던 가게 주인이 혀를 끌끌 차며 대신 말해주었다.
“겉보기가 귀여워서 그 지역에선 제법 유명하다더군.”
“아, 그래. 귀여워! 그 말이었어!”
“그렇군.”
쓸 일이 없는 말이니 입에 안 붙을 만도 하다. 새로 떠오른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거 귀여워를 연발하는 아이를 잠시 내려다보던 후만은 그 책을 집어 들고 가게 주인을 보았다. 이 녀석도 계산해줘. 그 때까지 그저 눈이 초롱초롱하던 아이의 표정이 바뀐 건 그 순간이었다.
“됐어. 필요 없어.”
“마음에 든 거 아니었냐?”
“한 번 봤으면 됐지. 갖고 다니면 짐이잖아.”
어깨를 으쓱하는 아이는, 그 말처럼 몸에 지닌 것이라곤 식량과 돈이 담긴 주머니, 등에 멘 검이 전부였다. 후만이 시선이 다시 아래로 향한다. 검은 눈의 아이는 조금 전과 다르게 물기가 닦여 퍼석하게 무미건조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지금까지 사막을 걸어온 일행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후만의 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일행 중 하나가 쯧, 불만스런 소리를 냈다.
언제든 가볍고 빠르게 움직이도록 최소한의 짐만을 몸에 지니라고 교육한 건 다른 사람도 아닌 후만 본인이었다. 아이에게 책을 사라고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그는 납득한 듯 나무판으로 된 책을 제자리에 두었다. 그만 가지. 대화는 거기까지였고 가게 문을 나서도록 아이가 뒤돌아보는 법은 없었다.
시장을 지나며 식량을 사고 무기점에 들러 장비의 손질을 하고, 이런저런 일을 보다 보니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미리 연락을 넣어둔 여관으로 가 묵기로 한 일행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즐겼다. 가장 반긴 건 아이였다. 맛이야 아무래도 좋았지만 사막을 도는 동안은 식량을 아낄 수밖에 없다.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양, 공복을 느끼지 않을 정도, 매번 그렇게만 속을 채우다 배불리 먹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면 당연히 기쁠 수밖에. 전투적으로 음식을 해치워나가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문득 옅은 웃음이 나려는 것도 같았지만, ──미소는 그런 기분이 드는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였더라. 생각처럼 표정이 움직이지 않게 된 건. 기억을 더듬는 대신 후만은 입을 열었다.
“……맛있냐?”
“응, 아마!”
“왜 아마야.”
“맨날 먹는 질리는 것보단 나.”
“그래. 됐다.”
그릇에 숟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그 뒤로 몇 번인가 더 이어지고, 깨끗하게 치운 테이블 위로 오늘 산 지도와 기존에 쓰던 지도가 나란히 펼쳐진다. 1년을 쓴 지도는 여기저기 그들의 메모로 지저분한 상태였다. 메모 중 옮겨 적을 만한 것을 체크하여 새 지도에 그려 넣고 지도에서 다음 경로를 확인하고 그간 거의 대화가 없던 일행이 겨우 말을 나누는 시간이다.
아이는 회의에는 참석하였지만 대화에 끼는 일은 없었다. 주변에서 따돌리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가 관심 없을 뿐. 머리 쓰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잖아? 그게 아이의 주장으로 그러면 다들 쓴웃음을 지으며 내버려두곤 했다.
“으음.”
“후만 거기 글자 틀렸어.”
“아? …그렇군.”
요즘 눈이 침침해서. 머쓱하게 말을 하며 남자가 글자를 고친다. 파하핫, 막 글자를 가리키던 손을 남자에게 옮겨 가리키며 아이가 크게 웃는다. 늙은 거야? 놀리는 듯한 목소리에 남자는 가볍게 아이를 흘겨보았지만 반박은 하지 않았다. 대신 말을 꺼낸 건 일행 중 남자와 아이 다음으로 오래된 자였다.
“챠콜이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지. 당신 꽤 지쳤어. 황폐화 지역에서 오래 머물수록 몸에 영향이 간다는 거 알고 있잖아. 당장 급한 의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좀 쉬는 게 어때?”
“됐어.”
후만의 대답은 단칼이었다. 하아, 하고 안대를 쓴 여자의 입에서 한숨이 샌다. 이 진척 없는 문답은 작년 언저리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진척없는 논쟁이 시작될 기미에 눈치를 보던 아이는 컵에 남은 물을 한 입에 삼키고 슥 일어났다. 이유는 잘 몰랐지만 안대를 쓴 여자, 에버그린은 이 문제에 관해 후만과 꾸준히 입씨름을 벌이면서도 아이가 듣길 바라지 않았다. 난 먼저 잘래. 아이의 말에 씻고 자라. 일행 중 누군가가 한 마디 덧붙이며 배웅을 해준다. 거기에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 아이는 계단을 올랐다.
가게 안에서도 로브를 벗지 않은 탓에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의 뒷모습은 얼핏 부대자루가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사막에서는 거추장스러운 로브 따위 벗어던지고 긴 말총머리를 흔들며 누구보다 높이,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던 아이건만 마을에만 오면 길가의 돌멩이처럼 기척을 죽인 채 조심스러워진다. 여자는 그게 늘 불만이었다.
“당신은 쉬어야 해. 스스로도 느끼잖아? 황폐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
“그런 걸 일일이 따지면서 용병 일을 할 수 있나.”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달리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저 녀석 생각도 해야지.”
죽고 싶은 거야? 라고 여자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그가 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죽음을 바라고 있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저 아이는 당신밖에 없는데. 에버그린의 말에 후만은 조소 비슷한 것을 그려냈다.
“나밖에 없지 않아.”
“우리도 있다고 할 셈이야? 저 녀석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 건──”
“나도 없지.”
이 남자는 정말이지, 사람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재주가 있어. 에버그린의 입을 효과적으로 다물게 하고 후만은 덤덤히 술잔을 비워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가 있는 걸 보니 넌 괜찮아 보이는군. 그의 덧붙임을 끝으로 오늘도 대화는 진전 없이 끝나고 말았다. 내일의 집합 시간을 알리고 무리는 거기서 해산했다.
후만은 꽤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아이는 타인의 기척에 누구보다 예민하였지만 아이에게 그걸 가르친 게 그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의 기척에 잠든 아이가 깬 기색은 없었다. 방에 들어와서야 겨우 로브를 벗었는지 침대 한편에 걸쳐놓은 채 웅크리고 자는 아이를 후만은 잠자코 내려다보았다. 이제 13…… 아니, 14살이던가. 곧 있으면 죽은 딸아이의 나이마저 추월해버리고 말겠지. 딸아이는 보여주지 못했던 미래의 모습을 이 아이가 보여준다면 그도 과거의 망령에서, 주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는 벗어나길 바라고 있는가?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하루가 갈수록 힘들게 느껴진다. 목에 건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후만은 저도 모르게 잇새로 그 이름을 뱉었다.
“에슬리…….”
부름에 응하듯 아이가 가볍게 몸을 뒤척인다. 잠든 이들이 흔히 보이는 움직임이었지만 그것만으로 후만은 아이가 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술기운 때문일까, 후만의 입은 거기서 닫히지 않았다. 몇 번이나 들은 주정이었다. 죽은 딸아이를 향한 미련, 그리움, 죄책감,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사과와 거듭되어 불리는 제 이름이면서 제 이름이 아닌 것. 아이는 자는 체를 계속했고 후만도 알아차렸단 기색은 한 마디도 비치지 않은 채 두 사람의 서툴고 어설픈 연극은 밤이 깊도록 느릿하게 지나갔다.
후만의 입에서 펭귄이 사는 서쪽에 실베니아 아카데미라는 곳이 있다는 설명이 나온 건 그 다음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로부터 약 1년 뒤, 아이는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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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로그.
후만의 딸은 사일란 실험에 납치되어 죽었고 그 일로 마음이 죽은 후만은 마찬가지로 사일란이란 이유로 핍박받는 아이를 줍게 되지만 결국 정을 주는 일을 두려워하다가 아이를 두고 자신 역시 그리운 딸이 있는 곳으로 가버리죠. 그럴 거면 딸의 이름 같은 거 붙이지 말지:q
에버그린은 후만과 에슬리와 같은 파티에 있던 사람으로 에슬리를 가장 걱정해주었습니다. 아마 후만이 죽고 에슬리가 떠난 용병단을 이어 맡은 것도 이 사람이겠죠. 후만의 용병단은 대단히 개인주의로 에슬리가 사일란이라고 차별할 만큼도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축에 속했습니다.(황폐화 된 땅에 머문 영향도 있겠죠) 에버그린이 좀 이례적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