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듣고 싶었던 말이어서, 기다리던 말이어서 환청이 아닐까 의심부터 들었다. 잡힌 손이 뜨겁지 않았더라면 믿지 못했겠지. 그의 손이 천천히 내려와 제 손을 잡았을 때도 여전히 현실감은 없었다. 다만 그에게 잡힌 손이 지독하게 차다는 감각만 느껴졌다.
추웠다. 손발의 피가 모두 식어버린 듯 얼음덩어리를 매단 듯 무거웠다. 느릿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온전히 들리는 대신 종소리처럼 퍼져 목소리의 진동만이 피부에 닿았다.
그만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사랑해.』
누구를?
───나를?
하지만, 어째서,
왜……?
어떻게?
머릿속에서 파도가 일었다. 아주 커다란 파도가 의식을 전부 덮어버릴 만큼 강하게 일었다. 응시해오는 그의 눈동자를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몸에 밴 행동처럼 손을 뻗어 눈물 젖은 그의 뺨을 닦아주었다.
무겁게 늘어졌던 손끝에 물기가 닿자 그제서야 얼어서 움직이지 않던 몸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굳어있던 무릎에 힘이 풀리며 그의 앞에 주르륵 미끄러져 앉았다.
“가지, 않아도 돼?”
누군가 옥죄듯 꽉 막혀 있던 목이 겨우 소리를 뱉었다. 더듬거리며 내뱉은 말에 스스로가 화들짝 놀랐다. 가지 않아? 곁에 있어?
……루의 곁에, 계속?
“이 마음을 덜어내지 않아도 괜찮아?”
“전부, 전부…… 루에게 줘도 괜찮아?”
“곁에 있어도, 괜찮아?”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모르겠어. 황망하게 눈을 깜빡이다 이번에는 제 뺨이 젖어있다는 자각을 겨우 했다. 한 번 깜빡일 때마다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생소하였지만 깨달았을 땐 억누를 수 없어 하염없이 눈물방울을 떨어트렸다.
“좋아해도 괜찮아?”
이상한 일이었다.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만일 이 모든 게 꿈이라면 언제부터 시작된 꿈인 걸까. 실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은 여전히 홍등가 골목길에 웅크린 채 혼자인 것은 아닐까. 거짓은 아닐까. 아니라면, 아니라면……,
──아니라면 쭉 이대로 있게 해주세요.
“좋아해.”
“좋아하고 있어. 좋아해, 루. 좋아해.”
말라버린 줄로만 알았던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눈앞이 얼룩져 그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붙잡은 손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잡은 손의 감촉에 매달려 좋아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상해,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하고 무서워. 분명 바라왔던 일인데 막상 닥치니까 믿기지가 않아서……”
“내가, 루의 말에 나도… 라고 답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어서.”
스스로가 듣기에도 낯선 목소리가 샜다. 분명 표정도 엉망이겠지. 정리되지 않은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헤집었다. 몇 번을 그렇게 뻐끔거리기만 했을까.
눈가를 찡그리며 웃었다. 할 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도.”
“나도사랑해.”
“가지 않을게. 곁에 있을게. 그러니까 루도……,”
“곁에 있어줘.”
“루만이 줄 수 있는 행복을 내게 줘.”
태어나 처음으로 입에 담는 사랑은 무척이나 짜고 달아서 다른 건 하나도 필요 없을 것만 같았다.
“사랑해, 루.”
다른 어떤 것에도 빗댈 수 없는 말을 그에게 전할 수 있어 기뻤다.
#.To be with you now and for ever
조금 과거의 기억이다. 그의 앞에서 발작이 일어났음을 숨겼다가 슬픈 표정을 짓게 한 적이 있었다. 흐릿해진 그의 표정을 보며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그 자리에선 말했었지만 글쎄, 역시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고 내심으론 생각했다. 익숙하지 않은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가 그였기에.
그의 앞에선 강한 모습으로 있고 싶었으니까.
그를 지탱해주고 감싸주어야 한다고 제 고통은 안중에도 없이 굴었다. 그에게는 약한 모습 같은 것 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해서 지키고 싶었던 건 그였을까, 아니면 자신이었을까.
처음으로 그의 앞에 주저앉아 울었다. 이렇게 울 줄도 아는구나 스스로에게 놀랐다. 엉망진창이 된 얼굴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저 눈앞의 상대만을 바라보았다. 이런 모습을 보여도 되는 걸까 일말의 불안이 남아 있던 것 같다. 그러다 제 우는 얼굴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담겨있는 애틋함에,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에 자연스럽게 파핫 웃음이 터졌다. 웃음과 함께 불안은 씻겨내듯 사라졌다. 그렇구나, 이 순간에서야 겨우──
“이때까지 힘내서 살아온 스스로를 처음으로 칭찬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전에는 아니었어? 물음에 얕게 고개를 끄덕인다. 칭찬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칭찬해야 한단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살고 싶다고 발버둥치는 뒤에는 슬슬 충분하지 않아? 라고 반문하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버텨온 과거의 자신에게 감사하고 싶은 기분이다.
“약한 나도, 강한 나도, 루를 좋아하는 나도, 어떤 모습이든 루에게 좀 더 보여주고 싶어.”
뺨에 닿는 상대의 온기,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열기, 서로 비슷한 온도를 하고 있었다. 사랑스러움은 사소한 것에서도 피어오를 수 있다고 배우며 그에게 이마를 기대 조그맣게 속삭였다.
“고마워.”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어쩐지 낯부끄러운 기분에 옷자락을 꾹 잡고, 하지만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뒷말까지 덧붙인다. 앞으로를 위한 새로운 약속이었다.
“함께 살아가자. 앞으로도 계속.”
우선은 너무나 예쁜 로그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붙일 수 있는 미사여구가 있다면 다 붙이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루 정말 사랑해……. 마음을 접… 접으려던 건 아니고(접겠다고 접히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고민은 60번쯤 한 것 같은데) 루는 에슬리를 그런 식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 도리를 깨닫는단 의미……였답니다☞☜ 마음이 정리되면 돌아오겠다고 해놓고 정리도 못한 채 돌아와서 옆을 기웃기웃거리는 미래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가지 말라는 말에 인지부조화가 와서 몇 번이나 다시 봤어요.
제가 커뮤를 뛰기 시작한지 이제 1년 좀 넘었네요. 지인들끼리 스토리를 즐기기 위해서 러닝하고 엔딩을 맞이하고 끝인 커뮤가 아니라 캐릭터들과 엔딩 이후에도 관계를 이어나가게 된 건 심서가 겨우 3번째고요. 자캐 커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는 더더욱 백지나 다름없어서 제 이런 무지나 2차를 본진으로 둔 점도 그렇고 말씀하신 것처럼 앤오 관계는 관켸오너 관계와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 불안하신 것도 이해해요. 사실은 저 또한 게루님과 마찬가지로 잘 맞춰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고 아직 겪어본 적 없는 일들투성이라 불안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직 모르는 게 많더라도 앞으로 배워나가고 맞춰나가고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루를 좋아하고 있어요. 걱정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반드시 괜찮을 거라든지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든지 확신어린 답은 드릴 수 없지만 대신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노력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부족한 사람이지만 2차로 덕질하던 것보다 루를 훨씬 더 좋아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라든지 지금처럼 대화하고 조율하면서 예쁜 관계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