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저물어가는 해를 따라 슬슬 창문을 닫을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쌀쌀해졌네. 엘버의 추위에 비할 건 아니지만. 저녁은 따뜻한 게 좋겠어. 뭐가 남았더라. 띄엄띄엄하게 이어지는 대화와 함께 창문에 걸쇠를 걸고 몸을 돌리자 그가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가자 긴 팔이 뻗어와 당긴다. 당기는 대로 이끌렸을 때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갑자기 왜?
태연하게 답하기엔 이미 긴장이 묻어나는 더듬거림에 그냥. 이러고 있는 게 좋아서. 돌아온 답은 기운이 빠질 만큼 느긋한 목소리. 그러면서 등 쪽으로 무게를 실어오는 체온에 잠깐 움찔했지만 곧 몸을 틀어 그를 마주 안았다. 이러고 있는 거 실은 엄청 부끄러워. 생각으로는 이미 수백 번을 곱씹었지만 이번에도 말하는 대신 가만히 있는다. 싫지 않으니까. 그녀 안에서 싫지 않다는 곧 좋다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게 잠자코 있자 그가 팔을 감은 채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이번에는 이끌리는 대신 휩쓸려 어라? 하는 사이 나란히 소파에 길게 쓰러진다. 풀썩하는 소리의 뒤로 즐거운 듯 작은 웃음소리가 따른다. 루도 장난치는 거 은근히 좋아해. 아니, 은근히일까? 생각을 하며 불만을 대신해 그의 뺨을 당기자 에슬리는 부끄러움이 너무 많아. 뺨이 늘어나 조금 불분명한 발음이 들려왔다.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건 알지만, ……내가 그렇게 긴장 돼?
루 앞에서 하는 긴장은 다른 긴장인걸. 익숙해지고 있는 거랑 조금 달라. 무엇이 다른지는, 그도 알겠지. 발끝이 꼼지락거리는 기분과 함께 뺨을 잡은 손의 힘을 천천히 풀고 고개를 든다. 눈을 보려고 한 것이었지만, 스쳐 지나듯 그의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아주 약간 시선을 올리자 뒤늦게 그와 시선이 맞닿아버려서, 어느 쪽도 피하지 않은 채 어느새 눈의 깜빡임조차 포개졌을 때엔── 어쩐지 조금 전보다 더 몸이 꼬일 것 같은 기분에 휘감겼다.
온화하게 흐르는 공기 틈으로 달짝지근한 바람이 끼어든다. 긴장한다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건 아냐.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뻗어 그의 입술을 얕게 문질렀다. 닿은 피부가 뜨겁게 느껴지는 건 제 열 때문일까 상대의 열 때문일까. 언젠가의 밤과는 다른 벅차오르는 기분을 들숨으로 한 번 삼키고 손바닥 전체를 이용해 그의 뺨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있지, 루. 루의 좋아해도…… 키스해도 괜찮은 좋아해, 인 거지?
맞아, 라고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돌아오는 수긍에 단숨에 뺨이 달아오른다. 단숨에 심박 수가 상승해 피부 위로 정전기가 톡톡 튈 것만 같았다. 괜찮을까? 정말 괜찮은 걸까? 그의 답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걱정이 되어 머뭇거리자 그가 조금 얄미운 미소를 보였다.
아직이야?
그 한 마디 덕분에 주먹을 꾹 움켜쥐고 움직일 수 있었다. 딱 한 뼘 남았던 거리를 좁히자 공기의 진동까지 느껴질 듯 감각이 예민해진다. 코가 닿지 않도록 턱을 당기고, 조심스럽게 입술을 맞붙였다 떼어낸다. 얼마나 닿아 있었더라. 1초? 그 이상은 무리였어. 닿은 곳이 손이 아니라 입술이라는 것만으로 이렇게 다를 일일까.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간질거리며 차오르는 충족과 설렘에 입가가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졌다. 이상해, 기뻐. 부드러웠어. 아쉬웠어. 식을 줄 모르는 얼굴을 하고 몇 번이나 빠르게 눈을 깜빡였을까. 혼자 헤죽거리는 입가를 손등으로 가리고 있자 그에게서 다시 심술궂은 말이 들려왔다.
이걸로 충분한 좋아해야?
그제야 시선을 들어 그를 보았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귀는 정작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어, 루가 또 심술부려. 라고 말하는 대신 그의 뺨에 닿아있던 손을 뜨뜻해진 귓불로 옮겨 만지작거리며 한 번 더 가까이 갔다.
아니. 조금만 더.
───이상하지. 사람과 닿는 건 좋아하지 않았다. 상대는 나와 닿는 걸 싫어할 거야. 나도 날 싫어하는 사람이랑 닿고 싶지 않아. 누군가와 온기를 나누는 건 익숙하지 않아. 좀 도망가고 싶어. 필요 없어. 이제껏 그렇게 지내왔으니까.
하지만 그와 닿고 있으면 깜짝 놀랄 만큼 욕심이 생겨 조금 더를 바라게 된다. 부끄러워. 피부가 끓는 것처럼 뜨거워. 안정되지 않아. 이대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그럼에도 더, 조금만 더. 이러다 부끄러움에 온몸이 사르륵 녹아내려도 모를 만큼 도망가고 싶어 안절부절 하지 못하면서도 꾹 참고 더 닿아 있고 싶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정말 이상해. 두 번째로 닿았다 떨어진 감촉은 처음과 또 다른, 몰랐던 기분을 가르쳐주었다. 깜빡이는 눈동자 위로 열기가 덧씌워져 이럴 줄 알았으면 창문을 닫는 게 아니었는데. 괜히 다른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눈을 들자 똑같이 빨갛게 열이 올라 말문이 막힌 표정을 하고 있는 그가 보여 안도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그 때까지 참고 있던 숨을 깊이 뱉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