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렸을 때 카르테는 이사벨 크림슨과 마주 앉아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지나가다 불려져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말을 듣고, 어느샌가 마치 뇌물처럼 손에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아마도 음료수 캔. 캔과 이사벨 크림슨을 번갈아 응시하던 카르테는 일단 상대의 말에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이곳에는 수많은 강자가 있으리라 생각했었죠.”
강자……. 아무래도 적침에 대비하여 군인을 육성하기 위한─이라고 카르테는 이해하고 있다─곳인 만큼 실력자들이 모인다는 점은 틀림없다. 잠자코 한 번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대도 마찬가지.”
그대도……?
뒤이은 말에는 머리카락을 묶은 방향으로 고개가 조금 기울었다. 그녀가 말하는 강자의 기준에 카르테는 부합할까.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는 반론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이사벨 크림슨은 시종일관 진지해 보였다. 그녀의 말을 끊거나 방해할 수는 없어 이번에도 카르테는 잠자코 한 번 끄덕였다.
“자,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무엇을?
“그대에게 어떤 능력이 존재하는지.”
능력을?
“제게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누구에게?
이사벨 크림슨의 말이 거듭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기울어지던 고개가 이윽고 어깨와 붙을 지경이 되었다. 그쯤에서 카르테는 고개를 제자리로 되돌렸다.
색이 다른 한 쌍의 눈동자는 카르테의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는 경청 자세에도 아랑 곳 않고 진지한 빛을 띠고 있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흐트러지지 않을 것 같은 곧은 자세는 그녀가 체계적인 훈련을 쌓아왔음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그녀는 아마도 강한 사람일 것이다. 비단 능력만이 아니라 그녀의 눈에서, 카르테는 갖지 못한 강한 의지, 말하자면 자신만의 정의, 혹은 신념이라 부를만한 무언가가 내제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런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도 강함을 청하고 다니는 건 카르테의 이해와 조금 맞지 않는 일이었다. 스스로의 강함만으로는 부족한 걸까? 단순히 데이터 수집만을 목적으로 한다기엔, 어쩐지── 이 이상은 카르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사고회로가 따라가지 못한다. 아마도 데이터 부족으로 인한 해석 불가.
남의 의중을 파악해내길 포기한 카르테는 덤덤한 빛으로 눈을 깜빡이고 언제나 등에 메고 다니는 낫을 꺼냈다.
“능력…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것을 무기로 활용하며, 근접 전투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원거리용의 무기는 달리 가지고 있지 않으니 함께 전투에 나갈 경우엔 유의해주세요. 또한……”
낫을 놓고 그녀의 앞에 왼손을 쫙 펼친다. 다섯 손가락 끝에 열선을 활성화시켰다. 곧 손가락 끝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검지만을 들어 테이블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자 이글거리는 자국이 남았다.
“손가락 끝의 열선을 이용합니다. 녹이거나 화상을 입히거나. 열선이 아니더라도 악력, 근력, 모두 기계장치의 한계만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마치 회사에서 자신의 기능을 설명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그 때 카르테를 인솔했던 사람이 뭐라고 했더라. 너무 딱딱하니 말하면서 웃기라도 해보라고 했던가.
“열선의 온도 조절은 제 마음대로 가능하니 혹시 추우실 땐 말씀해주세요. 따뜻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덧붙이며 입만 당겨 히죽 웃어 보았다. ───어라, 이건 좀 틀렸을까. 안드로이드식 유머였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에 카르테는 얌전히 표정을 되돌렸다.
“강자라는 칭호를 달기엔 아직 부족합니다. 제 대답이 이사벨 크림슨이 요구한 대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캔의 뚜껑을 톡톡 두드리다 다시금 그녀와 시선을 맞춘다. 버텨보기로 결심했다? 그녀에게 이곳의 생활은 ‘버텨야 하는’ 종류의 것일까.
그렇다면 무엇을?
작은 의문이 고개를 든다. 그러나 카르테는 묻지 않았다.
“무례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더 듣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물어봐주세요. 제가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