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린 다음 날이었다. 어쩐지 1섹터를 벗어나고도 1섹터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던 눈들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거리를 걷던 카르테는 또 다시 도넛을 파는 가게 앞에 걸음을 멈춰 세웠다.
넉살이 좋은 아주머니였다. 전쟁 당시에 팔 한쪽을 사고로 잃었다고 했나. 기계의 팔을 가리지도 않은 채 태연하게 도넛반죽을 주무르고 호객을 한다.
“우리 집 도넛은 이 팔 힘이 좋아서 맛있는걸.”
이곳은 그런 곳이구나 하고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아주머니에게 붙잡힌 카르테는 또 도넛을 사러 왔냐며 이런저런 질문을 들었다. 아뇨, 맛 데이터는 이미 수집했으니 더는 필요가……. 이런 맛있는 걸 음식 섭취가 의미 없는 그녀가 또 먹어버려선 아까운 일이다.
그 말에 아주머니는 쾌활하게 웃고는 뒤이어,
“그럼 직접 만들면 되겠네. 그렇게 하면 아까울 것도 없고 좋지.”
라는 논리를 펼치며 카르테를 주방으로 당겨버렸다.
머리 위로 삼각 두선을 쓰고 아주머니에게서 예비용 앞치마를 받았다. 호객은 남편에게 맡기고 주방으로 들어온 아주머니는 두 팔에 기합을 넣고선 자, 그럼 반죽부터! 하고 힘차게 외쳤다. 얼떨결에 반죽부터, 하고 따라한 카르테는 그 때부터 반죽-1차 발효-반죽 나누기-2차 발효-튀기기-초콜릿 코팅까지 장장 5시간이 다 되도록 아주머니의 수다에 어울려주어야 했다.
──육체노동보다 대화에 어울려주는 게 더 힘든 일이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도넛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유익했다. 직접 만들어본다는 발상은 한 번도 한 적 없던 카르테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카르테는 이제까지 데이터 수집을 이유로 종종 여러 음식들의 맛을 보았지만 그 맛과 성분을 분석할 뿐 제조 과정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데이터는 방금 일련의 과정을 확인하고 얻은 데이터에 비해 한없이 빈약하고 피상적이었다는 걸 카르테는 막 깨닫게 되었다.
“과정, 단계, 흐름, ……중요한 것.”
“자, 그럼 다음은 만든 걸 팔아봐야지!”
“……판매도, 합니까?”
“물론, 공들여 만들었으니 자신 있게 팔아야지 않겠어? 괜찮아, 맛은 우리 가게 간판을 걸고 보장하니까!”
그리고 새 깨달음을 곱씹기도 전에 커다란 부담을 떠안아버리고 말았다…….
눈치를 살피며 쭈뼛쭈뼛한 기색으로 방금 갓 만든 도넛을 진열대에 올려놓는다. 아주머니는 자신감을 가지라며 튼튼한 기계팔로 몇 번이나 카르테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조금 타격을 입었다.
진열대에 전시를 마치자 이번에는 호객을 해보라고 아주머니는 열심히 그녀를 부추겼다. 직접 만들었으니 파는 것도 직접 해야지. 그럴 거면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게 좋았을 텐데. 카르테는 굉장히 오랜만에, 스스로의 의지로 「하기 꺼려진다」는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거부할 수는 없었다.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천천히 손에 든 작은 종을 흔들었다. 종소리가 딸랑거리자 몇몇이 주목하는 게 느껴졌다. 닿아오는 시선에 눈을 핑글핑글 굴리며 카르테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