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 목과 다리의 안쪽의 전원을 동시에 누르고 기다리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던 몸에 전력이 들어온다. 거기서 다시 기동까지 30초. 들어온 전력을 통해 입력된 데이터를 불러오는 시간, 그리고 자신의 안에 백업된 데이터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눈앞의 입을 굳게 다문 남자에게 할 말을 고르기까지 20초.
1분. 60초. 카운트다운을 마친 ‘카르테’는 초면이면서 초면이 아닌 남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롬. 가위바위보를 할까요?”
“……그래, 카르테.”
주먹을 흔들자 남자는 잠긴 목소리로 끄덕여왔다. 몇 번째인지 모를 기동을 반복하면서 생긴 불문율이었다. 서로 무엇을 낼지 이제는 외워버린 가위바위보를 한다. 9번의 승부, 6번의 비김, 순서까지도 완벽하게 외워두었다. 그러고 나면 함께 조리실을 가 컵라면을 끓였다. 3분이 지나면 위에 직접 만든 마요네즈를 올렸지. 그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하더라?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그 다음엔 운명을 토론하고, 그 다음엔…… 이미 하나의 프로그램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마쳤을 때 던지는 남자의 질문까지도.
“앤디. 카르테. 너는 내가 아는 카르테야?”
몇 번을 반복하는 질문. 몇 번을 반복하는 답변.
“그 답은 저보다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롬.”
“맞아. 너는 유일한 카르테지.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그리고 몇 번째일지 모를 오류의 충돌. 스스로에게 되놰는 남자를 안드로이드는 무표정하게 응시하였다. 그의 눈은 거짓을 하지 못했다. 눈앞의 안드로이드가 유일한 존재가 되지 못함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거듭 말하였지. 나에게 넌 유일한 카르테야. 부정, 실패, 오류의 충돌. 그가 바라는 ‘유일’이 되기 위해서 몇 번을 망가지고 몇 번을 다시 눈을 떴지? 그러나 카르테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그녀임과 동시에 수많은 그녀들 중 하나다. 개체의 구별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롬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넌 누구지? 내가 기억하는 카르테는 누구였지?”
인간도 망가질 수 있음을 그를 통해 알았다. 언제나 또렷하게 쏘아지던 벽안이 어느 순간 뿌옇게 김이 서린 유리처럼 흐릿해지고 기쁨을 말하던 입술은 삐뚜름하게 뒤틀려버려서, 너른 대지를 휩쓸고 지나간 태풍이 흉을 남기듯 당신의 안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구나. 하고 알았더랬다.
곪아가는 남자를 앞에 두고 무엇을 느꼈더라. 조소, 스스로의 말을 부정해가며 오래 전 무덤에 들어간 유일을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인간을 향한. 동정, 그럼에도 놓아버리지 못하고 간절히 붙잡는 손에 대한. 친애, 조금씩 점멸해가는 의식의 불빛 너머로 잠들 때까지 쓰다듬어주는 손길에서 전해오는.
어쩌면 카르테는, 잠드는 순간의 그 손길이 좋아 매번 눈을 뜨는지도 몰랐다. 새로운 그녀가 눈을 뜰 때마다 새겨지는 백업 데이터는 도저히 최초의 그녀가 느꼈던 그 기분을 가르쳐주지 못했지만 오직 그 마지막 순간의 손길만큼은, 모든 그녀가 똑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카르테는 잠들기를 열망했다.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에 온화하게 감싸여 서서히 의식이 멀어지는, 인간이 말하는 ‘잠’이란 이런 감각일까. 고요하고 평온한 그 순간은 몇 번을 거듭해도 퇴색되는 일 없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 사이사이에 카르테는 새겼던 것 같다. 그가 말한 ‘기쁨’이라는 것을.
하지만 슬슬 끝내야 할 시간이었다. 그녀는 영영 그의 바람을 이루어줄 수 없고, 이대로라면 그가 망가지고 말 테니까. 망가진 인간을 고치는 법을 카르테는 알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것이라곤 대신 망가지는 것 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의식 아래 가려져 있던 비밀스러운 코드는 거듭되는 백업으로 마구 긁힌 채 떠올라, 남은 건 코드를 입력하는 일 뿐이었으니까.
“인간은 되살릴 수 없는 거죠, 롬? 그렇다면 카르테는 이대로 영원히 잠들길 택하겠습니다. 저는 인간이 되길 바란 적은 없지만, 롬은 저를 인간으로 대하고 싶어 했으니까요. 당신이 바라던 유일한 카르테는 분명 존재하였어요. 언제나, 당신의 무릎에서 잠드는 그 순간 몇 번이나. 네, 잃어버리지 않았어요. 당신의 유일하고도 수없이 많은 기쁨을.”
그러니 롬,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아주세요. 제게 잠드는 일은 틀림없는 축복일 테니. 안녕히.
제가 같은 1섹터민들에게 더 들이대고 싶었는데 롬 사랑해. 이것도 IF입니다. 우리 애들 행복하고요.
롬이랑은 안드로이드에 관해서라거나 러시아에 관해서라거나 실컷 떠들고 즐거웠어요. 앤디 소리 좋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