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무게가 있다면 세이라는 아마도 영영 떠오르지 못한 채 바닷속으로 깊이 깊이 잠겨버리고 마리라 생각하였다.
슬픔에 무게가 있다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것조차 못하고 캄캄한 저 심해로 가라앉아버리고 마리라 생각하였다.
침몰(沈沒)하리라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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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몸이 안 좋아지셔서 말이다. 어떻게 겨우 허락을 받아서 내가 대신 왔단다. 미안하구나, 세이라쨩.」
지난 가을의 일이다. 막 중간고사를 마치고 면회일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세이라는 기다리던 얼굴이 아닌 조금 낯선 사람과 재회했다. 낯설지만 재회였다. 그도 그럴 게, 고향을 떠나온 뒤 처음 만나는 것이었으니까.
「아니에요, 아주머니. 여기까지 먼 길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할머니는… 많이 편찮으신가요?」
「글쎄다. 특별히 병이 난 건 아니고 그냥, 나이가 나이시잖니. 그래도 겨울엔 꼭 직접 오시겠다고 하셨으니까. 너무 속상해마렴.」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 외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괜찮아야지. 괜찮지 않으면? 또 학원 밖으로 내보내달라고 울기라고 하려고. 맨발로 뛰어나가기라도 하려고. 그러다 벽 앞에 주저앉아, 그저 제 무력만 실감하려고.
괜찮아요. 세이라에게 주어진 유일한 말이었다. 지독히도 무력한 말이었다.
무력하다는 것은 사람을 무기력하게도 만든다. 손발이 잘린 채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쓸모가 없다. 소용이 없다. 의지를 가져도 욕심을 부려도 소망을 품어도 하늘은 들어주는 일이 없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없었다.
멍하니 침대에 누운 채 여러 수단을 생각했다. 그러다 접었다. 그녀가 조금 더 똑똑했다면, 우수했다면, 가치가 있었다면, 어쩌면 장학생이 되어 외박을 허락받았을지도 모르지. 든든한 후원자가 생겨 할머니를 편안하게 해줬을지도 몰라. 학원에서 좀 더 허락해주는 게 많았을지도. 정말 그런 걸 바라? ……아니다.
세이라가 바라는 건 언제나 단 한 가지였다. 학원을 나가 할머니 곁으로 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울, 할머니가 면회를 와주었다. 꼬박 반년만의 재회였다. 할머니의 손에는 새 카디건이 있었다. 얼마나 자랐누, 내 새끼. 할머니는 늘 세이라에게 몸보다 커다란 카디건을 만들어주셨다. 아이는 쑥쑥 자라는 법이니까. 하지만 세이라는 종종 그게 다른 의미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가령, 앞으로 카디건을 만들어주지 못하게 되더라도 괜찮도록.
──겨울을 맞이한 할머니는 앙상해져 있었다. 나뭇잎을 다 잃은 마른 가지 같았다.
「다음부터는 면회 안 와도 괜찮아요.」
결국 말해버렸다.
바다를 건너 육지로도 길게 종으로 뻗은 길을 올라, 고향에서 이곳 학원까지는 늘 고된 여정이다. 면회할 수 있는 시간보다 오가는 시간이 몇 배나 더 든다는 걸 세이라도 잘 알았다. 그 시간이 할머니의 생명력을 빨아들일까 겁이 났다.
「어린애가 그런 걸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아이의 속내를 꿰뚫어보듯 주름진 손이 뺨을 문질러왔다. 왈칵 눈물이 났다. 그 날은 결국 오랜만에, 할머니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떼를 쓰며 끝나고 말았다.
그런다고 면회가 길어지는 일은 없었다.
세이라는 이제 다음 면회가 두려워졌다. 할머니 앞에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게 두려웠다. 동시에 세이라는 할머니와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두려웠다. 그녀가 볼 수 없는 곳에서, 그녀의 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 할머니의 시간이 멋대로 흘러가는 것이 두려웠다.
이렇게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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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록, 콜록콜록.
소리 없는 기침이 나온다. 목이 화끈거렸다. 눈을 찌푸리며 준비해온 차를 마셨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씨에 나뭇잎이 몇 개인가 한들한들 떨어져 내렸다. 그녀가 든 잔 위로도 아직 자라다 만 나뭇잎이 올라앉았다.
여름밤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벌레 한 마리도, 작은 동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요했다. 모든 소리가 침묵해버린 양. 어느새 세이라에겐 익숙해진 침묵이었다.
오늘은 어쩐지 평소보다 피곤하네요. 그만 들어가 쉬어야겠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입을 뻐끔거린다. 아직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은 채다. 들리지 않는 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것 또한 그녀에게 익숙해진 것 중 하나였다. 돌아가면 향수를 뿌릴까. 바다를 그리게 해주는 그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채였다. 슬슬 새 것을.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흉내만으로 제 빈 공간을 채워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