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맣게 또렷한 눈동자가 똑바로 향해온다. 입가에는 특유의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세이라는 그녀의 안쪽에 제가 남긴 말들이 가시처럼 박혀버렸음을 보아버린 기분이었다. 아니에요, 당신을 찌르려 한 게 아니었어요. 사과가 입안을 맴돌았다. 그러나 제 사과는 그녀에게 필요한 게 아니겠지.
그녀를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누구보다 약에, 앨리스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세이라 자신이었으니까.
“왜 약이나 앨리스에 의존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해?”
그래서 세이라는 미야코의 말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쁘다고 한 건 아니었어요. 다만 안쓰러울 뿐이에요. 그리고 또 안타까워하고 있죠.”
연민은 스스로를 향하고 있었다.
「타케가와 선생님, 오늘도 앨리스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오바 군, 향수가 다 떨어져서 말이죠…….」
구부러지는 손끝을 어루만진다.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절실함은 저 또한 동의하고 있답니다. 그 덕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요.”
누구의 탓을 할까. 누구를 비난할까. 아무도 없다, 이곳에서 잘못한 사람은. 그러니 다만 연민할 뿐이다. 자신을, 그녀를, 또 다른 누군가를.
“하지만, 미야코 씨. 기계적으로 채워 넣는 감정에 때론 지쳐버리는 순간이 없나요. 인위적으로 불러일으킨 감정이 끊겨버리는 순간 심연으로 추락해버리는 아찔함은 경험한 적 없나요. 이유 없이 드는 감정에 스스로를 의심해버리는 일은요?”
미야코는 약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약효를 믿는다고 했지. 세이라는 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하기에 의심하였다. 지금 내가 드는 감정은 정말로 내 것일까?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은 정말로 내 것일까? 자신의 기쁨을, 즐거움을, 행복을, 불신해버리고 말았다.
실상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그러했다. 한참을 웃다가 갑자기 뱃속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해지는 순간이 있다. 꽃을 보고 기뻐하다가도 돌연 울고 싶어졌다. 즐거움은 무엇이었더라. 어떨 때 나는 즐거워했더라. 감정을 되짚어나가면 그 끝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지, 약이, 향이, 앨리스가 남아 있었지.
그러면 남겨진 것들을 앞에 두고 세이라는 잠시 아득해졌다. 이것은 ‘나의 것’인가. 정말로? 그렇다면 어째서 나는 스스로 이것들을 자아낼 수 없는가. 왜 이 중 내 힘으로 손에 거머쥔 것은 없는가. 그 다음은 불안이었다. 어쩌면 영영 내 힘만으론 되돌릴 수 없는 감정이 아닌가 하고.
“의존하건 말건 잘 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미야코 씨, 저는 무서워요. 이 뒤로 제 스스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것 같아서, 남이 주는 것을 받아 채우다, 언젠가는 아무리 긁어모아도 채워지지 않을 만큼 허해질까봐요.”
그렇다고 해서 이 의존에서 벗어나 스스로 일어날 힘이 있지도 않았다. 무기력한 세이라. 배부른 투정이다.
문득 스친 건 과거의 기억이다. 아주아주 옛날. 딱 지금까지의 인생 중 반을 잘라낸 시점의, 세상에서 겪은 슬픔이라고는 조부모와 떨어진 것뿐이던 시절, 호기심에 미야코의 연구실을 찾아가 그녀가 만든 약을 먹어본 적 기억.
세이라가 기억하는 최초의 슬픔이기도 했다. 제 것이 아닌 남의 것. 낯선 것. 당시엔 처음 느낀 짙은 슬픔에 놀라서, 제가 더 눈물을 쏟으며 그녀를 껴안는 것이 최선이었다. 당신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설픈 진심만을 담아 건넸다.
감정을 달래는 법이 서툴렀다. 동시에 순수하기도 했지. 지금은 덕지덕지 붙은 생각들이 순수에 흠집을 낸다. 이제 와서는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단 말도 들려주지 못한다.
어찌 됐든 예나 지금이나 미야코에게 자신은 들려줄 말을 잘 못 고르는 사람인 것 같다고, 세이라는 쓰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