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의 로그는 inSANe 시나리오 [__에 이르는 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션의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 분은 클릭하지 말아주세요.
: 루 모겐스
눈앞에서 인간이 재로 변해버렸다. 방금 전까지도 대화를 하고 따뜻한 몸을 하던 인간이 한순간에 아무런 열도 갖지 못하는 재가 되었다. 이렇게 만든 것은 그녀다. 거기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다. 같은 순간이 돌아오거든 같은 선택을 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그를 살리기 위해.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위해. ……정말?
정말 그와 함께할 수 있을까? 부러 든 생각을 잘라냈다. 어쩌면 일찌감치 예감한 가정을, 가설을 지웠다. 그녀는 그와 달랐다. 오지 않은 가정을 말하며 대비하라거나, 싫었다. 그런 가정을 할 바에야 일분일초라도 더 현재를 살고 싶었다.
그가 재를 마시는 순간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다. 이걸로 이제 그의 괴질은 낫는다. 뇌에 침투하여 자란다는 불길한 꽃 따위, 다시는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아, ……루!”
휘청거리며 쓰러지는 그에게 놀라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왜? 어째서? 뭔가 잘못된 건가? 무릎 위에 그를 누이고 떨리는 눈으로 응시하자 그는 제 마음도 모르고 또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남겨왔다.
아니, 아니다. 듣고 싶지 않을 리 없다. 사랑한다는 그의 말은 지독하게도 달아서 마치 독과 같았지만 에슬리는 그가 주는 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널 고독하지 않도록 할게. 반드시.”
──이미 루를 만나고 고독하지 않게 됐어. 그리고 더 큰 고독을 알게 됐어.
“내가 널 사랑하고 있을 거야. 어느 곳에서든. 언제나.”
나도 마찬가지야. 사랑하고 있어. 언제든 어디서든.
사랑하는 사이엔 키스를 한다고 들었는데, 루에게 입 맞추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쉬워. 미약한 미소를 띠고 눈 감은 그의 얼굴을 가만 어루만지다 손가락 하나의 거리만큼을 두고 그의 여기저기에 키스를 남겼다. 닿지 못해도 닿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다 불현 듯 찾아온 것은 온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만 같은 오싹한 감각. 피가 차갑게 식고 그 차갑게 식은 혈관으로 벌레들이 좀먹어가는 것만 같은──, 아아. 그렇구나. 이게 내가 가진 독이구나. 그에게 받은 사랑이 짜낸 독이야.
신기하게도 마음을 조금 달리 먹은 것만으로 불쾌는 애틋함으로 고통은 사랑스러움으로 바뀌었다. 고통을 삼키고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을 더듬어 쥐고 움켜쥐었다. 이 순간을 부디 조금만 더.
“알고 있어, 루? 루와 만나기 전의 나는 괴질에 걸리기 전부터 고독했어. 누군가에게 선뜻 닿지 못하는 병 같은 거, 얻기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여겼어. 그러다 루를 만나고 말야. 진짜 고독이 뭔지 알게 되었어. 루와 함께 있지 않은 나야말로 괴질 같은 걸로 표현할 수 없는 고독인 거야.”
그를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각을 배우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던 하루하루가 변했다. 그저 혼자 발버둥치기 위해 바라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해 삶을 바라게 되었다.
“이왕이면 좀 더 멋진 고백을 하고 싶었어. 루에게 무엇이든 가장 좋은 것을, 잘 포장된 것을 주고 싶었어. 그게 망쳐져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
나는 좋아한다는 그 한 마디를 꺼내지 못해 쩔쩔매는데 당신은 나와 같은 의미가 아니어도 쉽게 내뱉으니까, 내가 볼품없이 느껴져 괜히 짜증을 부렸어. 실은 그럴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이 말해줄 거였는데.
이렇게 짧을 줄 알았다면 더더욱……. 흘긋 본 손목의 리미트가 아까보다도 빠르게 점멸하길 반복한다.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듯 가속해가는 그것에서 눈을 돌린다. 이 순간에 오고 나서야 모든 것이 아쉽고 모든 것이 후회스러울 뿐이다.
그를 비추던 눈동자가 탁하게 번진다. 그저 새까맣고 또렷하던 것이 흐리멍덩해졌다. 눈꺼풀을 몇 번 더 깜빡이다 포기하고 대신 그의 가슴에 기대 누웠다. 그에게서 들려오는 심장 박동을 자장가로 삼았다.
“사랑해, 루. 내게 고독하지 않은 시간을 안겨줘서 고마워. 나는 말이지, 루와 함께하는 일순을 위해 일생을 버텨온 게 틀림없어.”
당신의 사랑에 이르러 나는 행복해. 그러니 루도 부디, 부디──…… ……당신이 날 고독에서 구해준 만큼, 나도 당신이 고독하지 않게 곁에 있어주고 싶은데.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