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며 루가 가리킨 날짜는 그의 생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가만히 시선을 두자 응? 하고 유한 미소가 돌아온다. 그 표정에서 생각을 읽어내기란 제법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지, 본인이 생각하고 있지 않은 일을 멋대로 짐작하려는 이쪽의 잘못이다.
“루의 생일이네.”
그래서 에두르는 대신 묻자 그제야 떠올렸다는 듯 긴 눈썹이 가볍게 율동하며 벌써 그렇게 됐나. 짧은 반문을 들려주었다.
그러게, 벌써잖아. 그에 동의하며 에슬리는 작년 이맘때를 떠올렸다. 작년엔 케이크를 만들어주기로 약속했었지. 어떤 걸 만들어줄지 어떻게 해야 맛있는 걸 완성할 수 있을지 오래오래 고민했다. 그리고 돌아온 올해다. 올해는 뭘 주면 좋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물어보는 건데. 뒤늦게 후회하며 다시 길고 긴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물어봤다 하더라도 원하는 답─구체적으로 받고 싶은 선물─을 얻었을진 모르겠지만. 여전히 생일보단 유성우에 관심이 더 많아 보이는 눈동자에 이런 점은 정말 어쩔 수 없네.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제는 익숙해져서 에슬리는 허리에 두 손을 올렸다. 이럴 땐 똑바로 말해주는 편이 좋았다.
“하늘까지 축하해주는 생일이라니 굉장하잖아, 루. 그 날은 별이랑 내가 루를 잔뜩 축하해줄 테니까 각오해.”
기대가 아니라 각오야?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그야 각오지. 부러 으스대듯 답한다. 그러면서도 에슬리의 머리는 바쁘게 돌아갔다.
여전히 자신의 생일엔 별 감흥이 없었다. 애초에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채고. 대충 해가 바뀐 겨울 어드매라고 하긴 했는데. 스스로의 태어난 날을 스스로 축하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내가 태어난 건 좋은 일이었나? 기념할 일인가? 그야 누군가에겐 축하할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스스로는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겐 축하할 일이 될지도 모른다. 에슬리는 이제 그 지점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축하해주는 상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축하할 상대가 생겼다.
“어서, 루. 얼른~”
자정을 막 넘기기 직전의 시간. 그의 손을 당기며 지붕으로 올랐다. 서두르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그의 염려에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잘난 척하는 덧붙임이 뒤따르기도 했다.
지붕 위엔 이미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따뜻하고 달콤한 코코아, 함께 먹을 간식, 두 사람을 포근하게 덮고도 남을 넉넉한 담요와 품에 안을 물주머니.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추울 염려는 없었지만 준비를 하는 순간조차 즐거우니 좋았다.
나란히 담요를 덮고 그의 품에 기댄다. 귓가 바로 근처까지 들려오는 고동에 조금 잠이 올 것만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유성우는 보여? 아직? 하늘에 별이 저렇게 많은데, 떨어지는 별은 없네. 하늘까지도 재촉할 듯 굴면 머리 바로 위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제오늘 떨어진 별들은 쌍둥이자리 유성우래. 한 시간에 120회 정도는 떨어진단 모양이야. 웃음소리의 뒤를 이어 들려오는 설명에 헤에, 감탄을 한다. 무슨 소원을 빌진 생각해뒀어? 바로 직전의 설명과 괴리가 느껴지는 미신적 질문에는 헤에~? 반문을 하였다.
“루는 어떤데? 소원, 생각해두었어?”
그가 빌고자 할 소원이 그녀가 바라는 소원과 비슷할 거라 생각하는 건 오만일까, 안정일까. 그보다 역시 별에게 소원이라니. 금세 또 자기 생일은 잊어버린 게 틀림없다.
하늘을 향해 있던 몸을 그가 있는 방향으로 튼다. 꼭 맞닿아 있던 사이로 틈이 생기면 벌어진 거리만큼 그의 얼굴이 잘 보였다. 담요에 잘 감긴 몸과 달리 찬 공기에 노출돼 빨갛게 변한 뺨에 두 손을 올리자 그의 표정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이렇게 만져지는 것이 좋다고 알려주는 표정에 에슬리는 기쁜 얼굴을 하고 그의 뺨이 녹아내리도록 문질러주었다.
“별이 떨어지는 건 별이 죽는 거라고 했지? 죽은 별빛을 보면서 소원을 빈다거나, 좀 이상한 기분이야.”
지금 제 눈에 보이는 빛이 사실은 아주아주 옛날의 빛이란 것도 들었다. 들었지만 머리로 이해는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요점은 그거다. 보기에 예쁜 만큼 듣기에도 예쁜 건 아니란 거다.
“그러니까 루의 소원은 내게 비는 게 어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하늘의 별보다 여기, 바로 루의 앞에서 듣고 있는 나한테 말야.”
기억하고 있어? 오늘이 아주 특별한 날이란 거.
떠올린 걸까. 기대하는 듯 빛이 도는 눈동자에 시선을 마주치고 에슬리는 파핫,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막 열리려는 그의 입술에 도장을 찍듯 꾹, 입맞춤을 남긴다. 이건 오늘의 내가 루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줄 거란 약속.
“생일 축하해, 루. 루가 태어나준 것에,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온 것에 무척 감사해. 오늘까지 있어줘서, 나랑 만나줘서 고마워.”
하늘도 별도 축하해주는 특별한 생일이라고 했지? 하지만 누구보다 축하해주는 건 절대 나일 거야. 자신만만하고 동시에 욕심이 섞인 목소리였다. 루의 생일을 제일 축하해주는 건 틀림없이 나지? 동시에 확신이기도 했다.
“내게 루를 잔뜩 축하하게 해줘.”
사랑해. 속삭임과 함께 그를 당긴다.
어느새 별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단단한 무릎에 올라앉아 에슬리는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를 감싸고 한 번 더 입맞춤을 남겼다. 그와 제 맞닿은 틈으로 계절을 잊을 만큼 뜨거운 공기가 차오르도록 오래, 아주 오래. 밤하늘을 가르고 수만 별들이 비처럼 내리는 밤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