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그것이 어떤 용도이든 어떤 가치가 있든 상관없이 그것은 ‘그것’이라는 존재만으로 의미를 갖는다.
인간이 그러하다. 인간에게는 어떤 가치를 매기지 않더라도 어떤 쓰임을 따지지 않더라도 인간이라는 것만으로 존중받아 마땅하고 존재할 의의가 생긴다.
센티넬의 본질이 위험하다 하여도, 통제되어 마땅한 시한폭탄과 괴물 취급을 받더라도 센티넬 또한 인간이라면, 그 존재만으로 센티넬에게 부여된 본질을 앞서 존중받아야 했다.
우리를 존중해주렴. 인정하고 받아들이렴.
본질만이 존재를 증명한다. 존재란 그 본질 앞에서 벗어날 수 없다. ──라고 네가 정면으로 말했다.
「의존해야지.」
「센티넬이라면 가이드에게 의존해야지. 가이드는 센티넬을 통제하고.」
센티넬을 통제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한다. 그것이 가이드의 본질.
네 본질을 통해 너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네 수단이 되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어떤 황홀경이었다. 표현하자면 또 다른 광기와 닮아 있었다.
천천히, 여유롭게.
네가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손끝부터 퍼지는 온기의 시작은 체온을 닮아 있었다.
미약하고 섬세하게, 더 정밀하고 가느다랗게.
은색의 실을 휘감은 불꽃이 푸르게 춤을 추었다. 나를 집어삼킬 생각뿐이던 위협과는 사뭇 달랐다. 처음으로 너는 침입자가 아니라 방문자가 되었다.
보다 완전히.
보다 확실히. 소년의 성장은 순식간이었다. 내 안으로 네 힘이 거부할 수 없이 깃들었다. 푸른 불꽃이 내게 녹아들었고 나를 녹여 내렸다. 네 힘 안에 감싸여 가본 적 없는 경지에 달했다. 본 적 없는 풍경에 닿았다.
어떤 황홀경 안에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광기였다.
속수무책으로 울고 싶었고 돌아버린 듯 웃고 싶었다.
네게 기대고 싶었다. 네 품에 안겨 그대로 무릎을 꿇고 내가 졌노라, 백기를 들고 싶었다. 무의미한 줄다리기에서 그만 내려와 모든 것을 네게 맡기고 그만 편해지고 싶었다. 깍지 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대로 네게 취해버릴 것만 같았다.
존재가 무너졌다. 나의 본질이 내게 한계를 둔다.
이렇게까지 무력하고 무방비하다. 내 모든 견고함이 오직 너만을 예외로 두려 했다.
“자, 어때. 내 선택.”
이제 됐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할 말을 빼앗겼다. 묻고 싶은 건 내 쪽이었다.
모든 것을 억누른 끝에 뺨을 타고 네 열에 채 다 마르지 않은 눈물이 흘렀다. 한 차례 감정의 파도가 지난 마음이 서툴게 걸린 빗장 사이로 틈을 보이고 있었다. 틈 너머 캄캄한 구석에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잡힌 손을 성급하게 빼낸다. 숫되고 어리숙해진 건 나였다.
“나의 무엇이 되려 하니, 장.”
정말 나를 네게 의존하게 만들려고? 내 가이드가 되겠다고? 반대지. 너의 센티넬로 삼기라도 하려 그러니. 우습지도 않게.
우월감에 취했을까. 만족을 느끼고 있을까. 표정을 볼 여유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네 앞에서 나를 보호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네게, 나를 허락하지 않을 거야. 네게 의존하지 않아. 의존해버려선 안 돼. 그건 나를 약하게 만들어.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건넨다. 끝내 눈이 감겨들었다.
진짜 이 때 장에게 받은 답록이 너무 오져서 하나하나 씹고뜯고맛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인델 바이오에 적혀 있던 '존재는 본질을 앞선다'를 두고 답해준 부분이 정말 킬링포인트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