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밤이었다. 별도 빛나지 않는 밤인 것만 같았다. 세상이 고요했다. 이곳은 내내 고요했지. 침묵이 불안을 부추기고 마음을 술렁이게 할 만큼. 만들어진 고요였기에 더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소리 내는 것들은 언젠가 잡아먹힌다. 우리는 어떤 거대한 포식자의 목구멍 안이었다.
「저… 아직 인간인가요?」
기분 나쁜 침묵 속에서 네 목소리가 닿았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괜찮은 척조차 할 수 없이 겁을 집어먹었던 목소리.
「챙. 내가 네 손을 잡으러 가도 되겠니? 참을 수 있겠어?」
네 목소리는 우리에게 계속 닿았는데. 내 말은 네게 닿았을지 모르겠다. 할 수 있다면 다가가 네 손을 잡고 싶었다. 너는 상냥하고 겁이 많으면서도 잘 참을 줄 아는 아이니까. 손잡길 두려워하면서도 잡고 싶어 하는 아이였으니까. 네가 한 번 더 참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너의 말로 나를 움직여봐.」
언젠가의 그 때처럼 네가 한 번만 더 나를 불러주길 바랐다. 손을 잡고 싶다고, 그 한 마디만 있었다면 끝까지 너의 편에 서있었을 텐데.
하지만 챙, 거기서 네가 내 말에 답하지 못했다고 해서 참아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네 탓이 되지는 않는단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다만 우리 존재가 불행했을 뿐이야.
우리가 괴물이라서.
*
챙 후이위. 너는 언제나 내 오만의 끝에 달해 있는 아이였다. 네가 가진 적 없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고, 누린 적 없는 것들을 누리고 있고, 모르는 것들을 알고 있다고. 그 모든 것을 네게 나누고 싶다고 멋대로 너를 휘두르고 베풀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너에게 그렇다면 나를 믿으라고 말하며 네 지침이라도 되려 했다.
그 때마다 너는 말했지.
「아인델은 대단해요.」
대단하단 말이 듣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저 이 모든 게 당연히 너의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줄 수 있다면 전부 네게 주고 고르게 하고 싶었다.
너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욕심내 움켜쥐는 것조차 서툰 아이에게 욕심내는 법을, 망가트리지 않고 손에 쥐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오직 너와 내가 같은 인간이었기에. 센티넬도 괴물도 아닌 인간이었기에. 너의 욕망을 긍정해주고 틀리지 않았다고 가르쳐주고 네가 너의 욕망 위에 우뚝 서길 바랐다.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너는 견고해졌지. 어릴 때의 금세 울고 우물쭈물 움츠리고 금방이라도 도망가고 싶어 안절부절 하지 못하던 그 모습이 다 어디로 갔나 싶을 만큼 자라서 더는 어떤 말을 들어도 웃지 않는 순간이 없고 문장을 마치지 못하는 법이 없고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분명 잘 자랐다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너는 훌륭히 자랐다. 하지만 때때로 네 안대 속이 불길하리만치 새까맸다. 열어선 안 될 항아리를 막아놓은 것처럼 이상하게도 네가 여전히 내 눈엔 불안하게만 보였다.
그 안대 너머엔 무엇이 있었을까. 네가 포기한 것, 네가 욕심내지 못한 것, 네가 바라선 안 된다 여긴 것, 그 모든 것을 들어주고 싶었는데. 듣고, 너를 긍정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마지막까지 너의 편이고 싶었는데.
*
햇빛을 받으며 네가 잠든 곳을 찾았다.
“네가 너를 바란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네가 너를 바라지 않는 게 되진 않지. 네가 너를 바랄 수 없었다면 내가 너를 바라주었어야 했는데.”
바로 이틀 전의 밤, 이슬을 맞으며 너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한 발 나서줄 걸 그랬지.”
네게 알려주지 못한 게 아직 많은데. 네게 배울 게 있을 텐데. 여기 혼자 남겨두면 네가 쓸쓸하진 않을까. 고독하진 않을까. 그 앞에 무릎을 접고 앉았다. 네 위를 천천히 실로 덮어주었다. 섬세하고 아름답게, 베일과도 같이 혹은 이불처럼 네가 춥지 않게.
그 위에 제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 흩뿌렸다. 너를 덮은 거미줄과 구분이 가지 않는 색의 그것이 빛을 받으며 떨어졌다. 네 곁에 나를 남겼다.
“긴 머리가 좋다고 했으니 많이 자르진 않았단다.”
챙, 이제는 두렵지 않게 되었니? 네 능력이 언제 너를 잡아먹을까.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까. 한시도 안심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경계하던 그 책임에서 너는 내려왔을까.
대신에 너는 외로워졌을까.
「괴물은 괴물이에요.」
나는 이제 부정할 자신이 없었다. 우리가 괴물이라서. 다만 우리 존재가 불행한 탓에. 그리하여 우리는 소멸 끝에 섰을까.
「아인델이 꺾이는 건 바라지 않는데.」
그러면 너도 꺾이지 말았어야지. 너는, 우리는, 늘 인간이 아니었던 적이 없는데. 끝내 너는 괴물로 죽고 말았니, 챙.
“그렇지만 챙, 이제는 괴물이어도 괜찮단다. 네가 인간이어도, 괴물이어도. 네 본질이 무엇이든 너는 챙 후이위야. 네가 너를 어떻게 받아들이든 부정하지 않고, 대신 너의 존재를 긍정하고. 괴물이어도 인간이어도 너는 그저 나의 소중한 친우였다고 들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