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있었다. 욕망이 있었다. 사람들을 지키는 것, 약자를 돕는 것, 센티넬에게 인간의 이름을 돌려주는 것. 사회를 거슬러서라도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그 일이 쉽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더욱 나는 강하고 흔들림 없이 높은 곳에 가 서야 했다.
그곳에 내가 혼자일 줄로 알았다.
「센티넬은 인간이야.」
네 입에서 나온 말에 그래서 잠시 귀를 의심했었다.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다.
센티넬을 대하는 가이드의 시선은 각양각색이었다. 누군가는 두려워했고 누군가는 혐오했고 누군가는 동정했고 누군가는 특별취급을 했다. 어느 것도 내가 찾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바라는 건 나를 센티넬이 아닌 인간으로 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동등한 인간이길 바랐다. 독고예수. 너는 가이드이면서 센티넬을 인간으로 보아주는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혼자 설 줄 알았던 그곳에 네가 나란히 서주었다. 향하는 가시밭길이 네 덕에 고되지 않았다. 벌써 10년도 전에 출발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일이다.
쉬운 일이 아닐 거라 각오했던 일이었다. 우리는 사회의 반동분자에 불과했다. 돌을 맞았고 눈총을 받았다. 손가락질과 비난이 거듭되었다. 그럼에도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동등한 인간이다. 그 한 가지 명제를 믿는 한 무너지지 않았다.
무너지지 않을 줄 알았다.
명제가 흔들렸다.
제어가 듣지 않았다. 폭주를 멈출 수 없었다. 분명 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너는 들리지 않는다 했다. 분명 내 눈엔 인간의 모습이 네 눈엔 괴물로 보인다고 했다. 눈앞에 도움을 요청하는 센티넬이 있는데 돕지 못했다. 그의 존재를 부정하고 괴물로서 사살했다. 사살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죽었다. 살려달라, 도와달라 말하는 그를 앞에 두고 우리는 목숨의 무게를 저울질해야 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야.
그 명제가 뿌리부터 흔들렸다.
아카데미 시절 너는 화를 냈었다. 아이들에게 가혹한 걸 시킨다, 이런 극한 상황에 몰아넣는 건 잘못이다. 네 말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론 생각했다. 언젠가는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하고 말 것이다. 그 때에 과연 우리는 ‘정답’을 고를 수 있을까.
결과는 No다. 처음부터 정답 따위는 없는 문제였다. 최악을 피해 차악을 고를 수밖에 없고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야 한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하지만 현실.
우리의 이상이 턱없이 높고 꿈만 같다는 그 실감만 사무칠 뿐이었다.
무엇보다 네가, 그리고 내가 우리의 고집이 누군가의 상처로, 피해로, 상실로 이어질까봐 두려웠다. 사실은 하나도 강하지 않고 의연할 수 없고 결국은 이상으로 포장한 위선이고 이기심이다. 그렇게 생각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우리의 명제가 틀렸다고 납득하지 않았다. 비록 내 의지가 꺾이고 정의가 무너지더라도, 나의 신념 앞에서 내가 떳떳하지 못하게 되었다 해도 《우리는 동등한 인간이다.》 내가 비록 이루지 못하더라도 나의 굴복이 명제의 오류가 되기는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걸어 나가기로 했다.
해결해야지. 네 그 말에 천천히 널 안았던 팔을 풀었다. 내가 흔들릴 때에 네가, 네가 흔들릴 때에 네가. 혼자가 아니었기에 우리는 아직 설 수 있었다. 나의 든든한 동지, 전우.
“예수.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챙은 인간이어도 괴물이어도 챙이었다고. 그 아이의 본질은 센티넬이나 인간이나 괴물이 아니라 그저 챙 후이위였다고. 그 아이가 내면에 어떤 괴물을 키우고 있었어도 그저 챙 후이위였다고.”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그 아이가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거부하고 이겨내려 했는데도 전부 물거품으로 만든 이번 일만큼은, 그 아이를 원치 않게 괴물로 만들어버린 이상 현상을 우리는 해결해야만 해. 우리의 신념은 이 일을 해결하지 않는 한 제자리에 멈춰선 채 나아가지 못할 거야.”
적어도 이 자기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센티넬은 제어하지 못할 존재가 아니었다. 센티넬의 의지를 어그러트리고 욕망을 비뚤게 하는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일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