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당신은 웃기도 하는 사람이구나. 내내 찡그리거나 뚱하거나 무표정하거나 아무튼 기분 나빠 보이는 얼굴만 본 것 같은데. 덕분에 처음엔 잔뜩 눈치를 보았다. 지금이라면 그저 그렇게 타고난 얼굴이라고 알게 되었지만.
미소라고 해도 될까. 살짝 당겨진 입꼬리를 응시하며 저는 이미 얼굴가죽이 그렇게 되먹은 게 아닌가 싶은 환한 미소를 보인다. 습관이고 버릇이고 스위치를 누르면 나오는 싸구려 복사기의 사진 같기도 했다.
당신의 표정을 따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 제 얼굴을 이리저리 만진다. 이것도 뭐든에 속할까요? 제가 할 수 있는?
-뭐든 할 수 있잖냐.
저의 무얼 보고 그런 말이 나온 걸까. 아니면 뭐든이란 게 그렇게 쉬운 걸까. 뭐든 할 수 있어요? 그 뭐든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뭐든인지도 모르겠는데. 제게 생각할 기회조차 주어질지 모르겠는데. 퐁퐁 솟아오르는 불신과 불안. 뚱하게 반박하고 싶어지는 뿔난 기분.
하지만 앙헬 씨가 하는 말이니까 맞겠죠.
그 모든 것을 한 번의 깜빡임으로 덮었다. 맹목이란 참 간단하다. 盲目, 눈이 멀다. 그것이야말로 제가 하는 무엇이든의 하나지.
-한 번쯤은 어울려줄 수도 있고.
뻐꾸기가 둥지를 찾아 울었다.
두 손이 당신의 손을 덥석 감싸 쥔다. 휘어지듯 웃는 녹색의 눈동자는 무르익은 녹음을 떠올리게 했다. 잔뜩 피어나 가지를 무겁게 하는 것, 쳐내지 않으면 부러질지 모르는 것, 무엇이든 과해 독이 되는 것들이 청명한 녹음의 탈을 쓰고 고인다.
“저, 하고 싶은 게 떠올랐어요.”
오, 벌써. 그렇게라도 말하고 싶은 당신의 표정에 들뜬 목소리가 이어졌다.
“앙헬 씨를 소중히 대할래요.”
제가 당신을 소중히 여길게요. 배신하지 않고 변하지도 않고. 기대했다가 실망하지 않을 만큼 아주 소중히 대해줄게요.
“당신의 마음이 의미를 잃지 않도록 해줄게요. 그러니까 앙헬 씨도 제가 외롭지 않도록 혼자 괴롭지 않도록 소중히 대해주세요.”
그러면 우리 두 사람 아주 멋지지 않을까요?
무구하게 반짝이는 그것을 빛이라 해도 좋다.
그러나 너무 강한 빛은 때로 눈을 멀게 한다. 제 발밑조차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어 그 인도가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게 하지. 바로 그런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