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선언에 저의 다섯 마리 포켓몬들은 하나같이 심드렁한 얼굴을 했어요. 아앗, 저기. 얘들아. 너무하지 않아? 테루테루는 요즘 연이은 배틀로 지쳤는지 추욱 늘어져 엎드린 채로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었고 테비는 흙바닥을 콕콕 쪼며 먹이를 찾지 뭐예요. 테마리는 또 혼자 성이 나 있고 테토는 벌써 정신이 다른 데로 팔렸는지 혼자 통통 튀며 멀리 가려는 걸 겨우겨우 붙잡았어요. 테리로 말하자면,
“테리. 아직도 아파?”
화상 연고를 발라준 곳에 얼음찜질을 하고 있어요.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테리. 보통 상식적으로 포켓몬 센터를 다녀오면 깨끗이 낫잖아. 그런데도 보란 듯이 얼음찜질을 하는 건 나를 향한 항의의 표시야? 시위야?
제 물음에 테리는 ‘아이고, 나이가 드니까 옛날에 다친 상처가 쑤셔오네요.’ 같은 표정을 짓지 뭐예요. 에잇, 그야 포켓몬의 수명으로 따지자면 저랑 똑같이 14살이라고 해도 테리의 나이는 훨씬 위겠지만요.
“테리이. 정말 아픈 거야? 괜찮아?”
통통하고 작은 몸을 꼭 껴안고 칭얼대자 테리는 겨우 그게 아니란 듯 스을쩍 잎사귀로 저를 톡톡 두드려왔어요. 바코열매를 지니게 했다고 하지만 비행 타입도 있고 심지어 불 타입도 있는데 왜 자기를 내보낸 건지 물어보고 싶은 모양이었어요.
테리의 옆에서 테토도 통통 다가오지 뭐예요. ‘맞아요, 테리보다 제가 더 나았을 텐데.’ 하고 뚜꺼운 지방을 뽐내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자 테리가 홱, 테토를 밀치지 뭐예요. 앗, 잠깐만. 너희 싸우니? 사이 안 좋아? 테토는 테리의 뻐대김에 툭 데굴데굴 밀려나서는 ‘저 선배가 텃세 부려요.’ 하고 올망졸망한 얼굴로 쳐다봐왔지만…… 테토, 너어…….
생각해보면 체리베리 플라워샵에서는 특별히 저만의 포켓몬이랄 게 없었어요. 테리는 물론 제 짝꿍이었지만 그렇다고 제 것이었냐 하면 우리집 포켓몬이란 느낌이었고. 트레이너 캠프에 오면서 테리를 파트너로 고르고 이곳에서 테비나 테마리나 테루테루, 테토를 잡으면서 비로소 어…… 디모넵 캠프! 가 생긴 셈이에요.
그래서 생각도 못했어요. 우리 애들 사이에 이런 불화가 있을 줄이야. 마침 말이 나온 김에 따지겠다는 듯 테리는 저에게 이러쿵저러쿵 동그란 몸을 부풀리고 어필해왔어요. 테토가 마음대로 가방을 뒤지고 먹을 걸 집어먹고 방을 어지럽힌다는 거예요. 그러자 테토는 반대로 테리가 조금 저랑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뻐대면서 사사건건 간섭을 한다고 해왔어요. ──이럴 때 저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요.
“……아, 맞다! 우리 일단 저기, 삐라슈끼부터 먹고 마저 이야기 할까?”
그 때 떠오른 건 헤이즐 씨에게 받아둔 삐라슈끼예요. 그러니까, 모두 함께 따뜻하고 맛있는 걸 먹으며 기분을 푸는 거예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밖에 안 되는 거지만요. 모두와 둘러앉아 삐라슈끼와 다른 간식들을 나눠먹고 있으니 오늘은 특별히 넘어가준다는 듯 테리도 테토도 얌전해졌어요. 하지만 이 다음이 문제네요. 앞으로 이 아이들이 충돌하려고 할 때마다 어떻게 달래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