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침낭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생각이 많은 밤이었다. 같은 텐트를 쓰는 유진은 케이의 텐트에서 오늘 밤을 불태우려는 것 같았다. 간혹 그쪽 텐트에서부터 들썩이는 소리가 들렸다. 즐거워 보이네. 14살 나이의 시치미를 뚝 떼고 끼어들어가 볼까 고민하던 디모넵은 작게 웃으며 잠가두었던 입구의 지퍼만 살짝 내렸다. 끼어들었다간 면박만 받고 쫓겨날 것이다. 노체라면 어떻게 잘 구슬려 한 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주위로 벽이 너무 두터웠다.
아-아, 재밌겠다. 부럽다는 듯 혼잣말을 투덜거리며 포켓리스트만 만지작거렸다. 얼마 전부터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이걸로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어제자 방송에는 ‘바늘미사일’이 어깨나 등의 결리는 곳을 지압하기에 좋다는 내용이었지. 그 전날의 방송은 신부의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 갸라도스를 잡으러 떠난 청년의 사연이 있었다. 또 그 전날은 뭐더라. 콘테스트 우승자의 감동 인터뷰였나.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포켓몬으로 꿈을 이루고 싶었다고 했다.
오늘은 무슨 사연이 들려올까. 테리를 품에 안고 이어폰을 꼈다.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하늘이 맑아 별이 보고 싶었다. 품속의 체리버는 꼼지락거리며 ‘디모넵. 찬 공기를 너무 쐬면 또 기침이 나올 거예요.’ 다정한 걱정을 해주었다. 아이는 미지근한 포켓몬의 몸을 감싸 안으며 다음엔 불 포켓몬 친구를 사귀어볼까? 속삭였다. ‘그것도 좋지요.’ 테리는 새 친구를 예뻐해 줄 줄 아는 어른스러운 포켓몬이었다. 테토는 예외라고 하자.
「오늘 전해드릴 이야기는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유적 X의 비밀 문에 관해서입니다. 분명 벽 너머에 공간이 있는 것이 확인됨에도 이 벽은 오랫동안 어떤 방법으로도 넘어갈 수 없어 수많은 학자들이 문을 열 방법을 고심했었는데요. 드디어 며칠 전, 문을 연 학자가 등장하였습니다. 그럼 현장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
캄캄한 밤, 별을 헤아리며 들려오는 소식을 듣는다. 유적 X의 비밀 문. 엄마 책장의 위에서 3번째 칸에 꽂혀 있던 내용이다. 안농 문자로 해석하는 것도 아니고 고스트 타입의 포켓몬도 통과하지 못하고 어떤 타입의 포켓몬을 데리고 도전해도 열리지 않던 문이 마침내 열리다니, 엄마도 지금쯤 이 소식을 듣고 있을까? 지금쯤 그 사람은 뭘 하고 있을까. 어디 있을까. ……적어도 같은 지방이긴 할 텐데.
포켓몬의 전설과 기원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바람이 있고 존재가 생겼을까. 존재가 생겨 관념이 나왔을까. 관념이 싹터 바람을 가졌을까. 신화 속 존재는 실재하는가. 신화는 어디서부터 기원하는가.
순 어려운 소리지. 철학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 것들을 메인으로 조사하고 논문을 낸다고 했다. 신오지방을 중심으로 하는데 종종 타 지방까지도 갔다. 그게 지금은 라이지방이었다. 하늘의 뿔을 연구하고자. 하늘의 뿔은 라이지방의 세 곳에 있다고 했지. 그 중 하나가 누림마을이었고 그래서 트레이너 캠프에 참가를 결정하자마자 각오를 다졌다. 라이지방에 딱 도착하는 순간 엄마를 만날지도 몰라. 그 때 나는──
실은 하나도 각오하지 못한 채였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하지? 어떤 표정부터 지어야 하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뚝 떨어졌다. 다행히, 아니 불행히였을까. 그 사람은 누림마을에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 도통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유예를 얻었다고 해도 진보가 없었다. 만나서 뭘 어쩌려고? 물어보면? 답을 들으면? ……나아갈 수 있을까.
「간만에 보는 자식을… 귀찮아하는 부모가 어딨어……?」
부끄러워하던 두 팔 안의 온기를 떠올린다. 수줍은 온도만큼 들려오는 목소리도 다정했지. 그 다정함에 바른 답을 주지 못한 것이 애석할 뿐이었다. 귀찮아할까, 귀찮아하지 않을까. 귀찮음조차 보이지 않을까. 짐작할 이해가 없으니 알 턱이 없다. 디모넵은 엄마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달리아 라지엘’ 씨라면 몰라도 ‘엄마’로서의 그 사람은 모른다. 그래서 어떤 예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뭘 기대하고 온 걸까, 테리. 아니면 뭘 각오해야 하는 걸까.”
캠프에 오고 벌써 3주가 지났다. 그 사이 느끼고 배운 게 많다. 포켓몬의 의미, 트레이너의 의미, 하고 싶은 일, 목표, 모두들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디모넵은 어떻지? 캠프에 참가하기에는 자격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아이는 여전히 엄마에게 전화 한 통 걸지 못한 채였다. 마주할 각오가 되지 않았다. 다음 하늘의 뿔이 있는 곳까지 거칠 마을은 3곳. 그 때까지 발견할 수 있을까. 이 캠프에 참가한 가치를. 전진할 수 있을까. 소중한 것을 잃지 않도록.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 지금의 우리들을 위해서 말이야.」
‘함께’를 나눌 사람이 있다. 테리는 늘 곁에 있다. 텐트의 지퍼를 열어두었다. 옆자리를 비우고 다시 누웠다. 기대할 온기가 있다. 지금의 제게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