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고 방문을 똑똑 두드려 유우 씨를 불러냈어요. 유우 씨는 언제나처럼 살짝 찌푸린 듯한 무표정으로 그래, 하고 따라 나와 주었어요. 랑이랑 칭에게도 인사를 해주면서 칭에게 “오늘 네 귀마개를 살지도 몰라.” 하고 속삭였더니 칭의 눈이 초롱초롱해지지 뭐예요. 귀여워라. 테리는 제가 그 말을 해도 심드렁하게 ‘저는 몬스터볼 안이 좋아요, 디모넵.’ 같은 눈을 했는데 말이죠.
물론 저도 테리의 잎사귀에 성에가 끼는 걸 반기진 않지만요.
오늘은 서리산맥으로 출발하는 날이에요. 라이지방의 서리산맥은 무척 험준하고 또 싸늘하다고 했어요. 서릿발 같은 바람이 골짜기 안을 슝슝 통과해서 아주 춥다고도요. 안 그래도 저는 북새마을부터 감기에 걸려 고생한 적이 있으니까요. 원래라면 혜성시티의 오르소 본점에서 새 옷을 사려고 했지만 서리산맥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하기로 했어요.
유우 씨는 순전히 제게 어울려주는 거고요. 상냥한 유우 씨.
유우 씨, 그러니까 린 유우 씨는 놀랍게도 같은 마을 출신이에요. 조금 더 말하자면 저는 동네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유우 씨에겐 어땠을까요. 쪼끔 자신이 없다. 그래도 지금은 분명 친구라고 해줄 거예요.
유우 씨는 꽃향기마을의 연구소에서 교수님을 도와서 열심히 연구를 하던 사람이에요. 그쪽의 연구소는 엄마의 연구랑은 분야가 달라서 잘 모르지만 종종 근처를 지나면서 유우 씨나 교수님, 랑을 본 기억은 있어요. 그렇지만 유우 씨는 연구소 바깥으로는 흥미가 없는지 대개 몇 마디 말도 없이 지나친 것 같아요.
그래서 트레이너 캠프에서 다시 만나서 이번에야말로 유우 씨랑 제대로 대화를 나누게 되어서 기뻤어요. 조금 친해진 기분이었어요. 캠프가 끝나고 나면 다른 모두와는 헤어지게 되겠지만 유우 씨와는 같이 돌아가게 될 테니까요. 나중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꽃향기마을의 꽃밭을 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다는 건 멋지지 않아요?
“아, 이거예요. 유우 씨. 어때요?”
저는 미리 직원 분에게 찜해둔 털 코트를 유우 씨에게 자랑했어요. 유우 씨는 느릿느릿 코트를 위아래로 보다가 곧 작게 웃어줬어요.
“괜찮은 것 같은데…….”
“그쵸. 엄청 폭신폭신하고 따뜻해요. 유우 씨는 정말 안 사도 돼요?”
“그 얘긴…… 그만 해.”
꿋꿋한 유우 씨. 뭔가 참는 것 같은 표정인데…, 저도 고집은 그만 부리기로 했어요. 각자 사정이 있을 테니까요. 그치만 포기한 건 아니에요. 혜성시티의 오르소 본점은 여기보다 옷이 더 많을 거고 그 중에 유우 씨 맘에 드는 옷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털 코트를 자랑하고 그 다음엔 마스크를 봤어요. 마스크도 종류가 많았는데 그 중에 귀엽게 쌔비냥 입을 따라 그려놓은 마스크가 있어서 저는 얼른 유우 씨에게 보여주었어요. 유우 씨는 ‘에, 이걸 내가?’ 하는 눈으로 잠시 절 봤는데요. 그치만 귀엽잖아요. 저번의 쌔비냥 옷이랑 꼭 세트일 것 같은데.
그러자 유우 씨는 뺨이 눈색처럼 살짝 열이 올라서요, 창피한 듯 눈을 피하더라고요. 유우 씨는 눈에 띠는 반응이 잘 없어서 처음엔 알기 어려웠는데요. 요즘은 조금 알 것 같아졌어요. 부끄럽거나 창피하면 일부러 말을 돌리거나 눈을 피하기도 하고요. 자기한테는 조금 무심한데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써주기도 하고요. 남들보다 옅은 편이지만 감정 표현도 해줘요. 아주 잘 봐야 하지만요.
그래서 유우 씨를 더 지그시 보게 되나 봐요. 랑도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저는 오늘 랑을 조금 이해하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