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깨어났다. 누군가 깨운 게 아니었다. 알이 툭, 투욱, 작게 박동하고 있었다. 알의 표면은 하루가 지날수록 얇아지고 동시에 단단해지고 있었다. 처음 알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 껍질은 꽤나 두툼했고 동시에 말랑해서, 어라 이거 쉽게 깨지지 않을 것 같은데? 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언제 이렇게 위태로워진 걸까. 이 속에서 어떤 말도 안 되는 기적 같은 성장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얇고 깨지기 쉬워지는 알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그만큼 알의 양분을 쑥쑥 먹고 박동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래, 이제 알에 귀를 기울이면 고동이 들려올 것만 같았다.
이 안에 하나의 생명체가 있다.
잘난 척을 할 생각은 아니지만 생명을 다루는 일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체리베리 플라워샵에서 14년을 사는 동안 포켓몬의 알을 본 일도 몇 번이나 있었고 옆집의 칠리가 태어나는 걸 보기도 했고 무엇보다 꽃집에서 키우는 그 모든 꽃 한 송이, 한 송이에 깃든 생명을 잊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또 달랐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익은 것과 새로운 것의 차이가 있었다. 디모넵은 이 알 속에 어떤 포켓몬이 기다리고 있을지 정체를 몰랐고 어쩌면 그 정체는 아이가 두려워하던 공포와 닮아 있을지 몰랐다. 저에게 온전히 맡겨진 생명이라는 무게도 있었다. 테리와는 달랐다. 테리는 디모넵에게 어찌 보면 동등한 대상으로 결코 자기가 보호해야만 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르다. 이 생명은 디모넵이 온 힘을 다해 보호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알은 디모넵에게 신세계였고 미지였다. 미지 앞에서 디모넵은 아주 조금 겁먹고 주저했으며 그럼에도 물러나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다 긴장한 제 다리를 툭툭 두드려오는 테리의 잎사귀에 아 그렇구나. 나는 너랑 싸우려는 게 아니야. 깨닫고 몸의 힘을 풀었다. 대신에 뻗었다. 두 팔을. 그리고 안아든 무게는 사랑스러워서, 또 애틋해서.
“이게 부모의 기분이란 걸까, 호구마.”
작은 진동에도 눈을 뜨고 혹여나 깨질까 날아갈까 애지중지 다루고 책임감을 배우고 그러다 문득 제 부모를 떠올린다.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와 같았을까.
알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디모넵의 마음에도 작은 기대가 톡 생겨났다. 마음의 알이 깨어졌을 때 희망은 날개짓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