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씨가 사라지고 난 방에 겟코랑 둘이 남아서 쎄쎄쎄를 했어요. 겟코는 낯을 가리는지 아니면 자기 트레이너인 아무 씨가 없어서인지 쭈뼛쭈뼛 안절부절 빙글빙글 서먹서먹, 그 기분을 알 것도 같아서 저는 혜성시티를 나올 때 시타라 씨에게 받은 포록을 나눠주며 겟코와 친해지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겟코는 아무 씨의 파트너 포켓몬이고 경험도 많고 실력도 뛰어나고, 안 그래도 친해지고 싶었거든요. 저 뿐만 아니라 제 포켓몬들도요. 낯선 포켓몬들에게 둘러싸이자 다시 쭈뼛거리며 혀에 혓바늘이 돋아날 것처럼 어색해하던 겟코였는데요. ……널 에밀 씨와 내 사이에 두고 가버린 아무 씨를 원망할까?
그래도 걱정한 것보다 겟코는 온순한 편이었어요. 간혹 다른 트레이너의 말을 안 듣는 난폭한 포켓몬들도 있잖아요. 어라, 잠깐만. 테마리 너 괜찮니?
──테마리랑 떨어질 일이 없으니 괜찮겠지.
테토는 자기도 물수리검을 쓰고 싶다고 겟코에게 매달리고 테마리는 너 이 몸과 한 판 붙자. 라며 시비를 걸고 겟코를 너무 귀찮게 하는 것 같아 걱정하던 중에 놀랍게도 겟코에게 아장아장 다가간 건 테이였어요.
테이는 잎사귀를 입에 문 채로 커다란 개굴닌자를 올려다보더니 흡착력 있는 손가락을 까딱여 묻더라고요.
‘나도 너처럼 강해질 수 있어?’
테이가 보기에 정말 강한 포켓몬은 겟코였나 봐요. 옆에서 테마리가 분하다고 씩씩거리는 걸 못 봐서 다행이에요.
겟코도 한참 어린 테이를 어떻게 거절할 수 없었는지 결국 테이에게 물수리검의 원리나 날아가는 방식이나 이런 걸 잔뜩 가르쳐주고 도와주더라고요.
그러고 난 다음 날, 아무 씨와의 특훈에서 테이는 미리 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딱 한 번, 훌륭하게 겟코의 물수리검을 피해 겟코에게 전광석화를 먹였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그 두 번째, 겨루역의 선로 청소
이런 일은 누가 뭐래도 테마리가 적임이죠. 오늘 테마리는 일일 역장 모자도 쓰고 팔에는 역무원을 나타내는 표시도 달고 입에 호루라기를 물고서 선로에 멋대로 올라오는 야생 포켓몬들을 쫓아냈어요. 저 멀리서 기차가 온다는 신호를 테비가 보내면 호루라기를 한 번 우렁차게 불고는 글러브 낀 주먹으로 포켓몬들을 다 쳐내버리는 거예요.
꽤 과격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생각보다 선로에 옹기종기 모여드는 포켓몬들은 익숙한 건지, 이런 난폭함이 취향인 건지 아야야. 아야야.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테마리랑 싸우는 대신 선로를 비켜서더라고요. 그 옆에서 테토도 함께 도와주었어요. 테토도 역장 모자를 굉장히 탐냈는데요. 테토의 섬세한 귀가 역장 모자를 쓰느라 눌리기엔 힘들었나 봐요. 테토는 간간이 선로에 돌이 끼이거나 한 걸 발견해 물로 청소해주기도 해서 역무원 분이 무척 고마워했어요.
그 동안 테루테루는 호기심 많은 테이가 선로 근처를 돌아다니다 위험하지 않도록 지켜봐주는 일을 했어요. 테리는 저랑 같이 한가롭게 구경을 했답니다.
“테리. 이 선로를 주욱 따라서 다음엔 다라마을이라고 해. 다라마을이면 벌써 4번째 체육관이 있고 챔피언 로드도 있대.”
‘디모넵은 챔피언 로드에 관심이 있나요?’
“으응. 만약 자격이 된다면. 앞으로도 체육관은 계속 들르게 될 거고 자연스럽게 배지가 차곡차곡 모인다면 한 번쯤 경험 삼아 좋지 않을까? 테리. 같이 챔피언 로드에 오르는 거야.”
테리에게 속닥속닥거리자 테리는 간지러운 듯 꼼지락거리다 웃었어요. 테리가 웃을 때마다 머리 위의 술이 한들한들 보기 좋게 흔들렸어요. 우리는 같이 기차를 타고 챔피언 로드까지 가는 상상을 해보았어요. 불안한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 세 번째, 하늘의 뿔 주변 청소
어제 박사님과 스페너 씨를 통해 무척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하늘의 뿔에 초음파 검사를 했더니 심장고동 같은 일정한 파음이 들린다는 거예요. 하늘의 뿔에 관해서는 겨루마을까지 오는 동안 나야 박사님과도, 와이랑도 이야기를 했었어요. 서리산맥의 동굴이 아주 먼 옛날에는 바닷속에 잠겼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에서부터 시작된 거였는데요. 하늘의 뿔 안에 포켓몬이 잠들어 있다거나, 하늘의 뿔부터 시작해 라이지방 전체가 포켓몬의 힘에 의해서 바닷속에서부터 끌어올려졌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었는데요. 이번에 나온 정보들을 통해서 아주 헛다리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게 됐어요.
명확히 드러난 건 아직 없고 제 가설이란 건 참 허술한 것들이었지만, 단서들을 모으고 조각을 이어붙이고 추측하고 추론해서 숨겨진 옛비밀들을 찾아가는 일이란 생각보다 더 두근거렸어요. 무엇보다 제 손으로 찾는다는 게 말이죠.
……엄마도 어디선가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 걸까요? 어디선가, 이곳 어딘가에서.
───이번에 부탁받은 일은 하늘의 뿔 주위의 포켓몬들을 치워달라는 거였어요. 하늘의 뿔의 파음이 들리고 나서부터 리그레나 메테노가 자꾸 모이게 되었다는데 이것도 신비한 일이에요. 노바 단원들이 초음파 검사를 한 뒤라는 건, 그 초음파를 통해 잠든 하늘의 뿔을 깨웠을지도 모른다는 거랑 추가로 초음파 음 덕분에 뿔 안의 파음이 바깥으로까지 널리 퍼져 그 음이 포켓몬들을 불러 모았다는 거겠죠.
잠든 포켓몬을 함부로 깨워도 되는 걸까요. 그런 걱정이 들었어요. 저도 하늘의 뿔의 비밀을 알고 싶고, 정말 여기 전설의 포켓몬이 있다면 만나보고 싶지만, 로망이지만요.
얼마나 거대한 포켓몬일지 모르는데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터전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리고 자꾸만 포켓몬들이 모여 드는 것도 심상치 않고. 이런 조사는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여러 분야의 박사님들이 모여야 할 테고요.
리그레와 메테노가 왜 뿔 주위에 몰려들었는지 흥미로웠어요. 둘 다 우주에서 온 포켓몬이라고 하잖아요. 혹시 이 세 개의 뿔은 라이지방에 떨어진 거대한 외계 포켓몬의 일부인 게 아닐까요?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는 증언도 있고. 그 당시의 인력이 라이지방을 바닷속에서 끌어올린 걸 수도 있고요. 정말 궁금한 일투성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