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 안은 공포를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다. 깊이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하는 쪽이 맞다. 마주할 만큼 강하지 못했다. 외면하고 피하고 잊은 척하고 도망치기 급급했다. 피할 수 있다면 영원히 피하고 싶었다.
그랬는데 왜 고스트 타입에 도전하려고 했냐고?
이대로 무시하기에는 포켓몬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캠프의 다른 고스트 타입 아이들에게까지 경기를 일으키고 피하는 자신이 아무리 봐도 못마땅했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속상해서 견딜 수 없었다. 혹시 자기 이런 모습이 캠프 사람들에게 나쁜 아이처럼 비쳐질까 두렵기도 했다.
거창하게 무슨무슨 증후군이란 이름을 붙일 수준은 아니다. 누구나 그 정도는 갖고 있지 않은가. 산타 할아버지 앞에서 거짓말 하지 않은 척을 하고 어른들에게 ‘뫄뫄는 참 착하고 똘똘해.’ 칭찬을 받으면 기뻐하고. 그 이전에 미움 받고 좋아하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캠프 사람들은 모두 상냥하고 친절하니까. 저보다 훨씬 큰 어른들 사이에서 착하다 잘한다 예쁨 받으며 그 위치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트라우마라는 건, 마음에 새겨진 흉이라는 건 생각보다도 심오하고 얄궂어서 어설픈 각오를 갖고는 죽도 밥도 되지 않았다. 지나가버리고 만 기회는 제가 안은 상처가 생각보다 컸다는 자각만을 안겨주었다. ‘정말 사랑해줄 수 있었나요?’ 몰랑의 말처럼 만약 고스트 타입이 태어났다면 태어난 포켓몬에게도 디모넵에게도 상처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14살은 상처를 극복하기에는 어린 나이임에 틀림없었다. 의연하게 내 아픔을 마주보고 덤덤히 안아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 당신이 해준 말처럼.
「시간이 약이다, 라는 소리는… 모든 것에 적용되는 법칙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대로일 수도 있죠…. 다만, ……무리하는 것보단… 전, 디모넵 씨가 거리를 두고, 천천히 보았으면 좋겠어요. 디모넵 씨가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요.」
조금 더 자랐다면 당신 말처럼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운명이란 짓궂어서, 혹은 어떤 대단한 운명을 기다리기엔 그리 섬세하지 못한 세계라서 시간을 두자고 하자마자 눈앞으로 공포가 닥쳐왔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덜컥 보이고 만 그것이 무서워서, 무서워하는 내가 한심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어떻게 이렇게 한심하고 볼품없어서, 약해서, 공포라는 의미에 먹혀버린 것처럼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이 너무 싫어지기만 해서,
「그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디모넵씨를 스스로… 벽으로 몰면 ……그건 디모넵 씨의 기분을,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이잖아요.」
내 기분을, 내 감정을 어떻게 소중히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시타라 씨.
“……어요.”
어리고 성난 마음은 누구를 향하는 대신 스스로를 할퀴고 상처 입히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내가, 너무 싫어요. 시타라 씨.”
나를 생각하고 나에게 이기적이면 좋겠다는 그 말도 어려웠다. 어렸다.
“나는, 왜 이러는지, 왜 괜찮지, 못한지. 어떻, 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그냥, 내가 바보 같고, 한심하고, ……너무, 싫어요.”
혜성시티 출신인 당신에게서 따뜻한 냄새가 나는 건 조금 신기했다. 서늘한 느낌을 풍기며 결벽적이도록 아름답게 조형되었던 혜성시티와 다르게 움켜쥔 니트 스웨터는 무척이나 따뜻하고 포근해서, 당신의 위로와 이해 앞에서 제 나약함과 한심함이 도드라져서, 부끄러워서, 괴로워서 그 품안을 하염없이 적시고 또 적시도록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