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짜안~ 다짜고짜 클라이맥스입니다. 같네요. 저도 엄청 당황스러워요. 대화는 한 마디도 안 했어요. 얼굴을 보자마자 도망쳤거든요. 요즘 대화하다 말고 도망치는 몹쓸 버릇이 든 것 같지 뭐예요.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하고 마음에 새겨두기라도 해야 할까요.
오늘도 변함없이 테리는 제 품안이었어요. 이렇게 테리를 껴안고 있으면 제 고동소리가 테리를 타고 두근, 두근하고 커다랗게 울리는 것 같아서 조금 더 진정이 되곤 해요. 무슨 효과라고 하던 것 같은데 말이죠. 초조하거나 진정이 안 되거나 이럴 때 저럴 때 이어폰 같은 걸 꽂아서 바깥 소리를 차단하거나 자기 맥박을 들으면 나아진다고요.
테리에게 코를 부비고 있으면 꼼지락거리며 테리의 짧은 발이 저를 토닥토닥 두드렸어요. 저는 그 익숙한 감촉에 천천히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어요.
아주 늦은 밤이었죠. 이런 시간에 외출을 하는 건 좋지 않겠지만 하늘의 뿔을 보러 가고 싶었어요. 가까이 다가가서 저도 하늘의 뿔의 파음이라는 걸 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어쩌면 어제 제출한 보고서가 나야 박사님에게 칭찬을 받아서 들뜬 탓도 있었을 거예요. 달이 뜨는 시간이면 운석 포켓몬들의 힘이 더 강해지니까 리그레나 메테노, 루나톤 같은 친구들이 또 모여 있을까봐 그 아이들을 뿔에서 조금 떼어놓으려는 생각도 있었어요. 아르바이트는 1번뿐이었지만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만약 우리가 만족할 만큼 포켓몬들을 줄여놓지 않으면 노바 단원이나 다른 트레이너들이 기절시켜 떨어트릴지도 모르니까요. 좋게 좋게 말로 해결할 수 있을 때 하면 좋잖아요.
밤 산책을 겸해서 아이들과 느긋하게 하늘의 뿔을 향해 걸어 올라갔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뿔까지 가는 길 야행포켓몬이 적더라고요. 이 정도라면 굳이 야생 포캣몬들을 돌려보낼 것 없겠다고 생각하며 캠프의 다른 분들이 힘내준 덕일까 테리와 눈을 마주칠 때에,
두-웅.
하고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어요. 아니, 멀지 않은 곳이었어요. 하늘의 뿔 가까이. 종소리의 힘으로 포켓몬들이 멀리 가고 있었어요. 그 소리는 제법 익숙한 것이었어요. 동탁군의 종. 풍요의 신이라고도 불리고 비구름을 부른다고도 하고, 맑은 날의 종소리는 깊고 잔잔하며 비 오는 날의 종소리는 즐거우며 화났을 때는 하늘이 흔들릴 듯 불길하다고 하죠.
그 종소리였어요. 이 근처에 동탁군이? 마고일까. 왜 그 때 엄마일 거란 생각은 못한 걸까요. 머릿속에서 일부러 지웠던 걸까요.
시야를 가리는 수풀을 헤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달을 등지고 누군가 서 있었어요. 그 사람의 한편에는 동탁군이, 다른 한편에는 화강돌이 있었어요. 아무렇게나 자른 짧은 머리카락은 저랑 똑같은 색이라고 해요. 목까지 오는 두꺼운 파카, 머리 위에는 고글, 안전하고 움직이기 편한 차림새를 하고 하늘의 뿔에 가까이 가 그 부스러기를 체취하고 있던 사람은 그래요. 달리아 씨였어요.
화강돌이 먼저 아는 척을 하더라고요. 그 다음엔 엄마가 돌아봤어요. 엄마는 저랑 눈이 마주치고 잠깐 찡그리더니 한 박자 늦게 제 이름을 불렀어요.
“디모넵 씨.”
그리고 저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어요. 바보 같이요. 왜 맨날 도망치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걸까요. 바보 같고 한심해. 요즘의 저는 정말로 한심하기만 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