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정말 아르바이트로 해도 되는 걸까요. 어딘지 할아버지랑 담소 나눠주고 용돈 받는 기분도 드는데. 분위기는 완전 그렇지만 내용은 게다가 교수님에게 강의 듣는 학생이라서 오히려 제가 팔름 씨에게 수강료를 드려야 하는 건 아닐까 무척이나 고민이 되었어요.
하지만 주시겠다고 하는데 거절할 리도 없고 대체로 이런 종류의 의뢰들은 트레이너 캠프에서 자리를 마련해서 팔름 씨를 초청해 캠프의 트레이너들에게 후학을 좀 나눠주십사 부탁드린 걸 테니까 저는 거리낌 없이 팔름 씨를 찾았답니다.
“안녕하세요, 팔름 씨-!”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요. 훈련은 아직 시작도 안 했고 관광은 지도도 펼쳐보지 않았지만 제게는 무엇보다 여기가 우선해야 할 장소였어요.
앗, 여기 들르기 전에 딱 한 곳 먼저 우선한 곳이 있다면 팔름 씨에게 인사드릴 과자를 준비한 정도일까요? 우리가 나가기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온화한 분위기의 연구소에 들어간 저는 자연스럽게 차를 준비하는 팔름 씨에게 다라마을에서 산 종단열차 만쥬(특* 코시앙)를 선물하고 예의바르게 인사부터 드렸어요.
“신오의 꽃향기마을에서 온 디모넵 라지엘이라고 해요. 저…… 이런 것들을 주로 읽고 공부했는데요.”
이 때까지 엄마가 써온 논문들을 비롯해서 신오에서 주로 읽을 수 있는 메이저한 논문들, 「땅의 기원으로 찾아보는 신화의 지방 상대성」, 「동굴 군락의 지질적 특성을 바탕으로 한 포켓몬 생태 연구 조사」, 「천변(天變)과 재이(災異)의 상관성에 대한 역사적 사례 연구 : 앱솔과 눈설왕을 중심으로」…… 등등의 목록을 꺼내놓는 것으로요.
상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제 패를 먼저 꺼내보여야죠!
“그래서 말인데요, 박사님. 제가 궁금한 건……”
・어째서 라이지방 사람들은 하늘의 뿔에 무관심한 편이었을까요? 이와 관련된 전설의 포켓몬의 사료가 적은 것도 의문이에요. 여기 오기 전까지는 혹시 하늘의 뿔이 에스퍼 포켓몬과 관련되어서 전설의 에스퍼 타입이 자신의 능력을 지방 전체로 증폭시켜 사람들이 무관심하도록 유도한 걸까 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박사님 말을 듣고 보니까 어쩌면 아직 라이지방에 전설의 포켓몬이 아예 방문한 적이 없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 번도 온 적이 없으니 흔적도 없고 사람들도 무관심하다고요.
・라이지방은 예전에 바닷속에 잠겨 있던 땅이 끌어올려진 걸지도 모른다고 지난번에 서리산맥의 동굴을 지나면서 흔적을 곱씹어 봤는데요. 이에 대해 박사님의 의견은 어떤가요. 만약 그렇다면 라이지방은 다른 지방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늦게 형성된 땅일 수도 있겠어요. 그러니까 다른 지방에서 이미 발생하고 진화한 포켓몬들이 라이지방에 자연스럽게 서식할 수도 있을 테고요. 후발주자로서.
・하늘의 뿔은 외부에서는 도저히 타격을 줄 수 없고 이 세상의 광물이 아닌 것 같다고 들었어요. 이번에 땅에 묻힌 부분도 깊게 뿌리내린 게 아니라 둥그런 형태라는 게 밝혀졌는데 박사님은 이 뿔의 기원이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정말 우주에서 떨어져 박힌 걸까요?
───헉. 저 지금 숨은 쉬고 말했나요? 왜 이렇게 현기증이 나지. 아무튼 우다닷 쏟아내버리고 나서 저는 초롱초롱하게 박사님의 답을 기대하게 되었어요.
그 두 번째, 화석 복원소 방문
팔름 씨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어느새 린과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졌어요. 오늘은 린과 함께 암나이트와 릴링을 복원하는 날이에요. 어쩐지 둘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복원이라니 꼭 형제 같은 기분이 드는 것 있죠.
그게 아니더라도 암나이트는 무척무척 린을 닮았고 릴링과 릴리요는 신기하게도 저를 닮아서, 서로 복원시킨 친구를 보면서 상대를 떠올려버릴 것만 같아요.
몬스터볼을 보면서도 떠올릴 것 같고요! 헤헤.
저번에 말이죠. 린이 먼저 멋진 제안을 해줬어요. 서로의 커스텀 볼을 자기 화석 포켓몬의 집으로 삼아주는 게 어떨까 하고요. 커스텀볼이라는 것도 무척 멋진 일이었는데 린의 커스텀볼을 제가 갖고 다니는 건 훨씬 더 설레고 두근거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야 린과는 앞으로도 쭉 함께 여행을 할 사이지만, 그래도요.
“아, 린. 이쪽이에요~”
연구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린에게 손을 흔들고 저희는 나란히 팔름 씨에게 인사했어요. 이렇게 서니까 꼭 형제처럼 보이기라도 했는지 주름진 팔름 씨의 눈이 한결 더 부드럽게 휘어졌어요. 팔름 씨는 저희에게 고대의 포켓몬을 현대에 다시 불러오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하듯 조곤조곤 설명해주며 복원소까지 가는 길을 일러주셨어요.
제가 복원할 암나이트는 아주 먼 옛날, 지금의 육지가 바다이던 시절에 그 바다 밑에서 살던 포켓몬이라고 해요. 한 때 이 행성은 90%가 넘도록 바다였던 적도 있다고 하죠? 그러니까 지금 제가 되살릴 이 아이는 고향을 잃어버린 거나 다름없을 거예요.
그런 아이에게 새 고향을 선물해주려고 하니 긴장도 되고 무척 떨리는 기분이에요. 늘 새로운 친구를 맞이할 때면 책임감을 느끼곤 하지만 이 아이는 아주 긴 시간을 건너서 저를 만나러 오는 거니까요. 린과 손을 맞잡고 화석 복원소에 들어가자 이미 기다리고 있던 연구원 분이 우리를 맞이해주셨는데요. 그 분에게 화석을 맡기기 전에 저는 화석에 뽀뽀를 하며 작게 속삭였어요.
“이번 체육관에서 내가 이기면 린이 용기를 내기로 한 게 있거든. 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네 도움도 무척 필요할 것 같아. 나를 도와주러 올래? 기다릴게.”
이름은 역시 얼굴을 봐야 생각이 날 것 같아서 아직이에요. 그럼, 어서 와. 내 새 친구!
그 세 번째, 지질 연구소 청소
새 친구 암나이트를 등에 업고 머리 위엔 테오를 얹고 언제나처럼 다른 친구들을 이끌고 저는 지질 연구소로 다시 한 번 발을 옮겼어요. 이건 아까 팔름 씨와 헤어지기 전에 약속한 일이에요. 연구소의 청소를 도와달라는 거요.
입구에서 봤을 때는 청소할 게 많지 않아 보였는데. 이번에도 9천원을 거저 먹는 걸까요?
───라고 생각한 5분 전의 저를 만날 수 있다면 저는 온 힘을 다해 아냐! 오지 마! 도망쳐! ……하고 외치고 싶을 거예요.
우리가 팔름 씨와 차를 마시던 그곳은 이를 테면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거죠. 과연 지질학자 팔름 씨. 겉으로 보기만 해선 알 수 없는 심연을 갖고 계시네요.
사실 연구소 청소만으로 보수가 18000원인 건 아닐까요?
“하하…. 좀 어지럽죠? 그래도 박사님께 들었어요. 디모넵 씨는 이쪽 방면으로 일반인은 아닌 것 같으니까 좀 더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럼 부탁드립니다!”
디모넵, 네 무덤을 네가 팠구나. 풀썩, 주저앉으려는 저를 테리가 냉정하게 붙잡아 세웠어요. 저희는 다같이 먼지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먼지털이, 발아래는 바퀴 달린 상자를 싣고 체크해야 할 목록표를 손에 든 채 차근차근 창고 정리에 들어갔어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저희가 부탁받은 건 언제 정리한 건지 모르고 빼곡하게 어지럽혀진 사료보관실의 청소와 정리였어요. 사료들을 각자 시대순, 혹은 쓰이는 연구순, 아니면 종류순으로 정리하면서 어떤 것들이 있는지 표에 기재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청소도 하고요.
뭘 하나 움직일 때마다 먼지가 콜록콜록 나는 바람에 테토가 비바라기를 쓰면 안 되냐고 무시무시한 소리를 했는데 정말 써버릴까 봐 말리느라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테토는 테리에게 발이 밟힌 채 쓰는 순간 쾌청으로 막을 테니 얌전히 청소하라고 혼이 났어요.
이렇게 우리는 밤을 새도록 연구소에서 나올 줄을 몰랐어요.
그 네 번째, 목새 체육관 엘리트 트레이너와 대결
결국 밤을 꼴딱 새울 뻔하다가 12시가 되기 전에 연구소에서 풀려났어요. 아동노동법에 저촉되기 전에 돌려보내준다고 연구원 분이 무척이나, 아주 무척이나 애석한 표정을 지으셨는데…….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 나왔어요.
내일은 저도 체육관 시합이 있는걸요. 이런 데서 컨디션을 망쳐버리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이대로 쉬러 가면 참 좋았겠지만 팔름 씨랑 대화를 나누는 게 급한 나머지 아직 훈련을 다 마치지 못했지 뭐예요.
그래서 체육관 문이 닫히기 전 아슬아슬한 시간에 막 돌아갈 준비를 하는 엘리트 트레이너 분께 상대를 부탁했어요. 마침 그 분은 코뿌리를 데리고 있어서요. 내일 팔름 씨의 거대 코뿌리를 상대하기 전에 코뿌리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테토. 부탁해. 내일은 지금보다 더 강한 상대일 거야. 그렇지만 너라면 할 수 있어!”
테토의 기를 세워주는 일도 중요했고요.
테마리가 위기 속에서 번뜩이는 재능이 있다면 테토는 자기과신으로 빛나는 타입이거든요. 테토에게 자꾸만 안 된다, 미끄러진다, 이런 말을 해버리면 정말 자신감을 잃고 풀이 죽어버린다는 걸 지난번 케이 씨와 올리브 씨와 모의전을 하면서 깨달았어요.
내일 시합에서 제기 믿을 건 테토뿐─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테리와 테이가 조금 더 안정적으로 믿을 만 해요. 테토는 불안해서─이니까요.
“너만 믿을게, 테토. 파이팅~!”
───그렇게 테토를 응원하는 디모넵을 보면서 테토가 자기과신으로 힘을 내는 건 트레이너가 불신하는 탓도 있지 않을까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