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새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포켓몬드를 다시 자유롭게 해주었어요. 사실 우리집 애들은 대부분 꺼내놓고 다녀도 문제없을 크기지만요. 제일 커다란 테논이 조금, 큰 만큼이나 위험해서 주의하는 정도일까요.
그래도 열차 안에서 조심조심 움직이는 거랑 바깥 공기를 쐬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또 다른 일이니까요. 한 줄로 쪼르르 서서 다 같이 기지개를 쭉 켜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이곳은 라이지방의 서쪽이랑은 공기가 조금 다르구나 하는 실감도 들었어요.
지도를 한 번 다시 펴보면 라이지방은 A에 가까운 모양이더라고요. 그 중 허리 부분을 험난한 서리산맥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어서 산맥의 북쪽과 남쪽의 기후가 다르고 다시 북쪽으로는 험난한 암벽의 틈틈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가운데를 뻥 뚫어 서쪽과 동쪽을 가르기도 하고요. 북쪽은 지반이 높고 험난해서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기 어렵겠구나 겨루와 다라를 거치면서 생각했어요.
그래도 정말 추웠어야 하는 곳은 열차 안에서 쾌적하게 보냈고 어느덧 라이지방을 2/3쯤 돌아서 목새마을이에요. 이걸로 7번째 마을이네요.
목새마을은 아직 눈이 남고 지반이 높았지만 그래도 차가운 북쪽 바다를 끼고 있을 때에 비해선 온화한 공기였어요. 고개를 쭉 빼고 보면 남쪽으로 풀밭도 보였고요. 오랜만에 풀밭을 본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니 저도 덩달아 즐거워지더라고요. 열차 안에서의 서먹하던 분위기도 조금 해소된 것 같아서 이대로 방에서 짐을 풀고 나면 몰랑 씨에게 조언을 들은 것처럼 아이들과 면대면 상담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어요.
테논이 또 쌩하니 먼저 날아가 버린 거예요. 꼭 이대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 마냥. 물론 저는 테논이 돌아올 것을 알았지만요. 그래도 두고 볼 수 없어서 테논을 따라 바깥으로 나가자 테논은, 제가 따라 나와주길 기다렸다는 것처럼 덥썩 저를 집어 들었어요.
네?
그 두 번째, 구구와 피죤과 피죤투의 이야기
구구이던 시절의 고향, 하니 평원의 풍경을 기억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너른 평원, 그 아래로 깎아내리던 절벽, 절벽 아래로 몰아치던 강렬한 바람. 위와 아래에서 각기 다른 바람이 오가던 그곳은 수많은 새들의 고향이었다.
서쪽에서부터 강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평원으로 난 잎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숙이고 몸을 부비며 까르르 웃었다. 바람이 풀을 지나는 소리가 꼭 노랫소리 같았다. 그 리듬에 맞춰 바람 위로 발자국을 남기길 좋아했다. 아직 작은 구구였다, 제 머리 위로 쏜살같은 속도로 비행하는 피죤투를 따라잡기에는 아득히 먼. 그래서 따라 나는 대신 바람 위에, 모래 위에 발 도장을 찍으며 춤을 추던.
모든 구구가 피죤투로 자라나지는 못한다. 어린 구구는 그래서 다만 우러러보았다.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리지 않고도 스스로 바람을 일으켜 높이, 더 높이 날아올라 아름답게 하늘을 장식하는 거대한 새를. 동경과 선망을 담아.
어느 날 트레이너의 손에 잡혔다. 조금 놀랐지만 바뀐 환경에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그 때만 해도 어린 트레이너 곁에는 조그만 체리버 하나와 저뿐이었다. 미덥지 못했다. 신뢰하지도 못했다. 하니 평원에서 무리지어 사는 포켓몬들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갓 마을을 떠나는 어린 트레이너들이 마찬가지로 어린 평원의 포켓몬을 잡았다가 책임지지 못하고 금세 평원으로 돌려보내는 것. 익숙했다. 한 번 인간의 손을 탔던 포켓몬이라도 평원의 포켓몬들은 금세 다시 무리로 받아주었다.
어린 구구는 기다렸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 트레이너가 자신을 어디까지 키워줄지.
어린 구구는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평원을 몇 바퀴 돌아도 다 채우지 못할 너른 세상을 걷고 날며 하염없이 기다리다 마침내,
긴 여정을 거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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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던 마을의 밤을 기억한다. 갓 여행을 출발하던 시절 감기에 걸려 호되게 고생했던 약한 트레이너는 피죤이 구구 시절 잊은 것처럼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배경 삼아 지붕 위로 그를 찾아 올라왔다. 그리고 함께 도시락을 나눠먹었다.
오직 저하고만 나눠먹었다. 그 때 들던 묘한 기분을 피죤은 잘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트레이너가 하나하나 들려주던 약속을 기억했다. 너를 빼놓지 않아. 너랑 또 이렇게 밥을 먹을 거야. 지붕에 올라와서 같이 별을 보자. 네가 조금 더 커지면 함께 하늘을 날아 줘. 같이 기대하고 기다리자. 맨날 보기만 하던 하늘에 닿는 순간을.
「약속이야, 테비.」
코끝이 빨갛게 되어서 웃어주었다. 부리를 매만지며 안아주었다. 날개에 포근히 감싸였다. 그 작은 시간들이 고향의 풍경보다도 더 그립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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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구구가 피죤투로 자라나지는 못한다. 어린 구구는 땅으로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며 날아가는 새를 동경했다. 또 선망했다. 언젠가 누구도 닿지 못한 저 위의 풍경에 닿길 바랐다.
그리고 어느새 누구도 닿지 못한 저 위의 풍경까지 함께가길 바라게 되었다.
───저런 비행 포켓몬 안전 수칙도 한 줄 숙지하지 못한 덜떨어진 벌레 포켓몬이 아니라 자신이 데려가길…… 아니, 데려갈 것이다.
눈부신 빛에 휘감겨 피죤은 온 힘을 다해 하늘을 갈랐다. 그 의지에 답하듯 날개가 자라고 다리가 자랐다. 지금이라면 더 빠르게, 더 힘 있게 날 자신이 있었다.
──모든 구구가 피죤투로 자라나지는 못하지만 너와 함께라면.
그는 쏜살같이 창공을 꿰뚫고 날아 자신의 트레이너를 되찾았다.
하늘도 트레이너도 감히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테비는 테리 바로 다음으로 처음 잡은 포켓몬이었는데 사실 이후에 놔줄까 고민을 많이 했었고(구구 키울 맘이 크게 없어서)
이름도 정말 단순하게 탭댄스 좋아하는 친구여서 테비라고 지었던 건데, 같이 다니면서 정들어서 새 이름과 진화 서사를 고민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