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몽가에게 제 트레이너의 첫 인상은 지나가는 많고 많은 열차 탑승객 중 한 사람, 두 번째 인상은 어딘지 미덥지 못한 트레이너, 그 다음 인상은……
“사랑받는 트레이너”
였다.
포켓몬을 사랑하고 포켓몬에게 사랑받는다. 한 줄로 표현하자면 간단한 일이지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닌 걸 에몽가는 긴 시간 열차에 머물면서 지켜보았다. 열차란, 역이란 그런 곳이었으니까. 누군가는 남겨지고 누군가는 떠나가고 만남도 이별도 열차표만큼이나 싸구려.
제게 같이 여행을 가겠냐고 제안한 어린 트레이너에게 냉큼 손을 올린 것도 큰 의미는 없었다. 이러다 지겨우면 떠나야지, 앙큼하게도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어쩌면 트레이너가 던진 몬스터볼을 5개나 못 쓰게 만든 건 제 이런 변덕이 몬스터볼에는 숨겨지지 않은 탓일지도 모른다. 여기 들어갔다간 쉽게 나오지 못할 것 같아.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들어갈까? 끝자락에 망설임이 있었다.
그래도 뭐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나씩, 하나씩 볼을 못 쓰게 될 때마다 ‘얘가 정말 나랑 가고 싶은 걸까.’ 불안해하는 트레이너의 얼굴이나 그 옆에서 ‘에베베, 오지 마라.’ 얄밉게 혀를 내미는 마릴리를 이기지 못하고 쏙 새 보금자리를 가져주었지.
처음 트레이너는 저를 머리에 올리고는 귀여움에 넘어가버렸어. 예정에 없었는데. 전기 타입이라면 이미 테논이…… 무어라 중얼중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곧 에몽가의 얼굴을 한 번 다시 보고 “그치만 어떻게 두고 가~~~!” 와락 껴안았다.
그치이, 내가 좀 귀엽지~?
사랑받는 건 아주 손쉬웠다. 나무 아래 입을 벌리고 있으면 자뭉열매가 떨어지는 것처럼 간단했다. 에몽가는 이미 제게 껌뻑 죽은 것 같은 어린 트레이너를 보며 앞으로 즐거운 생활이 되겠네~ 태평하게 생각했다.
그 예상은 아주 틀리지는 않아서 트레이너 캠프라는 곳에 도착하고 나니 수많은 트레이너들이 모두 저를 귀여워해주었다. 머리 위를 폴짝 날고 있으면 손을 뻗어왔고 그 손에 살며시 내려앉자 스낵이며 포핀이며 맛난 걸 잔뜩 주었다. 냠냠 받아먹으며 뀨~? 웃어주는 걸로 값은 충분했다.
완전 껌이네~ 에몽가는, 테오는 이곳이 제법 맘에 들었다. 어차피 떠돌이 에몽가다. 돌아갈 곳이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이곳은 맘에 드는 게 많았다. 맛있는 것도 좋아, 편안한 보금자리 좋아, 아껴주는 사람들이 좋아, 디모도 좋아. 내 트레이너는 정말 귀여운걸? 그리고 미덥지 못해. 내가 좀 더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된다구우~
돌이켜보면 이미 그 때부터 말려있던 걸지도 모른다.
「신오지방 꽃향기마을 출신 디모넵, 도전합니다!」
배틀에는 크게 흥미 없었다. 무섭다고 우는 소리 내는 척을 했지만 싸우는 건 사실 무섭지 않다. 이래 봬도 야생 포켓몬이었는걸. 치고 받고 싸우고 구르고 익숙하다. 익숙하니까 별로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을 뿐이었다. 아이이 참, 왜 무섭게 싸우고들 그래. 평화로운 게 얼마나 좋은데.
그런데 저를 데려온 트레이너는 아닌 모양이다. 꽃과 흙이 더 어울리는 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커다란 체육관에 제일 먼저 올라서서 커다란 포켓몬들을 상대로 싸우는 게 아닌가. 저를 제외한 포켓몬들은 그게 모두 익숙한 것 같았다. 어린 트레이너의 작전을 믿고 지시를 따라 멋진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거기까지만 해도 여전히 흥미 없는 채일 셈이었는데.
「잘했어, 테리. 네가 해낼 줄 알았어.」
왜일까. 그건 조금 부럽다고 느꼈다. 트레이너의 전적인 신뢰가 담긴 눈, 포켓몬을 향해 보내는 뜨거운 애정과 자부.
「넵이 경기 하는 거 멋있지 테오?」
경기는 하나도 멋지지 않아. 하지만 트레이너는 좀 멋있어. 있지, 나도 저기 서면…… 디모가 저렇게 쳐다봐줄까?
트레이너가 모의전에 나갈 세 마리를 고를 때 슥, 모르는 척 발 하나를 내민 건 그 때문이었다.
“테오? 배틀에 흥미가 생겼어?”
응 뭐어~…, 아까 나랑 같은 에몽가도 엄청 잘 싸우던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치미를 뚝 떼자 제 아무것도 모르는 트레이너는 마냥 기뻐하기만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트레이너와 호흡을 맞춰본 배틀은 아주 즐거워서, “테오. 나왔다 들어갔다 어지럽지 않아? 응? 재밌어? 아하하. 다행이다.” 트레이너를 향해 달려들면 트레이너가 받아서 안아주는 것이 기분 좋아서, 사랑받는단 건 이런 거구나. 몰랐던 걸 알게 해주었다.
그러고 나자 다음은 신기하게도 저 또한 트레이너를 아주, 몹시도 사랑해주고 싶어졌다.
오랜 열차 생활을 하며 에몽가가 인간의 사회에 대해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사랑해주긴 쉬워도 사랑받긴 어렵다는 것이다. 반대가 더 쉬울 것처럼 들릴까? 그렇지 않다. 주는 것은 쉽다. 간단하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바라는지 모르는 채 마구잡이로 줄 수도 있는 게 사랑이다. 하지만 준 사랑이 돌아오기란 쉽지 않다. 잘 받기 위해선 잘 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걸 제 트레이너는 잘 하는 모양이다. 미덥지 못한 트레이너의 몰랐던 장점이다. 디모는 포켓몬을 사랑해주고 포켓몬에게 사랑받는 트레이너. 또 내가 아주 사랑하는 트레이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