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 목표는 풀 타입 친구들을 잔뜩 만나는 거예요. 만나는 김에 불꽃 타입도 만나면 좋고요. 가보고 싶은 건 솔직히 어둑한 숲이었는데요……. 역시 제게 없는 불꽃 타입의 친구도 신경이 쓰여서요. 만약 오늘 운이 좋아서 불꽃 타입 친구를 만나게 되면 내일은 어둑한 숲길로 가도 좋고요.
그렇게 모두에게 설명을 하고 막 가방을 싸서 나가려는 참이었어요.
“쁘애앵~~!”
시러시러~~~~! 개울 갈래~~~! 늪 갈래~~~!
포켓몬의 나이는 어떻게 가늠해야 하는 걸까요. 인간처럼 그저 태어난 햇수만 갖고 헤아리기엔 포켓몬마다 성장 속도도 다르고, 진화함에 따라 정신적 성숙을 이루기도 하죠. 대표적으로 테이는 나무지기일 때도 의젓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란 면이 더 강했는데 나무킹이 되고부터는 훌쩍 저보다도 정신적 연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곤 해요.
그런가 하면……,
“그럼 테토 혼자 개울 갈래?”
뚝!
그거 아니야아……. 디모넵이랑 같이 갈래애…….
테토는 루리리 때 너무 일찍 마릴이 되어버린 걸까요. 좀 더 루리리로 어리광을 받아주었어야 하나. 아니에요. 저 루리리 때도 테토에게 얼마나 오냐오냐 해주며 키웠는데.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게 잘못이었나? 이제 와서 과거를 돌이켜봐야 아무 소용도 없지만요.
요점은 이 물토끼가 흙바닥을 뒹굴며 땡깡을 부린다는 거예요. 개울에 가서 놀고 싶다고요. 늪지대 첨벙첨벙 하고 싶다고요.
옆에서 테리가 이런 애는 버리고 가요, 디모넵. 하고 앞서 가려는 걸 간신히 말리고 저는 테토를 이영차 품에 안아들었어요. 평균 체중 28.5kg. 테토의 체중 3……kg.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리려는 걸 힘을 꽉 주고 테토를 어깨에 걸쳐 저는 걸음을 나섰어요.
“개울은 내일 낮에 가지 않을래? 지금은 어두워서 자칫하다가 늪에 빠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우린 불꽃 타입 친구도 없어서 불 켜기도 여의치 않고.”
제 말에 테루테루가 뒤에서 자기 주먹에 불을 붙였는데요. 아냐, 테루테루. 그거 아냐, 불 꺼. 아무튼 저는 힘겹게 테토를 달래서 겨우 햇볕 드는 숲길로 나설 수 있었어요.
그 두 번째, 햇볕 드는 숲길의 테갈라
숲길로 막 한 발 들어가는 순간 포켓리스트로부터 홍령 씨가 파이숭이를 만났단 말을 듣고 저는 그만 주르륵 미끄러지고 말았어요.
“으흑, ……흐흑, 파이숭이……. 우흐흑.”
신오 출신은 말이죠. 어쩔 수 없이 신오의 포켓몬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센트도 밀푀유도 프랴리크도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아…, 으흑. 파이숭이야. 나도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 있을까?
제가 걷지 못하고 바닥에 주르륵 앉아서 훌쩍이고 있으려니 테갈라가 제 목덜미를 붙잡고 푸드득 날아서 저를 질질 끌며 대신 앞서 가주기 시작했어요. 우리 테갈라. 약 1.6m의 평균보다 조금 큰 피죤투─아마도 테논을 먼저 봤기 때문에 테논보다 크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생각해요─. 저보다 작은 트레이너 한 명쯤 부리로 물어서 질질 끌고 가기 아주 가능하죠.
저는 무력하게 테갈라에게 매달려 질질 발을 옮겼어요. 제 머리 위에는 테오가 있었는데요. 조금 전에 테갈라에게 올라타려다 쫓겨난 테오예요.
피죤투로 진화한 뒤의 테갈라는 프라이드가 무척 높아진 것 같아요. 그야 테갈라는 무척이나 늠름하고 또 아름답고 커다란 날개를 가진 멋진 새지만, 전보다 조금 까다로워진 느낌이랄까요. 저에게는 아니고요. 저 외의 다른 애들에게요.
테갈라가 인정하고 받아주는 건 테리랑 테루테루 정도인 것 같아요. 예전부터 모두가 숙소에 머물 때 혼자 나무에서 지내던 아이였지만 그 땐 그냥 다른 새 포켓몬이나 바깥에서 어울리기 좋아하던 거라면 지금은 흠, ……그렇다고 다른 애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냥, 비행 타입은 나로 충분하다는 느낌? 덕분에 테오랑 테논을 조금 더 무시하는 것 같은데 테오가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다행이지 뭐예요. 이 이상 제 엔트리의 포켓몬끼리 싸우는 건 사양하고 싶으니까요.
아무튼 숲은 좋아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벌레 포켓몬은 좋아하지 않아요. 테논 너한테 하는 말 아니야. 왜냐면 벌레 타입 애들은 우리 꽃집의 해로운 장사 방해꾼인 경우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제게 피죤투인 테갈라도 있고 전기 타입의 테오도 있고 아주 든든한 거예요. 볼 안의 테논은 이번에도 모른 척 했어요. 어휴. 내 업이 크다.
그 세 번째, 겹치는 포지션을 경계하는 테마리
야생에 텐트를 치면 좋은 점은 포켓몬들을 꺼내놓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에요. 물론 저희집 애들은 마을에서도 충분히 데리고 돌아다닐 수 있는 크기지만─일단 포르티스 씨보다 큰 애가 한 명도 없거든요!─지난번 열차에서의 사건 이후로 테마리를 마을에 꺼내놓는 건 조금 걱정스럽게 되었거든요.
우리 테마리가 차마 사납지 않다고 할 수는 없고, 좀 사납고 금세 남 시비 걸 것처럼 생겼어도 실제로는 사람에게 선빵을 치지 않는 똑똑한 포켓몬이란 말이죠. 게다가 테마리에게는 특별히 트레이너가 있는 포켓몬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 예쁜 리본도 묶어주었는데, 그냥 얼굴만 보고 흠칫하는 사람이 많아서 제가 늘 옆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혼자 돌아다니지 않도록 했어요.
하지만 야생이라면 오히려 테마리가 여기저기 선빵 치고 다녀도 안심이고! 특히나 숲이라면 혼자 수련하고 돌아다니기에도 좋을 것 같아서 자유롭게 다니라고 해두었는데, 정작 테마리는 혼자 돌아다니는 대신 묘하게 제 옆을 기웃거리며 떠나지 않더라고요.
아마도 자기랑 같은 포지션인 격투 타입의 포켓몬이 새로 들어오는 걸 경계하는 모양이었어요. 귀엽기는.
그렇지만 이런 불안을 귀엽다고 내버려두어선 안 되는 거겠죠. 최근에 몰랑 씨에게 포켓몬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도록 안심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저는 숲길을 걷다가 마침 앉기 좋은 그루터기를 발견하고 테마리와 같이 나란히 앉았어요. 테마리는 제가 갑자기 분위기를 잡자 서먹한 얼굴로 ‘왜 그러냐. 뭐 잘못 먹었냐?’ 하고 쳐다봤는데요. 낯간지럽고 쑥스러워서 그러는 것 같더라고요.
예쁜 리본이 묶인 글러브를 토닥이면서 저는 테마리에게 조곤조곤 설명을 했어요.
“우리 엔트리엔 불타입이 없으니까 새 불꽃타입 친구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테마리, 너보다 더 강한 주먹을 가진 애는 없으니까. 너만큼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돌격대장이 또 어딨겠어. 예전에도 말했잖아. 늘 네 자리를 준비해주겠다고.”
테루테루가 뒤에서 자기 주먹을 힐끔, 테마리를 힐끔 보는 건 모른 척 했어요. 미안해, 테루테루. 사실 네가 더 강하지만 너는 힘을 숨긴 은둔고수 포지션을 해줘.
조곤조곤 소곤소곤 설명을 하면서 테마리에게 뽀뽀를 해주자 테마리는 펄쩍 뛰어오르며 ‘낯간지럽게 이게 뭐하는 짓이야!’ 하고 툴툴 화를 냈지만 그게 마음이 풀린 신호인 걸 설마 제가 모를까요. 역시 이 몸이 없으면 안 된다는 둥 걱정 말고 다 이 몸에게 맡기라는 둥 한주먹 감이라는 둥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기충전 된 테마리와 손을 잡고 저는 마저 숲길을 걸었어요. 역시 우리집 애는 최고로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