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마을을 떠나던 날, 저는 테이와 텟샤에게 신중하게 물어봤어요. 혹시 너희가 이곳이 걱정이 된다면 당분간 여기 남아서 이곳의 아이들을 지켜주겠느냐고요. 테이도 텟샤도 얌전한 아이들이라 트레이너와 멀리 떨어진다고 해서 야생 포켓몬처럼 난폭해질 일도 없고, 동산마을에 계신 다른 분들께 부탁해둘 수도 있으니까요.
그야 저도 두 아이와 떨어지는 게 섭섭하고 걱정이 되지요. 둘에게 살비마을의 꽃밭을 구경시켜주기로 했는걸요. 하지만 제 마음을 앞서기보다 테이의 마음이 보다 편해지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이대로 숲에서 등을 돌렸을 때 너희는 정말 괜찮은 걸까 하고 말이죠.
조심스럽게 두 손을 모으고 테이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자, 테이는 불룩하게 나온 주둥이를 제게 문지르며 낮게 그르렁 소리를 냈어요.
“괜찮겠어?”
고개를 끄덕이는 테이의 눈빛은 무척이나 온화했는데요. 그 빛을 말로 표현해보라면 아마도, ‘야생의 아이들은 강해. 괜찮아.’ 일까요. 이곳에는 이곳의 법칙이 있다고요. 자기가 이 이상 있어주지 않아도 괜찮다고요.
오히려 트레이너와 떨어진 채 이곳에 더 머물다가는 자기가 돌아갈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테이는 꼭 나무지기 시절처럼 제게 팔을 쭉 뻗어 안겨 왔어요. ‘나는 너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너의 포켓몬이야.’ 드물게 어리광을 부리는 기색에 저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와 테이를 토닥여주었어요.
“응, 고마워. 테이.”
야생의 포켓몬과 트레이너의 손에 길들여진 포켓몬 사이에는, 트레이너는 짐작할 수 없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모양이에요. 야생에는 야생의 법칙이, 테이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거겠죠.
“우리 꼭 이 사태를 해결하자. 그리고 나중에 같이 동산마을에 돌아와서 모두 잘 지내는지 보는 거야.”
그리고 우리는 함께 손을 잡고 살비마을 방면의 숲을 거닐었어요. 동산마을 쪽의 숲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드는 공기여서 어느 쪽이냐 하면 고향 마을이 떠올라 저는 좀 더 설레버렸답니다.
그 두 번째, 텟샤
테이에게는 답을 들었는데 말이죠. 텟샤로 말하자면 제 말에 조금 토라진 듯 새침한 빛을 하며 고개를 돌리고 말지 뭐예요. 제 말이 꼭 “너 여기 남을래?” 처럼 들렸나 봐요. 그렇게 나를 데려오고 싶어 하고 욕심내고 바라더니, 오자마자 보낼 생각이니. 하고 가늘고 얇은 두 팔을 팔짱 끼고 흥, 고개가 돌아가서 저는 텟샤에게 그게 아니라고 싹싹 빌고 설명해야 했어요.
“너는 숲의 왕이잖아─이 말을 할 때 뒤에 있는 테이 눈치를 쬐끔 봤는데요. 테이는 이런 걸로 신경 쓰지 않는 어른스러운 나무킹이어서 안심이었어요─. 숲의 어린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네가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 아야야.”
제 말에 텟샤가 부드러운 잎사귀 같은 꼬리로 손등을 찰싹하는 거 있죠. 아프게 때리진 않았지만요. 텟샤는 우아한 눈빛으로 저를 흘끔 내려다보면서, 물론 키는 저보다 작았지만요. 제가 쪼그려 있었거든요. 테이가 아까 한 말이랑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답을 내주었어요.
───야생이란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죠.
테이는 태어나 자라길 쭉 트레이너 곁이어서 알 수 없는 것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야생에서 홀로 오랜 시간을 들여 성장해 자란 텟샤에게 그 숲의 다툼은 단순히 걱정만 할 게 아니었나 봐요.
지금 동산마을 근처로 갑자기 포켓몬들이 몰리며 힘겨루기가 이루어지는 건 걱정할 게 맞대요. 하지만 그걸 걱정한다고 자기가 남아버리면 그 또한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일이 될 거라고요.
그곳은 앞으로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기 위해서 강한 포켓몬끼리 경쟁을 벌일 거라나 봐요. 이미 숲을 지키던 부란다 한 마리도 자리를 비웠고 누가 이 숲의 최강자가 되어 질서를 새로 세울 건지, 낯선 포켓몬과 기존 포켓몬 사이의 대격돌이 벌어지는 거죠.
이번 격돌의 원인은 인간이 맞을 거예요. 괜히 하늘의 뿔을 자극하고 이상한 에너지원을 퍼트린 탓에요. 하지만 그 동안에도 야생에서는 이런 일들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대요. 세대교체, 새로운 질서, 자연의 순환. 그러니까 동산마을에 있는 동안에 잠시 돕는 정도는 괜찮지만 그곳의 경쟁에 낄 게 아니라면 이 이상 있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거죠.
퍽 어른스러운 얼굴로 저를 가르치는 텟샤 선생님 앞에서 저는 무릎을 꿇고 응, 응,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였어요.
“그 말을 들으니까 걱정이 좀 덜어진 것 같아.”
제 안심한 얼굴에 텟샤는 그제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게 쇽 작은 손을 내밀었어요. 저는 텟샤의 손을 잡고 숲길 산책을 이었어요.
그 세 번째, 테갈라
한 편, 숲이 디비지든 말든 디모넵의 풀 타입들이 잠시 무슨 위기를 겪었든 말든 테갈라는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다. 디모넵의 포켓리스트로 힐끔 본 이끼 낀 산맥의 비행 타입의 출연이다. 테갈라는 디모넵의 엔트리에 비행 타입이 둘이 더 있었지만 그 둘을 특별히 비행 타입이라고 견제하지 않았다.
그야 그럴 것이, 한 녀석은 벌레고 한 녀석은 날다람쥐가 아닌가. 아주 찌끄만한. 자신 같이 크고 멋진 새에 비할 바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당하게 비행 타입이라고 사람들에게 도장 찍힌 녀석이 있다면? 신경 쓰이지 않을 리 없다.
숲길을 탐색하는 것에 정신없는 디모넵을 두고 테갈라는 홀로 서성서성 이끼 낀 산길로 날아갔다. 커다란 날개를 활짝 피고 흡사 자기 앞마당 마실을 나가는 어르신 모양새로 모양 빠지지 않게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이거 참, 드래곤이고 새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흥, 내가 온다고 다 숨어버리기라도 했나. 높다란 산길보다도 더 높이 하늘 드높이 날아 빙글빙글 돌던 테갈라는 혀를 차고는 다시 디모넵 곁으로 돌아왔다. 따, 딱히. 디모넵이 새롭게 날 수 있는 녀석을 데려와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디모넵을 태우고 나는 건 자신의 몫이고 싶었다. 이것이 테갈라의 자존심이자 긍지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메가진화인지 뭐시기인지 해야겠지만.
“응? 테갈라, 잘 다녀왔어?”
트레이너의 옆까지 내려앉은 테갈라는 속셈을 숨기고 시치미 뚝, 한 얼굴로 디모넵에게 부리를 부볐다. 구르륵 구륵,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애교를 보이자 디모넵 옆을 따라 걷던 테리는 저 새가 또 무슨 속셈인 걸까요. 하고 흰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시어머니의 시선쯤이야 이제 거뜬히 무시할 수 있게 된 테갈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