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락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았어요. 셔츠 끝이 구겨지고, 주름 잡힌 자락을 어깨부터 벗겨 내리던 손이 그 소리를 의식하듯 또 잠시간 멈추더라고요. 이러고 1, 2, 3…… 기다리면. 하아, 한숨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말해오겠죠.
“디디, 정말로 괜찮아요?”
이러다 하루가 꼬박 다 지나버리겠어요. 벌써 몇 번째인지. 덕분에 긴장이 풀린 건 다행이었지만요. 키티는 알까요? 당신의 이런 태도가 오히려 저를 더 물러나지 못하게 한다는 걸요.
살짝 고개를 들자 긴장한 얼굴이 보였어요. 긴장한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결연한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그런 척만 하고 눈동자 너머로는 여전히 번뇌가 오가고 망설임이 소용돌이 치고 있진 않은가요. 당신은 어느 때든 머뭇거리는 법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하긴요. 그 평소의 없는 머뭇거림과 쑥스러움이 이런 자리에 전부 쏟아져 있는 걸 알고 있었죠.
그래도 이렇게까지 심각한 건, 키티의 눈에 제가 여전히 14살의 그 아이인 채라 그런 걸까요?
이만큼 자란 저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걸까요?
“제가 아무리 괜찮아도 어차피, 키티는 언제든 멈출 거잖아요.”
몇 번을 물어보고 몇 번을 확인 받아도, 결국 언제든 멈출 수 있는 건 제가 아니라 당신이잖아요. 그걸 모를까요. 제 말에 또 다시 손을 멈추고 곤란한 듯 매끈한 눈썹을 찡그리는 얼굴에 슬 웃었어요. 잘생긴 얼굴이 제 한 마디에 동요하는 건 언제 봐도 짜릿하네요.
그야 저라고 겁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사실은 마음속 어딘가에 아직도 주저함이 있었고 또 조금은 겁이 나기도 했어요. 낯선 경험 앞에서 머뭇거리는 거야 누구나 있을 수 있잖아요. 하물며──, 그런데 저렇게 자꾸만 물어오면 오기가 나는 거예요.
시트 위에 얌전히 올려두었던 손을 들어 그 목에 감았어요. 확 끌어당기자 놀란 눈을 하고 당신은 몸에 힘을 주어 버티려 했죠. 쉬이, 그러지 말고요. 저랑 힘겨루기 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요.
언젠가 뎅겅 잘라버린 뒤로 좀처럼 기르지 않아 훤한 뒷머리를, 또 그 목가를 부드럽게 손끝으로 매만지며 힘 풀라는 듯 다독이고 당기자 못 이기는 척 당신이 제게로 가까워졌죠.
시원한 향이 거리만큼 훅 코끝까지 닿아왔어요. 향을 따라 고개를 들고 또렷이 눈을 마주 보았죠. 키티의 새파란 눈동자는요. 레이싱을 할 때나 배틀을 할 때면 불꽃의 온도는 붉은 것보다 푸른 것이 더 뜨겁다고 알리듯 활활 타오르곤 하는데요. 지금은 그런 빛이 온데간데없이 망연하게 둘 곳을 잃고 구르더라고요. 아이참, 이렇게 시선을 피하는 사람이 아닌데.
제 앞에서만 그러는 거예요? 그건 또 아닌가요. 아닌 게 아니라면 좋을 텐데. 히죽 웃으며 묶어 올린 머리카락이 살랑이도록 갸웃, 예쁜 척을 해보았어요. 이렇게 하면 약해지고 만다고 당신이 제게 가르쳐준 거예요.
“키티는 언제든 멈출 거지만, 멈출 수 있지만…… 저는 멈추란 말 안 할 거예요.”
도발도 한 번 해보고, 애교도 부려보고. 고리처럼 구부린 손가락이 머리끈을 훅 당겨 오래도록 참고 기른 머리카락도 부드럽게 내려 보았어요. 당신을 꾀어내려고 아주 열심이었죠.
어깨 아래까지 흘러내리는 이것이 꼭 상징 같진 않아요? 아주 다르죠. 과거의 제 모습과는. 사실은 정말로 당신이 저를 여전한 아이로 보는 게 아니라는 거 알고 있어요. 그랬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까아─,
살짝 시선을 드는 것만으로 콧잔등 끝이 닿았어요. 고갯짓을 하며 부드럽게 닿은 끝을 문질러 부비자 민망한 듯 뒤로 빼려는 당신의 뒷목을 붙잡고 눈을 감았답니다. 응, 여기. 이쯤이에요.
……─닿았죠?
쪽, 하고 부드러운 것이.
눈꺼풀을 올리자 보이는 표정은 저를 즐겁게 해주었어요. 이래서 멈추지 못하는가 봐요. 이럴 때의 당신이 사랑스러워서요. 당신의 이런 표정을 볼 때마다 없던 자신감이 솟아서요.
“저, 예쁘지 않아요?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힘내고 왔는데.”
기다리게만 할 거예요? 이렇게 뜸을 들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네? 케이. 그만 제게 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