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 꽃을 꺾었나
42 미지근한 온기
: 타카하타 이노리
曖昧な温もり
“이렇게 놀아주는 친구는 나밖에 없지?”
“한가한 친구가 이노리 군밖에 없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쳇.”
가볍게 땅을 발로 차며 그가 툴툴거린다. 웃음을 삼킨 세이라는 그의 팔을 당겨 입구를 넘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놀이공원이었다. 놀이동산이라고도 하고 유원지라고도 하는 바로 거기다. ~랜드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리는데 이번에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랜드 중에서도 초대형 메이저, 바로 그 『디즈니랜드』다.
덧붙여 두 사람 다 와본 경험은 있다. 이번에는 즉, 완전 생초짜! 는 아니란 뜻이다.
“디즈니랜드는 해마다 시즌마다 테마가 바뀐다고 해요. 그래서 아예 1년 이용권을 끊는 사람도 있다는 거 있죠. 지난번에 본 거랑 다를 거예요. 후후, 기대되지 않나요?”
“놀이공원을 1년 매일 다니는 거야? 대단하네.”
나는 두 번 가면 질릴 것 같은데. 건들거리며 그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래놓고 이미 두 번은 넘었을 자리에 동행해준 걸 세이라는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울려주지 않는 법이 없는 친구다.
“매일매일은 아니고요. 워낙 입장료가 비싸니 시즌마다 오더라도 아깝지 않은 게 아닐까요? 그리고 예쁜 건 또 봐도 좋잖아요.”
“그래, 그래. 그럼 세이라가 안내해줘.”
“네~에. 걱정 마세요.”
오늘의 세이라는 훌륭한 안내원이랍니다? 이런 데 오면 꼭 사줘야 한다고 입구를 지나자마자 세이라는 기념품 가게부터 그를 이끌었다. 하나씩 머리띠를 고르고 반짝이는 야광봉도 쥐었다. 휴대폰 카메라의 성능을 알면서 폴라로이드 필름도 사보았다. 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지난 생일 선물 받은 것이다.
세이라는 놀이기구를 타는 취미는 없었다.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 같은 건 보기만 해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탔다간 아마 속이 뒤집어져 그대로 기절할 것이다. 귀신의 집은 무서워서 무리였다. 전부 분장이란 것쯤 알았지만 그래도 깜짝 놀라고 비명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관람차처럼 평화로운 건 어떨까? 애석하게도 그녀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아주 무리는 아니지만 관람차를 타는 내내 눈을 감은 채여선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 놀이공원은 왜 온 거야.”
기념품 가게를 나와 커다란 아치형의 전시물을 지나며 이노리는 어이없단 눈을 숨기지 않았다. 이 아치를 지나면 곧장 디즈니랜드의 거대한 중앙입구가 나온다. 걷는 사이 캐럴이 커져갔다. 건물이며 벽마다 꼬마전구를 잔뜩 휘감고 하얀 눈꽃 모형과 공을 주렁주렁 달고, 곳곳에 눈 스프레이를 뿌리는 랜드는 이미 크리스마스 절정의 산타 왕국이었다.
눈이 깔린 것 같은 하얀 길을 걸으며 세이라는 배시시 웃었다. 카메라의 초점을 맞춰 그를 렌즈에 담는다.
“그야 구경하러 오는 거죠. 자, 이노리 군. 치-즈.”
“치-즈.”
하라는 대로 순순히 포즈를 취하는 그를 찰칵 찍자 강아지 머리띠를 쓰고 히- 웃는 청년이 금세 인화되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이었지. 요아케에게 사진 메시지가 날아왔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전달하러 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루돌프 머리띠와 선물 주머니가 있었다. 선물을 주러 오는 손님에게는 선물을 되돌려줘야겠지. 오늘 여기서 요아케의 선물도 고를 것이다.
그러면 산타 모자가 낫지 않았을까 했지만 모자보다 이쪽이 돋보인다는 선택이었다. 정작 스스로는 녹색 토끼 귀가 부끄러운 편이었지만. 게다가 이거, 귀도 쫑긋 선 탓에 너무 높진 않은가. 구부리는 게 낫지 않을까 끝을 만지작거리자 이노리가 그 손을 톡 쳤다.
“그래봤자 내 키보다 작은걸~”
“우웃…, 조용히 해요, 이노리 군.”
그래서 어디부터 가? 그의 질문에 세이라는 다시 한 번 지도를 펼쳤다. 놀이기구는 여기랑 여기랑 여기랑…… 이렇게 있어요. 이노리 군 타고 싶은 거 있나요?
“여기서 제일 인기 있는 거?”
“그러면, 이 롤러코스터겠네요. 줄이 아주 기니까 미리 예약표를 뽑아두는 게 좋겠어요.”
“세이라도 타?”
“저는 못 탄답니다.”
그럼 대체 놀이공원에 왜 오는 거야. 한 번 더 그 말을 하려다 이노리는 대신 에휴, 한숨을 쉬었다. 그 다음 말은 세이라가 안 타면 나도 됐어. 그거였다. 그렇게 말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얼 하느냐보다 누구와 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상대를 소중히 여겨주는 것도 맞고 동시에 뭘 하거나 혹은 뭘 하지 않거나 개의치 않을 만큼 의욕이 없기도 하다.
“저는 신경 안 써주셔도 돼요. 이노리 군이 타는 걸 구경해도 좋은데.”
“너랑 놀러온 거잖아. 혼자 타봤자 재미없어.”
“우.”
미지근한 온도가 손에 잡힌다.
혼자 타기 싫다는 그를 설득할 수도 없어, 오늘은 세이라가 져주기로 하였다. 오늘만 특별히다. 멋대로 져줬다는 걸 알면 그는 “에에, 이게 뭐 네가 져준 거야. 맨날 내가 져주는 거잖아.” 라거나 혹은 “그래그래, 맨날 이기려고만 들지 말고 이렇게 져줘도 좋잖아.” 라거나. 누가 이기녜 지녜 하면서 또 말싸움을 즐기겠지. 티격태격 입씨름이 즐거운 건 피차일반이었다.
손 안의 온도를 가늠한다. 이제와 남의 온도를 왈가왈부할까. 사실 세이라는 한 번도 참견해본 적이 없었다. 도와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나설 일이 아니었던 것도 같다. 자기방어적 태도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녀는 타인에게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도 따뜻한 것을 동경했다.
“예전에는 와서 뭐 했어요, 이노리 군?”
“음~…… 뭐, 지금이랑 비슷했나. 놀이기구 타고, 츄러스 먹고, 구경하고, 놀이기구 타고.”
“기억에 남는 건 있어요?”
“있었나~”
기억을 더듬듯 그가 고개를 든다. 부쩍 또렷해진 눈이 조명 아래 알록달록하게 빛났다. 벌꿀빛 동공 위로 다른 색이 겹치고 스치는 것을 보며 세이라는 카메라를 한 번 더 들었다. 오늘은 역시 사진을 잔뜩 찍기로 해요. 기억이 안 날 땐 증거만이 남는 법이다.
해가 제법 지났다. 처음, 할머니 손을 붙잡고 앨리스 학원에 입학해 12년이란 긴 시간을 보내고 또 졸업해, 평범하게 남들처럼 진학을 하고 비앨리스와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그 사이 여러 꿈을 가졌다가 물거품처럼 흩어 보내기도 하고.
지금은 그러니까── 딱 이 정도 온기만 남았다.
디즈니랜드의 동편에는 베니스를 모방해 꾸며놓은 뱃놀이 공간이 있었다. 일본은 참 넓어요. 자국 안의 외국에 감탄하며 세이라는 그와 함께 작은 배에 올랐다. 예전에요, 외국에 나가고 싶었어요. 딱히 정해둔 것은 아니었는데 그냥 여기가 아닌 아주 먼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앨리스는 외국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재잘거림에 뱃사공이 잠시 두 사람을 보았다. 다행히 그는 프로였다. 시선이 금세 멀어진다.
“아주 못 나가는 건 아니지 않나.”
“응. 아주 못 나가진 않아요. 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또 번거롭죠.”
그래서 편한 길을 선택하려 했어요. 물살 위로 손가락을 얹었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온도에 손끝이 금세 붉어진다. 앨리스를 쓰지 않은지도 오래 되었다. 한 때는 호흡과 함께 사용했었는데, 내 몸의 일부처럼, 내 의지의 일부처럼 쓰던 그것과 어느새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노리 군은 앨리스, 이제 안 쓰나요?”
“나는……”
배에서의 기념사진은 뱃사공이 찍어주었다. 여기가 사진 스폿이에요. 말하며 다리를 지나기 직전, 셔터를 누르는 그에게서 노련미가 엿보였다. 외국에 나가지 못해도 갈 곳이 무척 많아요. 있죠, 이노리 군. 다음엔 좀 더 멀리 나가보지 않을래요? 목소리는 미약하게 들떠 있었다.
좀 더 멀리 어디? 배에서 내리고 나니 랜드의 반을 걷지도 않고 돌아버린 셈이 됐다. 음, 겨울이니까 반대로 따뜻한 곳이라거나. 오키나와 같은 데 있잖아요. 마침 선착장 근처에 츄러스와 커피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오리지널, 초코, 시나몬, 크리스마스 한정이라며 데코레이션이 휘황찬란한 녀석까지. 츄러스는 한 입씩 나눠 먹고 다음은 가까운 회전목마 코너로 향하였다. 예전에, 말에 탔었던가. 그렇다면 이번엔 마차도 좋겠다. 혹은 귀여운 곰 위라거나.
그를 향해 한 번 더 카메라를 들자 찍히는 대신 이노리가 손을 내밀었다. 이번엔 내가 찍어줄게. 건네주려던 손이 잠시 멈춘다. 막상 찍히려니 조금 민망한 기분이었다. 언제나 세이라는, 제가 하는 쪽만 익숙했다.
“얼른~”
“우……. 여기요.”
카메라가 손에 들어오자 그는 기세등등해졌다. 좀 더 웃어보라는 둥 여길 잘 보라는 둥 요구가 많았다. 세이라는 어색한 표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못생기게 나오면 어떡해. 그거야 사진사 잘못이죠. 그럼 잘 찍힐 때까지 계속 타고 있게 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구 위에서 두 사람은 어린애처럼 입씨름을 벌였다. 결국 세이라가 웃었다. 그는 만족스런 타이밍을 얻어냈다.
근래에 와서 든 생각은, 꼭 따뜻한 것을 동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포기와는 조금 달랐다. 과거의 세이라는 가질 수 없는 것을 욕심냈고, 갖지 못해서 포기했다. 그것이 제법 무력감을 안겨주었다. 포기하고 체념하고 억지로 납득하고 수긍하고, 단념이 반복될수록 속이 곪아들었다.
그건 굉장히 건강하지 못한 일이었다.
“다음은…… 아, 여기 스타워즈 테마의 우주관이 있대요. 이노리 군. 와아, 멋질 것 같아요.”
“어라. 그거 지난번에 본 영화?”
“지난번에 본 영화는 다른 거였구요. 왜 있잖아요, 광선검 나오는.”
“~~아아, 그거구나.”
정말이지. 그 미지근한 태도에 불만을 표하듯 볼에 바람을 넣으면서도 세이라는 그를 당겨 다음 목적지로 향하였다. 기실 그녀도 SF나 우주에 큰 관심은 없었다. 그래도 본다는 것에 의의가 있지 않을까? 보고 나면 무언가, 달라질지도 모르니까.
우주 테마의 어트랙션 공간은 상당히 넓었다. 놀이기구는 커다란 건물 안에 있었는데, 탑승구까지 가는 동안도 대단한 여정을 하는 것 같았다. 무중력에 대한 안내라든지 테마 설명이라든지, 작품의 역사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놀이기구가 제법 격렬할 거란 안내도 있었다.
“세이라, 괜찮겠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제자리에서 움직이는 거라는 걸요. 4D라는 것도 조금, 신기하고.”
“원래 이런 거 좋아했었나.”
한 번에 40명이나 타는 놀이기구였다. 거의 한 반이 들어갔다. 4D 안경을 쓰고 영화관 같은 좌석에 앉자 앞에 화면이 우주공간으로 바뀌었다.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란 세이라는 옆자리의 옷자락을 쥐었다. 의자의 덜컹거림이 꽤 컸다. 세이라는 슬금슬금 옷자락 대신 그의 손을 꼭 쥐었다. 그러게 내가 괜찮냐고 했잖아. 그치만요….
“좋아하던 건 아니었는데요. 해보고 싶어졌어요.”
한 번 더 의자가 크게 흔들렸다. 겨우 이 작은 공간에서 흔들리거나 기울거나 할 뿐인데도, 요즘의 기술력이란 얼마나 발달한 건지. 정말 우주선을 타고 행성으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우주에서 외계행성으로, 행성에서 하강한 뒤에는 하늘에서 바다로, 절벽으로, 깎아내려가는 바위산을 스치고 숲을 헤치며 속력을 점점 높여갔다. 안경 너머로 펼쳐지는 생생한 낙하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비명이 나올 뻔했다. 겨우 삼키고 세이라는 대신 기도라도 하듯이 이노리의 손을 쥐고 달달 떨었다. 목소리도 같이 떨렸다. 이런 때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이런 때니까 하지.
“이, 이것저것. 해보고, 즐겨보고, ……하려고. 잔소리 해주는 친구가, 있어서요.”
말처럼 경험할 용기가 생긴 것은 좋았지만 이번 시도는 완전 실패였던 것 같다. 세이라는 탑승 시간이 끝나도록 눈을 뜨지 못했다. 의자에서 일어날 땐 조금 휘청거리기도 했다. 머리 위로 못말리겠단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비틀비틀, 휘청휘청. 12월의 태양은 빨리도 저문다. 캄캄하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보며 구슬 아이스크림과 소시지와 감자튀김, 허브티를 두고 두 사람은 앉았다. 이런 곳에서 사먹는 음식은 바깥의 2배는 했지만 이럴 땐 얌전히 그 향취를 즐겨야 한다. 이곳의 경치 같은 것도 음식 가격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소시지는 한 입 크기로 잘라 머스터드소스를 뿌리고 감자튀김은 케첩을 찍었다. 다행히 여긴 빼앗아갈 갈매기가 없다.
“아까 하던 건 무슨 얘기야?”
“음.”
지나가는 이야기로 하려고 했는데 물어볼 줄은 몰랐다. 고개를 갸웃하는 그의 입에 감자튀김을 넣어주며 세이라는 말꼬리를 늘렸다. 그렇지만 역시, 풀어서 설명하자면 한없이 부끄럽다.
“그냥, 그런 이야기였어요.”
“그냥 그런 게 뭔데~”
“그냥 그런 거요~”
뭐길래 그래. 투덜거리는 얼굴에 조금 심오한 이야기인데요? 살짝 허세를 부려본다. 허세지만 또 거짓은 아니었다. 거짓말이 능숙한 그녀치고는 드물게도 진심이었다. 이노리는 그 말에 흥미를 잃은 건지 제 딴에의 배려였는지 더 묻지 않았다.
한 숨 돌리고 두 사람은 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저녁 퍼레이드를 보고 갈 예정이었으니 남은 시간도 열심히 채워야 했다.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던 세이라는 아직 조금 괜찮은 것 같았다. 그간 이노리를 따라 새벽 운동을 한 보람이 있다. 그의 눈엔 쥐꼬리만큼 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반시계방향으로 테마파크 완주를 마치면 다시 최초의 광장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퍼레이드까진 시간이 남아 있었다. 역시 놀이기구를 안 타서 그런가. 친구들에게 줄 기념품은 놀이공원을 나가기 직전에 사기로 했으니 아직은 안 된다. 마침 두 사람의 눈에 게임센터가 보였다.
폴라로이드 필름이 다 떨어진지 오래였다.
“스티커 사진 찍을까요?”
“응, 좋아.”
한 때는 가라앉고 싶었다. 포기와 체념과 납득과 억지수긍을 껴안은 채 바닥으로 또 바닥으로. 학원을 졸업하고 모두와 연락을 끊고 작은 섬 하나를 사서 혼자 생활하기. 꽁꽁 틀어박힌 작은 낙원이 제 평화와 행복일 거라 믿었다. 그러려고 했는데──
“어, 어라. 이거 어떻게 하는 거죠?”
“아, 찍힌다. 찍혀. 세이라, 앞. 앞.”
“앞이요? 어디, 꺅, 저 눈 감은 거 같아요.”
“봐. 다음 마지막이래. 봐, 하나, 둘,”
마지막 셔터음과 함께 플래시가 팟 터졌다. 움찔하고 찡그리다 웃음이 뒤따라 터졌다. 이게 뭐람. 서툴고 엉망진창이다. 처음은 늘 그랬다. 언제나. 처음부터 무언가를 능숙히 할 만큼 세이라는 요령이 좋지 못했다. 느리고 굼뜨고, 머리 위에 쓴 건 토끼귀인데 하는 건 꼭 거북이다.
이런 저인데, 그래도 기다려주는 친구가 있었다. 고집 부리고 입을 다물면 말할 때까지 보고 있고, 찾지 말라고 가버린다고 하면 그래도 연락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퉁명스러운 걱정도 세심하지 못한 배려도 동경하던 따뜻함과는 달랐으나.
이 정도 미지근함이 좋은 건지도 모른다. 처음을 실패하고 두 번째도 여전히 서툴고 세 번째까지 요령 없고 굼뜨지만 억지로 맞춰주지 않아도 조금 식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그의 온도가,
알맞게 좋았다.
“이제 퍼레이드 보러 가요, 이노리 군~”
“이게 마지막이야?”
“네에. 퍼레이드가 끝나면 돌아갈까요. 사실은요, 저…… 벌써 한계 같아요…….”
“……세이라치곤 오래 버텼지. 그래도 집에 도착할 때까지 쓰러지진 마.”
쓰러질 것 같으면 기사님처럼 에스코트 해주나요? 장난스런 물음에 물론이지~ 그 때 봤잖아. 천연덕스럽게 답이 돌아온다. 그럼 쓰러져도 걱정 없겠네요. 마음의 짐을 덜어두고 두 사람은 퍼레이드의 명당자리를 찾아 인파를 헤쳤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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