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리스 라이프니츠
──그야, 카리스 라이프니츠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눈을 뜬 자신의 모습이 이전과 다르다면 느낄 지극히 인간적인 당혹감이었다. 유명한 고전이면서 동시에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글의 일부를 발췌해 말해보자면,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지난 밤사이에 한 마리 작고 귀여운 생쥐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가 되리라.
귀엽단 말에는 부정을 표할지도 모르겠으나.
커다랗고 넓은 귀, 제 의지를 벗어나 움직이는 꼬리, 조막만한 손발에 손가락과 발가락은 다행히도 다섯 개씩 달려 있다. 두 발로 서서 걷기에는 무리가 없었으며 어쩌면 귀와 꼬리가 달린 것 외엔 크게 변한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 줌 크기밖에 되지 않는 이 모습을 온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세상 모든 것이 그에게는 지독하게도 컸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건 이 공간이었다. 부글부글 들려오는 냄비의 끓는 소리, 코가 마비되도록 지독하게 짙은 라벤더 향, 벽에는 검은색과 자색의 벨벳 커튼이 두껍게 쳐져 있어 바깥 풍경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촛불로 내부를 밝히는 실내에는 으슬으슬하게 눈을 빛내는 호박이나 거꾸로 매달려 말린 라벤더 다발과 각종 허브, 테이블 위에 쌓인 낡은 책들과 철망, 그 한 가운데 타고 있는 자색의 초. 외에는 그러니까…… 한 사람이 더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것이 아니라면 반대로 그는 여전히 잠들어 있으며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꿈속임에 틀림없으리라. 짙은 라벤더 향과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경.”
안녕해도 되나. 머쓱하게 뺨을 긁적이면서 카리스는 유일하게 이 상황을 물어볼 수 있는 상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거 왜 이렇게 됐는지 알아……?”
이렇게 비현실적인 꿈을 꾼 적은 없는데.
비현실적으로 따지자면 이 공간이나 그 자신만큼 그를 재미난 듯 내려다보는 상대 또한 기묘했다. 우선은 지나치게 컸다. 아니, 그가 작은 탓이다. 또 내려다보는 시선이 낯설었다. 나른한 미소를 입에 걸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흘러내리게 두었으며 두 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의 한쪽에는 흥미, 한쪽에는 재미만이 담겨 그를 걱정하는 기색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혹은 겉모습이란 그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 덕일까. 카리스 또한 이 상황이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닌 것도 같았다. 일단 눈앞에 그녀가 있지 않은가.
비에모드 데 라반둘라. 영예로운 신성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이며 그와는 막역한 시간을 쌓아 올린 벗이다. 비록 언제나 은은하게 풍겨오던 라벤더 향이 지금은 독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짙었고, 단정하게 묶던 머리카락은 자유분방하게 흘러내리며 주로 흰 옷만을 걸치던 그녀치곤 드물게도 새까만 색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으나, 변함없이 그녀로 보였다.
한결같이 올곧은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질문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가 모로 기운다. 대답 대신 그를 손바닥에 올리는 손길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머뭇거림 같은 건 없었다. 작은 줄로만 알았던 그녀의 손 위에 올라서서야 카리스는 정말로 작아진 몸을 실감하는 것도 같았다. 그녀는 하릴없이 느긋하기만 했다. 끝을 까맣게 칠한 손가락이 콕콕 찌르거나 꾹 누르거나 장난을 쳐오면 카리스는 속수무책으로 휩쓸렸다.
찔러오는 손가락을 감싸 쥐고 재차 질문한다.
“어…… 즐기고 있어, 비이?”
다행히 이번엔 답이 돌아왔다.
“네에. 귀엽고 재밌네요, 어떤가요. 알고 보니 부단장이 무시무시한 마녀였다는 전개는.”
“그렇게 무시무시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어머, 제법 태연하네요. 이대로 영영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나요?”
“그건 좀 곤란할까…….”
이 상태로는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그는 돌아가서 할 일이 있었다. 또한 돌아가리란 확신도 있었다. 지금의 이것은 일종의 자각몽. 결국 꿈에서 깨는 순간이 올 것이다. 현실주의자에 속하는 카리스는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런 면도 보고, 조금 특이하고 재밌는 꿈 정도가 될까?
그의 생각을 읽어내듯 스스로를 마녀라 소개한 손가락이 우아하게 그를 집었다. 어라? 하고 버둥거리던 그가 다시 발 디딘 곳은 호박이 아니라 푹신한 방석 위였다. 방석, 치즈와 사과, 물, 그리고── 철창. 격자 위로 그늘이 드리운다. 바로 곁에서 초의 온기가 따스했다.
두 색의 눈을 길게 휘어 웃는다. 같은 얼굴을 하고 분위기는 지독하게도 달랐다. 무료한 것도 같았고 권태로워도 보였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혹은 불안을 감추듯 요요했다. 공간은 이토록 넓은데 그 전부가 텅 빈 듯 공허했다. 그 공허한 틈으로 아주 조금, 내심이 흘러나왔다.
“영영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면요.”
“여기서 풀어주면 또 위험한 곳으로 갈 거잖아요. 막지 못할 거잖아요.”
“당신이 하고 싶은 걸 방해해버리려는 저는 정말 못된 마녀네요.”
훅 취해버릴 듯 라벤더 향이 짙었다. 코가 마비될 것만 같은 달고 녹진한 향이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마녀가 두 손을 모았다.
“절 두고 갈 건가요?”
“……걱정하는 거야?”
“당신은 또 그런 말을 해.”
제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닌데도요. 이런 순간에도 여전히 상냥하기만 한 목소리에 기어코 표정이 허물어진다. 무너진 표정을 감추듯 고개를 숙이고 결국 그를 밀었다. 때마침 촛농이 녹아내리고 마지막 심지가 꺼졌다. 빛을 잃은 공간, 천천히 막이 내려간다.
이것은 꿈일까. 꿈이라면 누구의 꿈일까.
악몽이라면, 누가 꾸는 악몽일까.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을까.
답은 듣지 못한 채 꿈과 이별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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