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미링 친밀도 로그
사건이 끝난 뒤 모두들 그저 제 한 몸 간수하기 벅차 복잡한 감정과 피로가 뒤섞여 숙소로 들어왔다. 이런 날까지 누군가와 부대껴 공간을 나눌 여유도 없었기 때문일까. 다들 긴 말 하지 않고 각자의 방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해변가에서 바비큐를 구워 먹고 불꽃놀이를 즐기며 떠들썩했더라는 게 신기루만 같을 정도다.
숙소 로비는 적막이 짙었다. 가끔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지만 모두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타인의 안에 잠든 감정도, 제 안에 들끓는 감정도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어서. 그런 점이 캠프 사람들의 상냥함을 증명하는 것도 같았지만. 느슨한 미소가 그려졌다. 로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냐미링. 오늘은 당신에게 조금 무리한 부탁을 할 것 같아요.”
몽얌나. 꿈을 옮기고 비추는 포켓몬. 오늘 당신이 아 자리의 꿈들을 먹어치웠다간 몇날며칠을 검은 연기만 뿜어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검은 연기가 전부 가실 때까지 제가 도와줄게요. 같이 연기를 빼러 멀리 바람을 쐬고 와도 좋고, 하루 온종일 잠만 자도 좋고. 당신이 곁에 있을 때는 언제나 좋은 꿈만 꾸는 걸 알잖아요.”
많이 의지하는 거 알아요. 그러니 오늘은 저를 도와줄래요?
트레이너의 뜻은 몽얌나에게 똑똑히 전달되었다. 포켓몬은 기꺼이 부탁을 받아들였다. 숙소의 바닥으로 느릿하게 연기가 깔렸다. 반짝반짝한 은색이나 남색의 연기는 그 자체로 이곳이 꿈속이나 은하수의 위인 것만 같은 착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넓게 깔린 연기가 이윽고 검은 연기를 역으로 빨아들인다. 사람들의 악몽도, 나쁜 기억도, 부디. 부디 이 안에 다 삼켜지길.
“정말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반성할 줄 모르고, 어째서 속상하고 미안해하는 건 이쪽일까요.”
저는 괜찮은지 물어봐주던 상냥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야, 저라고 괜찮지 않으면서도 한 가지, 저보다 남에게 더 바라는 것이 있었기에 부산히 말을 걸고 다녔다. 그들이 자신을 탓하고 자신에게로 화를 돌리지 않길 바랐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고, 몇 번이라도 좋으니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냐미링, 미안해요.”
열이 밴 손바닥이 마찬가지로 뜨거운 몽얌나의 몸을 다독인다. 사랑스런 분홍색의 털이 탁해지는 것도 같았다. 그럼에도 연기는 멎지 않았다. 꿀렁이는 연기에 약 냄새가 밴 것도 같았다. 이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거든, 우리 같이 살비마을이라도 다녀올까요. 그곳 호수에서 명상을 하고 나면 나아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딱 이 밤만, 이 어둠이 걷힐 때까지만 저와 함께 힘내주세요.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검은 빗물과 같은 연기를 응시하며 에셸은 피로슈키를 반 잘라 포켓몬에게 건넸다. 무엇으로도 다 전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일부라도 알리고 싶었다.
애들 친밀도 로그를 다 채워주고 싶은 욕심이 있는가 하면 서둘러 채우지 않고 그 애들의 맞는 타이밍에 올려주고 싶기도 했는데 냐미링의 타이밍이 딱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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