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71) 03.01. 고스트 웨딩

천가유 2022. 5. 1. 10:56

With.말라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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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시티 의뢰, 남는 건 사진 뿐!

 

코스프레 사진관 마임포토의 전단지는 첫날 메이든에게 받았을 때부터 파일철에 담겨 에셸의 가방에 고이 담겨 있었다. 이런 건 놓칠 수 없죠~ 사진은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좋아한다. 무엇보다 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이왕이면 혼자 가긴 쓸쓸하고 누구와 함께 갈까. 기회를 벼르던 중 에셸의 레이더에 걸린 건 말라카이였다. 이런 걸 왜 찍는 거야. 그보다 내가 찍어서 누가 좋아한다는 거야. 말라카이 소년과 함께 여행을 한지 어언 2. 에셸은 그가 스스로에게는 대단히 무관심하다는 걸 이제 알았다. 분명 찍으면 다들 좋아할 거라니까요. 적어도 제가요!

결국 설득에 성공해 말라카이를 옆에 데리고 메이든에게 사진관까지 가는 법을 상세히 들었다.

안내해 드려도 괜찮습니다만.”

메이든 씨의 처음 일은 종단열차에 타는 동안의 안내였잖아요. 후후, 이 이상 메이든 씨를 차지하면 안 되죠.”

물론 메이든도 함께 사진을 찍는다면 환영이지만메이든의 아버지라면 환영은 물론이고 환호도 해줄 테지만수리를 마친 종단열차는 다시 바쁘게 운행을 재개하고 있었다. 어딘지 서운한 표정인 것 같다, 고 메이든의 얼굴을 멋대로 해석하며 에셸은 대신 찍은 사진을 메일로 보내주기로 하였다.

말라카이가 듣는다면 뭐? 그걸 왜 보내?! 하고 버럭할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오케이 해주겠지. 제멋대로 누님이라 미안해요, 말라카이 씨.

말라카이 씨~ 여기예요.”

약속장소에 도착한 말라카이는 무슈를 이고 두리번거렸다. 두 사람은 오늘의 촬영을 위해 에셸이 부른 공중날기 택시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서 긴 종단열차의 철로를 따라 사진관으로 향했다.

코스프레 사진관 마임포토의 주인은 사진관 이름처럼 비범한 사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임맨 복장을 하고 반겨주는 덕에 에셸은 이곳이 코스프레테마라는 걸 되새김질 당했다.

! 어서 오시라, 손님들. 그래서 어떤 코스프레를 하러 왔지? 불타입? 벌레타입? 고스트타입? 전기타입도 좋지!”

포켓몬 타입으로 이미 확정인가요…….”

이리나와 자양 씨 쪽이나 란타 씨와 카를라 씨 쪽을 보면 포켓몬 코스프레 외에도 가능한 것 같은데, 이미 주인의 머릿속엔 포켓몬 코스프레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저렇게 기대하고 있는데……. 이럴 때 에셸은 금세 마음이 약해졌다.

역시 포켓몬 코스프레도 해볼래요? 스카치 씨처럼요.”

? 포켓몬 코스프레?”

에셸의 말을 듣자마자 말라카이가 얼굴을 확 찌푸린다. 그와 함께 여행한 지 어언 2. ──중략하고 에셸은 이게 말라카이의 불호의 표현이 아님을 이제 잘 안다. 소년은 원체 미간이 잘 좁혀들었고 이건 단순히 생각하는 중이란 사인이다. 잠시 뒤 말라카이는 여전히 눈에 잔뜩 힘을 준 표정으로 코스프레하고 사진 찍는단 일 자체가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거나, 게다가 포켓몬 코스프레라니 대체 누가 우리의 그런 사진을 보고 좋아한다는 거냐, 심지어 벌레타입 포켓몬 탈 같은 건 준비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서론이 길었지만 결론은,

너 하고 싶다면 해.”

그럼 나도 할 테니까.

에셸이 예상한 답을 들려주었다. 말라카이는 스스로는 격렬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퉁명스럽고 톡톡 쏘아대는 말투와 달리 그 말은 한 번도 배려심이 담겨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남을 위해 움직이는 게 일찍이 몸에 배어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가정사 탓인가, 안위를 걱정하는 소꿉친구 탓인가, 그도 아니면 천성이란 것인가. 그가 지닌 천성의 다정함은 알로라의 기후처럼 쨍하니 따뜻해서 누구든 그와 대화를 하다 보면 마음에 온기가 깃들었다. 당장의 에셸의 포켓몬만 봐도 이렇게 말라카이에게 친한 척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가 잠깐 위키링에게 한눈을 파는 사이 빠르게 목록을 뽑아온 에셸은 소년을 대상으로 이 옷, 저 옷 입혀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거미인간, 잠자리 날개를 등에 단 요정 같은 옷, 뿔테로 된 공갈안경에 흰 가운도 걸치게 하고 말라카이의 머리카락을 왁스로 잔뜩 세워 락스타도 시켜보았다이걸 시킬 때의 말라카이는 정말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말라카이가 왜 나만 해??? 하고 말을 꺼낸 건 그가 옷을 다섯 벌쯤 갈아입었을 때였다. 마땅한 질문이었으나 마땅한 답을 줄 수 없어 눈만 굴러간다.

~”

눈 피하지 말고!”

에헤헤, 그럼 슬슬 본론으로 돌아가 볼까요.”

잠깐, . 그렇게 얼버무리기야?? 째려보는 말라카이의 시선을 피해 에셸은 사진관 주인에게 할로윈 의상을 부탁했다. 두 사람이 함께 찍을 사진의 컨셉은 하나는 알로라 복장, 또 하나는 유령신부와 유령신랑이었다. 알로라 셔츠를 입고 찍는 사진에 관해선 전부 말라카이에게 맡겼다. 이국적인 화려하고 커다란 꽃이 그려진 여러 알로라 셔츠들은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는데 알로라가 어떤 지역인지 옷만으로도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었다.가라르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그 지방에 에셸은 몹시 흥미가 생겼다.

나중에 알로라 지방에 놀러 가면 말라카이 씨가 마중 나와 주나요?”

투어는 내가 아니라 전문적인 사람한테 맡기라고

그런 뜻 아닌 걸 알면서~”

다음은 유령 신랑&신부 컨셉이다. 이걸 위해 특별히 혜성시티의 메이크업 숍에 출장을 부탁했다. , 눈을 감아 보세요. 입술은 모으고. 눈썹 찡그리지 말고. 간지러워도 조금만 참아요. 전문가의 손길을 따라 분장을 하고 둘이서 나란히 창백한 웨딩정장을 차려 입었다. 사진관 직원은 두 사람에게 맞춰 할로윈스러운 배경까지 준비해주었다. 괜히 코스프레 사진관이 아니다. 무슈와 위키링은 화동이 되어 두 사람을 따라주었다. 그 사이 샹델라가 되고 만 위키링은 머리 위에서 종이꽃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으스스한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종이꽃이 날리는 풍경에서 말라카이의 팔에 살포시 팔짱을 낀 에셸은 그의 반응을 살피듯 시선을 떨어트렸다. 그는 제 버킷리스트를 무척이나 신경 써주는 것 같았다. 웨딩촬영이란 기회를 자신에게 써도 되는 건지 몇 번이나 신경 쓸 만큼. 그러나 진실로 말하건대 에셸에게는 앞으로 찾아올 미래의 결혼식보다 당장의 그와 남기는 사진이 더 반갑고 좋았다. 미래에 제가 누구랑 결혼식을 올릴 줄 알고요. 먼 미래보다 당장의 당신이죠.

진짜 결혼식 같지 않아요, 꼬마신랑님?”

장난스럽게 속삭이면 그는 또 버럭, 화를 내며 돌아볼까. 그 표정을 상상하며 에셸은 카메라 앞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은 이렇게 해버렸지만 나중에 말라카이 씨는 꼭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올리길 바랄게요. 이번 건 말하자면 예행연습인 셈 치도록 해요.”

그럼, 오늘은 촬영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릴게요?


여기서 웨딩촬영을 한 누나동생은 각자 애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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