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즐링 진화
둔치에 도착하자마자 다즐링은 골동품 포트를 선물 받았다. 에셸은 오랜 단골가게를 다즐링에게 소개하며 직접 마음에 드는 포트를 고르게 해주었다. 분홍색으로 새 칠을 한 다즐링은 당분간은 지금의 잔이 마음에 들어 몸을 옮길 생각이 아직 없었지만 애정이 가득한 골동품 다구를 보는 건 무척이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제 고스트 포켓몬들은 늘 저에게 사전 고지도 없이 멋대로 진화를 해버렸어요.”
다즐링이 고른 건 분홍색 도자기 포트였다. 이가 빠진 부분이 절묘했고 금이 간 자리에서 새어나가는 차는 향기로울 것만 같았다. 깨끗하게 닦고 깨진 부분을 다듬은 덕에 위험하지도 않았다. 분홍색 포트에는 제조연월도 적혀 있었다. 자기가 태어난 날을 알다니 멋진 포트네! 잔에 남은 차에 고스트 에너지가 모여 형태를 갖추곤 하는 이 포켓몬에게 자신의 태어난 날을 아는 건 대단히 특별한 일이다. 그 사이에도 에셸의 푸념은 이어졌다.
“다들 성급한 성격은 아닌데, 고스트 타입은 원래 그렇게 변덕스러운 건지. 아니면 제가 포켓몬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 건지. 그래서…… 다즐링도 언제든 원하는 때에 진화하도록 미리 사주고 싶었어요.”
그렇구나. 근데 이 포트 진짜 멋지다! 다즐링은 마음에 든 포트를 꼬옥 안았다. 덕분에 다구가 따끈따끈해졌다. 지금 옮길까? 음, 하지만 지금은 좀 아냐. 눈앞의 차가 맛있으니까. 아직은 이 잔에 담겨 있을래. 그나저나 에셸, 이거 봐. 이 무늬, 금박이 들어 있는데. 셸링 포인트네!
“멋진 꽃무늬예요. 셸링 포인트네요~”
트레이너와 포켓몬의 코드가 제법 잘 맞는다. 둘은 나란히 차와 다구에 대한 취향을 늘어놓았다. 나중에 내가 여기 들어가게 되면 이 부분을 말이지. 장난기 많은 포켓몬이면서도 이런 부분에서 까다로운 다즐링은 포트를 둥실둥실 띄우고 한참 미래지도를 그렸다. 에셸은 그 의사를 어렴풋이 알아들으며 차를 홀짝였다. 이후로 둔치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크루즈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둘은 차와 다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의 식은 차는 최악이었지만~ 거기 좋은 찻잎이 있었지. 보온병에 담는 건 차 맛이 떨어져! 하지만 분위기가 때론 차 맛을 압도하기도 해. 그래도 티타임은 순서를 갖추고 차근차근 해줬으면 좋겠어. 신성한 의식이라고. 많은 재잘거림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담을 잔이 상당부분 한계에 달한 걸 깨달은 다즐링은 골동품 포트를 들고 에셸에게 나타났다. 상당히 예의바르고 정중한 모습이었다.
이런 고스트 타입은 처음이라고? 그게 바로 놀랍고 즐거운 일 아니겠어?
자, 티타임은 과정이 중요해. 처음부터 잘 봐두라고.
평화롭게 진화한 거 냐미링이랑 다즐링뿐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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