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차 리포트::
한 주간의 일을 정리하기 위해서 에셸은 개인용 컴퓨터를 켰다. 이번 주의 룸메이트인 라하트는 자신의 자리에서 전략을 고민 중인 것 같았다. 제 룸메이트이자 라이벌이 챔피언 로드에 오르다니! 괜히 자신의 어깨가 으쓱이는 한편으로는, 그렇지. 조금 아쉽기도 했던 것 같다. 이번 주가 마지막이라고 목요일부터 시작해 3일 내내 체육관 도전으로 불태우던 이들을 따라해 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다.
어디까지나 생각이지만. 도전할 수 있을 때 도전해보자. 처음 캠프를 시작할 때부터 다짐한 신조는 마지막까지 목새 체육관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달성했다. 스스로와의 약속은 어기지 않았다. 아쉬움은 접어두고 대신에 6개의 배지를 반짝이게 닦으며 스스로를 칭찬해주기로 했다.
“이거 보세요, 위키링. 어느새 6개가 모였어요. 굉장하죠?”
누림체육관의 향긋한 허브 향에서 시작해, 북새 체육관의 열기, 혜성 체육관의 청량한 물내음, 살비 체육관의 지푸라기 향, 샛별 체육관의 귀가 짜릿한 전자음을 거쳐 마침내 목새 체육관의 모래바람을 이겨내고 얻어낸 것이다. 위키링도 추억을 새록새록 되새기며 구부러진 손으로 이건 어땠지~ 저건 어땠고~ 하나하나 짚어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다시 빈 자리 두 개로 온다.
“고향 체육관에 도전하지 못해서 아쉽지 않냐고요?”
빙그레 입꼬리가 말려 오른다. 웃음으로 얼버무림이다. 아뇨, 그게 좀. 막 그렇지도. 상성으로 따지자면 둔치보다 다라가 더 두렵지만, 둔치는 인간 대 인간의 상성 문제다. 시슬 님 앞에 나아가 우아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것보다 둔치의 링 위에 오르는 게 에셀로서는 더 힘들었다. 이런 차림으로 거기 올라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슨 소리를 들었을지.
“그치만 그런 힘듦을 이겨내고 올라 보고 싶기도 했는데~, ……캠프가 끝나면 같이 도전해줄 거죠?”
고럼고럼. 날 빼놓아선 되나. 위키링이 시원하게 답을 주고 어느새 나타난 바나링이 에셸의 다리 위에 두 팔을 폭 올리고 엉겨 붙어 나도나도. 외친다.
“사실 말이죠. 바나링에게 기습과 봉인을 가르쳐서 내보내고 싶었어요.”
기습을 봉쇄하면 두려울 게 없잖아요, 당신들은. 콩깍지 낀 발언으로 제 포켓몬을 함함하며 벌써부터 스파이스를 상대할 생각을 이리저리 해보았다. 노가드인 괴력몬에게 연옥을 쓰면 어떨까요. 독개굴이 나오면 말이죠……, 포켓몬들을 데리고 재잘거리던 에셸은 스스로의 행동에 다시 웃고 말았다. 어느새 이렇게 배틀 생각으로 꽉 차버려서. 캠프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떠올리고 나면 다시 자문하고 만다. 본래 제 일상이란 어떤 것일까.
캠프 사람들의 최근 주된 화제는 캠프를 마친 뒤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돌아가는 사람, 돌아가지 않는 사람. 모험을 이어나갈 사람, 이것으로 만족했다는 사람. 새로운 가능성을 본 사람, 오랜 꿈에 확신을 얻은 사람. 각자가 캠프에서 얻은 성과를 들어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면 저는 여기서 무엇을 얻고 어떤 변화를 안아 돌아가게 될까요. 캠프의 남은 기간이 어느새 두자릿수도 남지 않았다.
“위키링. 저 독립해서도 잘 살 수 있을까요?”
질문에 위키링은 나한테서 독립하는 것두 아닌데 뭐 어때~ 할 수 있어.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는 답을 돌려주었다. 가볍게 눈을 흘기고 냐미링을 껴안았다. 냐미링, 저글링. 어때요. 저 괜찮을까요? 벌써부터 흘러나오는 나약한 걱정에 저글링이 등을 토닥토닥 해준다. 따뜻한 격려를 받으며 에셸은 휴우,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아직 부모님에게는 말도 꺼내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고 싶다, 그러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앞서고 있을 뿐.
“그래도, 남들의 행복을 책임질 것처럼 말해놓고 저만 쏙 빠질 수는 없으니까요.”
얼마나 타박을 듣고 혼이 났는지 아세요? 걱정하는 말도 한 아름 들었어요. 다들 고맙고, 또 감사하죠. 그러니까, 그래서.
“알아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이 저를 위한 길인지. 제게 더 좋은 것을 말이죠. ……그러니까, 피하지 않을게요.”
돌아가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제 일상도 많이 변하게 되겠지. 달라질 것과 달라지지 않을 것을 양손에 쥐고 헤아린다. 수많은 반짝임, 그 사이에서 기다리는 건 그럼에도 틀림없는 기대와 설렘이었다.
남은 기간과, 여행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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