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치시티 의뢰, 어떻게 포켓몬 이름이 보리녹차
그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크루즈가 둔치를 떠나기 전에도 몇 번인가 그 아이들을 보러 다녀왔었다. 복수로 지칭해야 할지 단수로 지칭해야 할지조차 불분명한 인공 포켓몬, 헬릭스단에서는 카이브라라 부르던 포켓몬을 말한다.
현재 살펴주고 있는 레인저들 사이에서는 임시로 레온과 디어라고 부른다는 모양이다. 역시 두 머리가 취향도 다르고, 서로 독립된 의지를 가진 모양이니 복수가 맞을까. 캠프에서는 아이들에게 친숙한 이름을 붙여주자고 보리와 녹차로 하자는 둥,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귀엽거나 친근하거나 우스꽝스럽진 않은지 이런 이름이어도 괜찮은지 싶은 많은 이름들을 거론했는데- 그 전부를 그들의 이름 삼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 아이들의 몸에는 수많은 포켓몬의 유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까, 하나하나 기억되지 못할 그들을 기리며 말이다.
오늘도 에셸은 옷을 사러 둔치항으로 나선 김에 도시 외곽의 컨테이너박스에 들렀다. 곧 목새로 떠나야 했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좋았다. 익숙한 걸음을 옮겨 포켓몬들과 함께 방문하자 레인저들도 반겨주었다. 인사를 나누고 곧장 보리녹차, 혹은 레온디어, 뜻하지 않게 태어났으나 행복하길 바라는 그 얼굴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헬릭스단의 야욕을 저지하고 그들을 일망타진한 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이 버려진 창고의 소유주를 찾아 매입하려는 일이었다. 알아본 결과 창고는 헬릭스단은 익명의 사업가를 내세워 소유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헬릭스단이 창고를 살 수 있도록 엉터리 계약서를 눈감아준 경찰청의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과 함께, 패션과 레인저 쪽에서 권리를 가져와 관리해준다는 말에 그쪽에 맡기기로 하였다. 하나라도 돕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번 일에 얽혀 있다고 하나 민간인 신분이다. 나서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것이 조금 아쉬워, 그 아이들을 보러 더 자주 발길을 옮겼던 것 같다.
배가 떠나기 전 라즈 씨가 말했지. 조만간 대중들에게도 이번 사건이 공표될 예정이라고. 어떤 식으로 공표가 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 아이들에게 좋은 방향은 아닐 것만 같았다. 사람들에게 이 아이들이 공포로 여겨지거나 혹은 동정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했다.
“오늘은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이네요. 캠프 사람들이 다 떠나버려서, 이런 곳은 역시 쓸쓸한가요?”
장갑 벗은 손을 내밀자 두 머리가 각각 냄새를 맡듯 다가와서 익숙하게 자신들의 머리를 들이밀어 부벼 왔다. 처음에는 인간을 향한 적대감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노하고 있었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야 그럴 테지. 영원히 용서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랬던 아이들이 시간을 들인 끝에 조금은 누그러진 반응을 보이게 된 것에 크게 감사했다. 에셸 본인도 트라우마를 이겨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는데, 이 아이들은 그만큼 강한 걸까. 혹은 그만큼, 사랑과 관심에 굶주렸던 걸까.
──정말 트라우마를 이겨낸 걸까. 아니면 트라우마보다도 주어지는 이 온정이 갈급한 걸까.
레온과 디어에 대한 보고서는 캠프원들도 열람이 가능했다. 갱신되는 정보는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긴 시간 투약해온 약품을 중화하는 과정에서, 이 포켓몬은 존재가 흩어져가고 있었다. 본래라면 결합할 수 없는 것들을 억지로 이어붙인 것이다. 비록 그 접착제가 독성이었다 한들, 접착제를 지우면 유지될 리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관찰 보고서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한참 막막하게 본 기억이 난다.
독을 안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과, 독을 지워내고 희미하게 살아가는 것. 두 개의 머리는 무엇을 택하려 할까. 그야 어느 쪽이든──……. 꼬리를 물고 이어지려는 생각을 걱정하였는지 서머링이 톡, 부딪쳐 왔다. 미안해요. 표정이 안 좋았어요? 이 작은 포켓몬은 언제나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아이다. 컨테이너로 올 때마다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커다랗고 낯선 포켓몬에게 겁먹는 일 없이 보살펴주고 싶어서 애를 쓰곤 했다. 서머링의 곁으로 냐미링이 다가온다. 그럼 오늘도 둘에게 부탁할게요. 빙그레 웃자 냐미링은 제게 맡기라고 서머링과 함께 눈을 감았다.
분홍색의 연기가 컨테이너 박스 안을 채우며 그곳에 다양한 꿈을 그려낸다. 봄바람들판의 따뜻함, 자연공원의 북적거림, 눈꽃호수의 시린 아름다움, 목새의 드넓은 대지, 소소리숲의 거대한 호흡, 깍지산맥의 위태로운 긴장감, 살비의 따뜻한 바다, 조명이 꺼지지 않는 샛별의 밤, 그리고 이 컨테이너 박스를 조금만 벗어나도 보일 뱃고동과 등대의 빛까지. 지금은 꿈에 불과하지만 파노라마 치는 풍경이 그들의 청사진이 되길 바라본다.
“어디서 살아가고 싶나요? 또,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요?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봐요.”
냐미링은 두 마리 머리에게 에셸과 여행한 생생한 풍경을 보여주면서, 한 편으론 두 아이의 끔찍한 꿈을 야금야금 지워내고 있었다. 몰래 냐미링의 등을 쓰다듬으며 에셸은 소망했다. 내년 이맘때쯤, 이 아이들의 생일을 축하해줄 수 있길. 그 즈음에는 부디 이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고 행복하길. 어떤 것으로도 감추지 않은 손이 거대한 몸을 어루만졌다. 여기, 이 손 안에 여러분이 줄 수 있는 행복을 담아주세요.
보리녹차야 행복해야 해....................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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