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카렌 클라우디아 로젠탈
어떤 경계를 그을 때 사람들은 곧잘 그것을 물과 뭍에 빗대었다. 서로 섞일 수 없는 경계로서 대표되는 이미지라는 것일까.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 하얀 포말이 이는 경계 위를 걸을 때마다 그 비유에 공감했다. 바다를 좋아하지만 바다를 선택할 수는 없다. 나는 인간이고, 물에서는 숨 쉴 수 없었다. 그러나 때때로 뭍의 인간으로서 여겨지지 못할 때는 차라리 확 아가미가 돋아 물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어떨 땐 사실 정말 내가 모르는 아가미가 있진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괴물의 증거로서.
카렌 클라우디아 로젠탈의 이름은 외우기 어려운 것으로 세 손가락에 꼽혔다. 나머지 둘은 시윈 세르게예비치 옌과 투생 은도코 엠‘본도다. 왜 이렇게 이름이 긴 거야? 물었을 때 가운데는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들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이름에 넣고 새기는 것이다. 심장에 새기듯. 네 이름도 그래? 클라우디아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스스로 가족과 연을 끊어버린 그에게 물어보는 것은 대단히 실례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너는 이제 클라우디아도 로젠탈도 아닌 그냥 카렌인 것일까. 아니면 그냥 카렌은 어디에도 없으면서 캐리어인 너뿐인 걸까.
「당신의 ‘우리’에 속한 사람은 캐리어인 카렌이에요. 캐리어가 아닌 저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렇게 말하며 또 한 번 자신이 설 곳을 깎아내리는 모습. 네가 고립된다.
행군을 하기 전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하던 표정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났는데 라리사의 부족한 이해로는 그 표정을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이제야 겨우 숨 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정작 오르내리는 숨은 하나도 편해 보이지 않더라고 느꼈다.
뭍과 물을 구분하기란 쉬웠지만 너라는 사람 안에서 너를 다시 가르는 일은 참 어렵다. 너에게서 캐리어를 빼면 왜 아무것도 남지 않지?
“당신은… 절 몰라요. 당신들은 저를 몰라요.”
라리사 소워비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말할 수 있었다. 아니야. 나는 너를 알고 있어. 네가 잘라내고 버리고 외면하는, 혹은 너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면을 나는, 우리는 알고 있을 거야. 그 모든 걸 더해서 너이기에.
“도망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도망치지 말라는 뜻이 아니야. 도망쳐선 안 된다는 뜻도 아니야. 그냥, 이곳이 네가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점점 스스로를 고립시켜서 낭떠러지 절벽까지 내몰려 남은 곳이라고는 네가 그토록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깊은 물속에 몸을 던지는 길밖에 남지 않았을 때, 괴물의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필사적으로 네 것인 것처럼 쥔 채 원해서가 아니라 내던져지듯 그 외로운 곳에 빠져 가라앉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깎아낸 뾰족한 끝 위에서, 남을 베는 만큼 너 자신마저 베어버리는 날카로운 날 위에서 그만 내려와 여기 평평한 곳에 같이 서자고.
아무것도 아니란 말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말도 슬프기만 하다. 기억해, 렌지? 예전에 나는 너를 그렇게 불렀잖아. 카렌 지니어스라고. 나만이 아니라 모두 알고 있어. 너는 성실하고 노력가이고 우수하고, 네가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지 않은 많은 걸 쥐고 있어. 네가 너에게 없는 것을 나에게서 찾아낸다면 나 역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너에게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런 너를 동경하고 또 좋아하겠지. 바다가 싫다면 정원으로 가자. 너를 깊은 물로 밀어내지 않을께. 지느러미도 아가미도 필요 없는 땅에 서자. 역시 네겐 둡트로쉬가 어울려. 끝끝내 뿌리내릴 곳을 찾아내 두 다리는 가지가 되고 두 손은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거야.
다시 한 번 너는 손 안에서 빠져나갔다. 물러나는 너를 잡는 대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바보야. 똑똑한 줄 알았는데 순 바보야. 그렇게 말하면 화나 낼 것이지.
“네가 너의 편이 되어주지 않더라도.”
누구보다 네 적이 너라고 해도.
“나는 너랑 같은 편이야.”
그러니까 자꾸만 뾰족한 곳으로 혼자 올라서지 말고 네 옆을 허락해줘.
대칭점에 서 있던 친구.
1챕 당시에 카렌은 자기 얘기를 극도로 숨기고 약한 나를 감추는 게 능숙했고 라리사는 그걸 파악할 만큼 날카롭지 못했는데 2챕 와서 카렌은 위태로워지고 라리사는 성장하면서 두 사람이 내밀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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