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주노

39) I WISH Romantic comedy

천가유 2023. 12. 24. 10:20

For. 올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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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상대와 사랑에 빠지면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이 구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싫다.

누가 한 말이었더라. sns 중독자였던 과거답게 유명한 파랑새 거주자의 말을 인용하며 여자는 손안에 든 것을 쉼 없이 굴렸다. 11, 줄어드는 시간을 보며 초조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10년 전의 여자라면 그의 말에 하트를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사랑이 밥 먹여주진 않잖아요. 사랑에 빠진 것만으로 실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는데 마치 모든 일이 원만하게 끝날 것처럼 연출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전 영 취향이 아니네요.

10년 뒤 33, 머지않아 34살이 되는 여자로 말하자면 사랑에 빠지는 걸로 엔드롤 해버리는 영화 따위 안일하기 짝이 없다는 혹평을 할 수 있었다. 그래, 사랑에 빠지는 것만으로 실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왜 사랑하는 마음 가지고 인간이 달라지지 않더라는 중요한 현실이 영화에는 담기지 않는 거죠? 아니면 제 사랑이 부족한가요? 올리버는 잘만 했는데. 그 사람의 10년 전을 보라고요. 완전 사랑이라고 하는 페로몬에 지배되어서 두 발로 허공도 디딜 것 같았잖아요.

그런데 왜 난 그게 안 되냐고요!

--, 정말. 신디아 캐럴, 정신 차려. 넌 신디야.”

사랑이란 거, 그리고 연애라는 거,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기 전보다 하고 난 후가 오히려 불쾌한 기분을 더 많이 당면하는 것도 같은데 이게 맞는 거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고 말이다. 그렇다고 올리버에게 당신도 이랬어요?” 물어볼 만큼 미치진 않았다. 그러니 그저 앓느니 죽지.

그 사이 휴대폰에 신착 메시지가 도착했다. 확인해 보니 언제 보낸 건지 모를 매니저의 연락과 뒤이어……

오늘 우리 서로 힘내요(^^)v

그가 숍에 도착했다는 연락이었다. 손안에 쥔 것을 내내 굴리던 여자는 이내 굳은 결심을 하고 걸음을 움직였다.

 

 

#.02

어떤 실패한 연애에 대한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연인에게 참 비협조적이었다. 같이 사는 건 어때요? 커플 아이템을 맞추는 건? 메시지에 답장 좀 해주면 안 돼요? 상대가 바라올 때마다 난 누구랑 같이 못 살아요. 스캔들 내고 싶어요? 미안해요. 깜빡했나 봐요. 대개 이런 답. 누군가가 여자의 인생을 인터뷰 한다면 분명 묻겠지.

Q. 후회하시나요?

그리고 이렇게 답하겠지.

A. 후회한다고 뭐 달라지나요.

지독하게도 신디다운 답이었다. 스스로 그 시절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기는 했지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 봤자 달라지진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의 이 감정은 지금이기에 생긴 것이다. 그러니 과거를 돌이켜 구질구질하게 굴기보다……

하지만 사람이 이성만으로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면 세상의 비극이 반으로 줄었겠지.”

남자가 들었다면 와우, 신디. 방금 딕션이 좋았어요.” 같은 칭찬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떠올리니 또 조금 열을 받는다. 아무튼 이성은 이성이고 감정은 감정, 그 탓에 이런 것도 준비한 것이 아닌가.

무엇이냐면 반지다, 반지. 커플링이라고 하는 것이다. 직접 몇 개나 되는 주얼리 샵을 추천받아서 방문도 하고, 디자이너와 어떤 디자인을 할 건지 씨름을 하고 들어갈 보석 하나까지 세심하게 골라서 받아낸 세상에 한 쌍뿐인 링이었다. 디자이너들이 모두 두 손 들 정도로 까탈스럽게 받아놓고 또 아주 마음에 차는 건 아니어서 완성된 반지를 받고도 그 앞에 서 고민했더랬다. 여자의 입에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기 전까지 샵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는 후일담이 있다.

반지의 요구조건은 간단했다. 심플하지만 세련되게. 데일리 링처럼 언제든 낄 수 있는 질리지 않는 디자인으로. 그러면서 제게 어울리는 최고의 형태를. , 마지막이 문제였다고? 신디가 쓸 반지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왜 반지를 맞출 생각이 들었는지까지 답하면 정말 부끄럽고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고 하나하나 설명하기 번거로우면서 민망하기까지 하니까 제발 묻지 않아주길! 아무도 없는 허공에 그런 마음의 외침을 하고 여자가 문고리를 돌렸다.

 

 

#.03

──신디?”

메이크업을 받느라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남자가 목소리만 냈다. 보지도 않고 누가 들어왔는지 어떻게 아는 거예요. 그 말을 삼킨 채 신디아 페리 캐럴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만약 이 순간이 두 사람의 로맨스 영화라면 지금 장면은 과연 어디쯤일까.

이거 받아요. 어떻게 할지는 당신 마음대로 해요.”

여자의 마음속에선 엔딩롤이다. 여기서 딱 더 이상 대사도 없고 장면도 없으면 완벽했다. 그냥 관객들이 오! 하고 즐거운 탄성을 내지르며 후일담을 멋대로 상상하게 두면 되는 거다. 굳이 인심을 쓴다면 쿠키영상 하나쯤 넣어두면 되겠지.

, 다만 여자에게는 대단히 불행하거나 혹은 도망칠 구석 없이 부끄럽게도 현재present는 영화 촬영 중이 아니라 논픽션의 현실이라서 이런 중요한 장면에서 필름이 끊기는 불상사 같은 건 있을 수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도망치지 말고 마주해야지, 신디아 캐럴. 여자의 얼굴이 삽시간에 홍당무가 되었다. 이게 뭐예요? 그런 상투적인 질문 같은 거 해오면, 이 말주변 부족한 여자는 어쩔 수 없이──

 

 

#.04

──, 마음대로 하라고 했잖아요. 마음대로요. 나는 그냥, 주고 싶어서 줬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 ……당신만 괜찮다면 시상식에도 끼고 갈까 해요. 별로, 안 껴도 상관없지만 이제와서 우리가 이런 걸 맞춘다고 해서 대단히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당신 생각은 달라요?

왜냐고 물어도, 그냥…… 정말 꼭 대답해야 해요?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요? 그래요. , 알아서 맘대로 생각해요. ──분명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는데, 바보 올리버!

사람들이 자꾸 사귀냐고 물어보는데 슬슬 적당히 돌려 대답하기도 성가셔진 것뿐이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가 별로 뭐숨길만한 사이인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대놓고 공개 연애한다는 선언 같은 건 유치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런 형태로…… 물론 당신이 하고 싶다면 나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건데요. 아잇, 그만 웃어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

 

 

#.05

결국 남자의 눈앞에서 스스로 약지손가락을 채웠다. 영롱한 금색의 링이 반짝인다. 남자의 손가락 치수는 어떻게 알았냐는 아마추어 같은 질문은 받지 않겠다. 그에게 손을 쫙 펴 보인 채 신디는 어렵사리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걸로 조금 더 당당히, , 날 좋아해도 된다는 거예요. 그거면 됐어요. 알았죠?”

더 사랑해주면 좋겠다는 크리스마스의 소원은 산타클로스에게 맡겨버리고 마는 반쪽짜리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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